중국과 문화/중국의 사상

"성인(聖人)": 중국전체주의의 기원

중은우시 2025. 5. 14. 10:52

글: 진가량자(陳家梁子)

전체주의(Totalitarianism)이라는 개념은 서방에서 1920년대에 나왔고, 나치독일과 공산소련이라는 두 개의 서방에 없었던 새로운 독재체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기본적인 의미는 국가이데올로로 전체국민을 통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명사는 처음에 나치학자들에 의해 긍정적인 의미로 쓰였는데, 나중에 반나치, 반전체주의학자들이 부정적인 의미로 광범위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독일계 미국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에 대하여 가장 심도있게 연구한 인물로 공인되는데, 그녀는 1951년에 전체주의를 분석한 저작 <전체주의의 기원>을 출판한다. 아렌트는 책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나치와 공산주의정권은 모두 새로운 형태의 독재형식이다. 전체주의정권이 광범위한 흡인력을 가진 것은 그 이데올로기때문이다. 나치주의에 있어서, 모든 역사는 인종투쟁의 역사이다; 공산주의에 있어서,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일단 이런 전제를 인정받으면, 국가의 모든 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고, 이어서 전체국가의 사회제도를 정당화할 수 있다.

서방역사상 정치제도는 다양하다. 일찌기 고대그리스에서 서로 다른 도시국가에서 여러 가지 정치제도가 나타난다. 민주제도를 시행하는 아테네도 있고, 과두정치를 실행하는 스파르타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정치학>이라는 책에서 통지자의 수와 복무대상이라는 두 방면으로 정치제도유형을 나누게 된다. 통치자의 수량은 "1인통치", "소수인통치"와 "다수인(혹은 전체)통치"로 나뉜다; 복무대상으로 "전체를 위해 복무"하는 경우와 "일부인을 위해 복무"로 나눈다. 이렇게 가능한 6가지 정치제도가 형성된다. 즉, 군주제, 참주제, 귀족제, 과두제, 민주제와 평민제이다.

18세기의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는 그의 명저 <법의 정신>에서 정치제도를 3가지 기본유형으로 나눈다. 즉, 공화제(republican), 군주제(monarchical)와 독재제(despotic). 공화제와 군주제는 모두 법률에 따라 통치한다. 즉 법치이다. 다른 점이라면, 공화제는 소수인 혹은 다수인(전체)이 통치하는 것이고, 군주제는 1인이 통치하는 것이다. 군주는 세습을 통해 나온다. 독재는 개인의 의지로 통치하는 것, 즉, 인치이다. 소수인이 통치를 진행하는 공화제는 귀족공화(貴族共和)이다. 귀족도 세습을 통해서 나온다. 다만 귀족은 사안을 논의할 때 1인1표의 다수결로 결정한다. 다수인통치 혹은 전체국민통치의 공화제는 바로 민주제이다. 혹은, 귀족공화는 소수인의 민주라고 말하고, 민주는 다수인의 공화라고 말한다.

몽테스키외의 소위 독재제는 이집트 파라오의 통치 및 동방에 법치전통과 제도가 없는 군주독재이다. 그리고 유럽중세기의 군주제는 법률에 따라 진행하는 군주제에 속하여 독재가 아니다. 그러나, 유럽중세기의 군주가 법률을 지키지 않고 임의로 권력을 행사할 때는 군주독재로 인정되기도 한다. 간단히 말해서, 독재는 권력이 법률의 제약을 받지 않고, 권력자가 자신의 의지로 통치하는 것이다. 인치와 덕치는 모두 독재이다. 다만, 동방군주독대도 현대전체주의독재이다. 서방과 동방에서, 전체주의제도는 모두 20세기에 나타났다. 중국 과거의 황권독재는 전체주의독재가 아니다. 근현대혁명에서 레닌주의식의 정당조직이 받아들여진 후, 비로소 황권독재가 이당통국(以黨統國)의 전체주의독재로 전환된다.

전체주의독재는 반드시 두 가지 핵심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하나는 전체주의이데올로기이고, 다른 하나는 이에 상응하는 통제수단이다. 서방에서 전체주의이데올로기와 상응하는 통제수단은 근대에 비로소 형성되었다. 그리고 중국은 자고이래로 전체주의이데올로기를 갖추고 있었고, 단지 근대에 들어서 현대적인 기술과 조직수단을 도입하여 전체주의제도를 건립하게 된 것이다.

나치의 전체주의이데올로기는 주로 니체의 철학에서 나온다. 니체는 하나님은 죽었다고 선언한다. 인류는 가치허무에 직면했고, 오직 "초인"이 독일민족 및 인류를 구원해야 한다. 니체가 보기에, 초인은 인류가 최고도로 진화한 것이고, 사람보다 뛰어난 존재이다. 마치 사람이 다른 동물보다 뛰어난 것처럼. 초인은 강력한 생명력을 지녔고, 담량이 있고, 식견이 있고, 실력이 있으며, 극도의 권력욕을 가지고 있다. 카이사르, 나폴레옹이 바로 초인의 원형이다.

그의 초인철학에 기하여, 니체는 <안티크리스트>라는 책에서 그가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제도를 묘사한다. 그는 사회계급을 3등급으로 나누었다. 제1등급은 가장 정신역량을 지닌 엘리트들이고, 이들은 가치를 창조하며, 그들이 통치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제2등급은 의지 혹은 성격이 강한 사람으로 그들은 제1등급의 명을 들어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법을 집행한다. 제3등급은 가장 많은 평범한 대중이다. 그들은 평범한 생활에 만족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치독일은 완전히 이를 모델로 건립한 것이다. 히틀러와 그의 나치분자들은 제1등급이고, 나치 친위대와 게쉬타포는 제2등급이며, 노동자와 보통병사는 제3등급이다.

니체의 초인철학은 나치게르만족우월설의 이론적 기초가 된다. "초인"이라는 단어는 "우수민족"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우수민족"이 있으면 당연히 "열등민족"도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나치의 반유대주의와 인종말살의 이론적 근거가 된다.

왜 초인철학이 전체주의의 근원이 되었는가? 왜냐하면 그것은 기독교인들의 사람에게는 결점이 있다는 인식을 뒤집어버렸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사람에게 원죄가 있다고 본다. 도덕적으로 선천적인 결함이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람의 능력도 유한하다. 하나님의 능력이야말로 무한하다. 초인철학은 절대적인 가치관이나 도덕원칙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사람의 해석에 의존한다. 그리고 사람의 능력은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인정승천(人定勝天, 사람이 하늘 즉, 자연현상을 이긴다)"는 생각을 가진다. 인류는 초인의 강력한 능력에 의존하여 완벽한 사회를 건립할 수 있다. 이는 전체주의통치가 전면적으로 사회를 통제하려는 망상으로 이끌었다.

나치독일에서 초인을 구상화한 것이 나치분자, 특히 위대한 대원수 히틀러이다. 그것이 공산국가에서는 초인이 공산당과 공산당의 위대한 지도자로 된다. 마르크스는 <공산당선언>에서 이렇게 말한다: "실천방면에서, 공산당원은 각국노동자정당중에서 가장 굳건하고, 시종 추진역할을 하는 부분이다; 이론방면에서, 그들이 다른 프롤레타리아계급군중들보다 뛰어난 점은 그들이 프롤레타리아계급운동의 조건, 진전과 일반적인 결과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레닌은 더 나아가 이 논술을 프롤레타리아계급선봉대이론으로 발전시킨다. 공산당원은 노동자계급중 가장 계급의식을 가지고 정치적으로 선진된 부분이고,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선봉대라는 것이다. 당과 당의 지도자는 가장 높은 프롤레타리아계급의 각성을 지니고, 계급투쟁과 사회발전, 그리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를 건립하는데 더욱 장기적인 안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전체주의이데올로기가 발전하는 것은 근대과학기술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특히 통신과 교통의 발전, 전보와 전화의 출현, 신문과 방송이 대중에게 깊이 파고 들었으며, 더욱 빠른 철도와 도로는 전체주의에 더욱 강력한 사회통제의 기술수단을 갖게 만들었다. 그리고 현대기술에서의 조직모델을 건립하여, 전체주의이데올로기를 기초로 하는 파시스트조직과 공산당을 만들어, 조직시스템이 사회의 각 층면과 영역을 커버하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선전을 독점하고, 경제를 독점하며, 완벽한 군경시스템을 건립하여 사상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폭력적으로 사회와 모든 사람을 통제한다. 최종적으로 나치와 공산전체주의독재가 건립될 수 있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자고이래로 전체주의이데올로기가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유가(儒家)의 "성인관(聖人觀)"이다. 유가는 사람은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성인은 도덕적으로 완벽하고 지혜가 뛰어나며, 대인대지(大仁大智)를 지녔다. 성인이 나라를 통치하면 천하가 태평해진다. 요(堯), 순(舜), 우(禹)와 주공(周公)은 공자의 마음 속에서 성인이다. 공자는 이들을 칭찬해 마지 않았다. "위대하도다. 요의 군자됨이여. 높고 높도다. 오직 하늘이 위대한데, 요만이 그것을 본받았다. 넓고 넓도다. 백성들이 뭐라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다. 높고 높도다. 그가 이룬 성공이. 빛나는구나 그의 문장이(大哉, 堯之君也! 巍巍乎! 唯天爲大, 唯堯則之. 蕩蕩乎! 民無能名焉. 巍巍乎! 其有成功也! 煥乎! 其有文章!)", "위대하도다! 순,우는 천하를 가졌지만 간여하지 않았다!(巍巍乎! 舜禹之有天下也而不與焉)" 맹자는 이렇게 말한다: "요순의 도가 있더라도, 인정(仁政)이 아니면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

공자는 이런 말도 했다: "군자는 세 가지를 두려워해야 한다. 천명을 두려워하고, 대인을 두려워하고, 성인의 말을 두려워해야 한다." 공자, 맹자의 성인관은 더 나아가 유가의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사상으로 발전한다. 유가의 경전 <예기.대학>에서 내성외왕에 대해 순서점진의 묘사를 한다: "예로부터 처하에 덕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그 나라를 다스리려는 사람은 먼저 그 집안을 다스려야 한다; 그 집안을 다스리려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몸을 다스려야 한다; 자신의 몸을 다스리려는 사람은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한다; 그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사람은 먼저 그 뜻을 성실하게 해야 한다; 그 뜻을 성실하게 하려는 자는 먼저 치지(致知)해야 한다; 치지하려는 자는 격물(格物)해야 한다. 격물한 후에 치지할 수 있고, 치지한 후에 의성(意誠)할 수 있고, 의성한 후에 심정(心正)할 수 있고, 심정한 후에 수신(修身)할 수 있고, 수신한 후에 제가(齊家)할 수 있고, 제가한 후에 치국(治國)할 수 있고, 치국한 후에 평천하(平天下)할 수 있다."

다만, 유가의 마음 속의 "성인"은 "힘(力)"을 숭상하지 않는다. 공자의 제자 남궁괄(南宮适)은 공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예(羿)는 활을 잘 쏘았고, 오(奡)는 배를 밀 정도로 힘이 좋았지만, 두 사람 모두 비명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우(禹)와 직(稷)은 몸소 농사를 지었지만, 천하를 가졌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군자로구나 그대는. 덕을 숭상하는구나 그대는."이라고 칭찬했다. 유가의 성인은 덕으로 사람을 감화시키는 것이지, 힘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유가의 인간이 원래 선하다는 인식은 잘못되었다. 중국의 역대정권은 모두 주로 폭력수단으로 건립한다. 덕이나 지혜에 의존해서는 정권과 질서를 건립할 수 없었다. 유가는 그저 폭력으로 건립하기 시작한 통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하늘 아래에 왕토가 아닌 것이 없다"는 것과 "정어일존(定於一尊)"의 정치질서를 보호할 수밖에 없었고, "하늘에 순응하고 사람에 호응한다"는 것으로 폭력으로 권력을 탈취하는 것을 정당화해주었고, "인정(仁政)"으로 황권통치를 미화해준다. 그리고 "예(禮)"로 황권통치의 존비등급을 유지보호했다. 천자 혹은 황제가 성인이기를 기대하고, 그들에게 인정을 베풀도록 권하며, 황제를 "성상(聖上)"이라고 부르며, 황제의 의사를 "성명(聖明)"이라고 하였다. "성상"은 바로 권력과 지위가 지고무상한 성인이라는 말이다.

유가에서 천자 혹은 황제가 이론적으로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여기고, 황권으로 모든 토지와 신민을 통치하는데 합법성을 부여함으로써, 전체주의이데올로기의 근원이 된다. 서방근대에 일어난 전체주의이론으로 보면, 중국은 자고이래로 "성인"관에서 전체주의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단지 전통중국에서는 전체주의와 짝을 이루는 기술과 조직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전체주의제도를 건립할 수 없었다. 명목상으로는 그래야 했지만, 황제가 모든 토지와 신민을 소유했지만, 기술과 조직수단이 부족하여 그가 모든 천하의 토지와 신민을 완전 통제할 수는 없었다.

근대중국은 서방의 충격을 받은 후, "양무운동" 및 그 후속발전을 통하여, 현대화된 통신과 교통수단을 도입한다. 군대와 경찰의 역량이 크게 강화된다. 비록 대외적으로는 "약계(弱鷄)"였지만, 대내적으로는 충분한 심이 있었다. 그리하여 전체주의로 사회를 통치하고 지배하는 수단이 크게 증가되어, 사회하층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 이와 동시에, 다시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주의이데올로기와 그에 상응하는 레닌주의식정당조직모델을 도입한다. 이렇게 하여 황권독재는 이당통국, 이당치국의 당국독재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공산주의의 전체주의이데올로기는 손쉽게 유가의 전체주의이데올로기와 접합될 수 있었다. 유가의 "성인"은 "위인"으로 승격된다. "위인"은 "성인"보다 한가지 지표가 더 추가된다. 도덕적으로 고상한 것 외에, 의사결정이 영명하고, 또한 강력한 의지, 투쟁정신과 전투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인자(仁者)이며 지자(智者)일 뿐아니라, 강자(强者)이기도 하다. "위인"은 "초인"과 "성인"의 복합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근현대의 계속된 혁명을 통해, 중국은 황권독재에서 전체주의독재로 전환된다. 서방의 전체주의이론으로 보면, 과거의 황권독재는 유가사상이 주도하는 것이고, 황권이 관료체계에 의존하여 아래로 현에 이르는 군현제였다. 권위주의독재 혹은 반전체주의독재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당국체제야말로 전체주의독재이다.

서방에서 전체주의이데올로기는 이단이고 비주류이다. 나치독일의 멸망과 더불어, 전체주의이데올로기와 제도는 서구에서 사라진다. 이어서 소련이 해체되면서, 동구국가와 소련에서 독립한 나라들 중에서 러시아를 제외한 나라들도 공산전체주의독재의 이데올로기와 제도를 버리고, 민주제도로 전환된다. 그러나 소련의 계승자인 러시아는 제정러시아로 회귀하고, 대러시아쇼비니즘과 신유라시아주의의 전체주의이데올로기가 지속되고 있다. 중국을 보면, 전체주의이데올로기는 그 연원이 길고 뿌리가 깊다. 근현대에 다시 서방에서 온 전체주의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중서결합으로 각각의 장점을 취했다. 동시에 전체주의제도는 기술의 진보에 따라 날로 새로워지고, 계속 개량되어, 극치에 이른다. 그리하여, 중국의 전체주의독재제도는 더욱 공고하고 오래 지속되게 된다. 전체주의이데올로기와 제도의 소멸이 언제나 이루어질지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2024년 9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