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楊朱)"를 위한 변명....
글: 인멸지성(湮滅之城)
사람들은 자주 "중서지분(中西之分)"과 "고금지별(古今之別)"을 강조한다. 그러나, 역사를 깊이 연구해보면, 인류의 사상에는 공통된 점이 있다. 소위 "중서지분"은 실제로 말이 되지 않는다. "고금지별"은 확실히 존재하긴 하지만, 그건 인류사상의 면이 아니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표현될 뿐이다.
"축의 시대(軸心時代, Achsenzeit)"를 얘기하자면, 화하의 노장(老莊), 공맹(孔孟), 고인도의 석가모니, 근동의 유태인 선지자들, 다시 고대그리스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같은 사람들은 동서병거(東西幷擧), 요상호응(遙相呼應), 군성회췌(群星薈萃), 그들의 심원한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그러나, 경전에 대한 오독(誤讀), 그리고 그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그중 가장 심한 사람은 바로 춘추시대의 양주(楊朱)이다.
양주는 기원전400년경의 사람으로, 평생이력은 고증하기 불가능하다. 그의 행적은 노나라, 송나라일대에서 나타난다. 활약한 연대는 맹자보다 빠르고 묵자보다는 약간 늦다. <맹자.등문공>의 기록에 따르면, "양주(楊朱), 묵적(墨翟)의 말이 천하에 넘친다. 천하의 말은 양자의 것이 아니면 묵자의 것이다." 이를 보면 당시 양주의 학설이 매우 유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양주는 노자를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전통적인 유가, 특히 맹자는 양묵(楊墨, 양자와 묵자)에 대해 극히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그는 묵적, 양주를 "애비도 임금도 없으니, 짐승이다(無父無君, 是禽獸也)"라고 하고, 또한 양주에 대하여 "양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했다(爲我). 터럭 하나를 뽑는 것이 천하에 이익이 되더라도, 그는 하지 않는다." 이런 비판은 거의 언어공격이고, 감정적인 면이 이성적인 면보다 커서 취할 바는 못된다.
그러나, 맹자의 영향력은 너무나 컸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진 양주에 대한 이미지는 이러하다: 양주는 조그만치의 희생(터럭 하나를 뽑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되더라도 하지 않는다. 그는 실로 극단적인 이기주의자이고 금수와 다를 바 없다!
이는 정말 거대한 오해이다!
양주의 진정한 의도는 이러하다. 그는 다른 사람을 도우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다른 사람을 도우는 것이 반드시 스스로 원해서여야 한다고 한 것이다. 더더구나 "천하" 혹은 "명교(名敎)"라는 말로 남을 돕도록 협박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의 "위아(爲我)"는 "유아(唯我)"가 아니다. 오히려 "나(我)"의 자주성을 강조한다. 그는 "이타주의(利他主義)"를 도덕의 볼모로 삼고, 절대명령으로 삼는 것을 거부한다. 특히 국가 혹은 예교(禮敎)의 명목으로 개인의 희생을 요구할 때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그는 나누는 것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도덕볼모 배후의 권력세력에 반대한 것이다.
선진제자(先秦諸子)중에서 양주는 특별히 개체생명의 독일성(獨一性)과 유한성(有限性)을 강조했다: 그는 군왕, 종묘, 이상을 위해 생명을 희생하는데 반대했다. 생명은 일단 잃으면 다시 되돌릴 수 없으므로, 반드시 현재의 존재를 잘 대해주어야 한다. 이는 유가가 강조하는 "성인취의(成仁取義)"의 주류 환경하에서, 반성한 개체의 청류(淸流)이니 실로 고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양주의 학설에서 "위아"는 "이기(利己)"가 아니다. 그의 "위아"는 일종의 "자아"를 주체로 귀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일종의 선택의 자유와 생명권을 존중하는 개인중심의 윤리이다. 그는 타인을 위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고, 스스로 남을 해치지 않았다. 다만 제도와 다른 사람이 강제로 개인의 선택권을 빼앗는 것에는 반대했다. 그는 편협한 이기주의자가 아니었고, 선진사상가중에서 보기 드문 개인존엄의 보호자였다.
현대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양주의 이런 입장은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1) 윤리자주(moral autonomy): 나는 도덕명령의 노예가 아니다;
2) 자아소유권(self-ownership): 나의 신체, 감정, 시간은 여하한 '숭고'한 목적에 강제로 징용되지 않는다.
3) 집단주의압박을 반대(anti-collectivist oppression): 집단은 '선'의 명목으로 나를 희생하라고 할 수 없다.
양주가 '도덕볼모'를 거절한 것은 현실적인 의미가 있다. 소위 도덕볼모라는 것이 현재 나타나는 방식은 이러하다: "네가 이런 것조차 하지 않으려 하다니, 네가 양심이란 것이 있느냐?" "모두가 이렇게 하는데, 왜 너 혼자만 하지 않느냐?" "네가 조금 희생하지 않으면, 너는 냉막하고 무정하고 비도덕적이다."
이에 대하여 양주의 대답은 확실하다: "인개지유기(人皆知有己), 이막지애기야(而莫知愛己也). 즉, 모든 사람은 '나'의 존재를 알고 있다. 그러나 진정 어떻게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해야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는 물질주의상의 보존일 뿐아니라, 심리적인 의미에서의 존엄유지이다. 그래서 양주의 입장은 기실, "이타"의 명목으로 "나"의 자유와 완전성을 빼앗아가는 것을 거절하는 것이다.
오랫동안의 국민교육은 "희생이 미덕이다"라는 관점을 강조해왔다. 특히 전쟁, 가정과 조직에서 연이어 나타난다. 이에 대해 양주는 이런 의심을 품는다: 왜 개체는 반드시 '의의'를 위해 자아를 희생해야 한단 말인가? 누가 그런 '의의'를 결정한단 말인가?
양주식의 "터럭 하나를 뽑는 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은 감정의 한계를 확립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즉, 거절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고, 자주선택의 여지를 유보하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성숙한 도덕적 판단이다. 이 설의 배후에 있는 윤리는 "봉헌은 선이다"라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정에서 기꺼이 자신의 의사로 하는 것이야말로 선의 의미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결론내린다. 양주의 사상은 현재의 가정윤리, 정치강압과 심리자주등 문제에 대하여 무시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의의가 있다고.
가정윤리에 대하여, 양주의 사상은 "변계즉애(邊界即愛)"를 강조한다. 그가 거절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효도" "희생" "혈연"을 명목으로 감정적인 볼모를 삼는 것이다. 부모식의 지배통제를 포함하여. 그리하여, 사람은 친밀한 관계에서의 '무제한희생'에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사랑 가운데 '나'의 완전성을 보류하는 것이다. 자아를 해체하여 관계의 안정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 점에 있어서, 서방인들은 일찌기 우리보다 잘 해왔다. 다만 불행한 점은 현재 또 다른 극단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자아를 강조하여, 가정윤리와 친밀관계를 무시하고, 심지어 LGBTQ식의 기형적인 관계를 종용하는 동시에 가정의 해체까지 주장하는 것이다.
정치압박에 대하여 양주의 사상은 "집단의 숭고한 가치"의 정당성기초에 의문을 표한다. 권력이 권력자체를 '도덕화'하는데 반대하고, '국가, 민족, 진보'의 명의로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에 반대한다. 개인은 수단이나 댓가가 아니고, '최종목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여하한 강제적인 정치충성도시험 예를 들어, 입장, 신분, 줄서기, 사상순결도 및 '집단주의로 개인을 합법적으로 볼모로 삼는 것'등등에 대하여도 자연스헙게 의문을 표하고 거부한다.
심리건강에 대하여, 양주의 사상은 "위아"를 강조한다. 즉 개체존재의 우선성이다. 그것은 사회역할의 정의에 의해 집어삼켜지게 되는 것을 거절하고, 정서볼모나 과도한 순종, 아부형인격등으로 스스로 상처입는 희생을 거부한다. 이렇게 유한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자신'이 되기를 거절할 것을 강조한다. 사람으로 하여금 상처를 입은 후의 허무감, 강박성 보상과 양심가책순환에서 벗어나, 자아인식을 새로 세우면서 최종적으로 "내가 마땅히...해야 한다"는 것에서 해탈하여,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을 추구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로 말하자면, 양주는 세계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부득이한 세계"에 반대했다! 양주는 사회에서 도피할 것을 주장하지 않았지만, 이데올로기로 '사회에 대한 공헌'을 정의하여 한 사람의 도덕가치를 평가하는 것을 거절했다.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이기적인 '나'가 아니라, 거짓가치관에 희생되지 않는 진실한 '나'이다.
이런 양주, 이런 통찰력은 2500년전이었지만, 현재 많은 사람들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보면 "고금지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