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은우시 2025. 4. 30. 11:11

글: 마비명(馬悲鳴)

1988년 12월 7일, 소련공산당 총서기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유엔연설에서 소련은 더 이상 동유럽위성국가의 일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들 국가는 그후 스스로 제도개혁을 결정할 수 있었다. 이는 냉전이 끝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1989년 2월 당시 36살이던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시카고대학에서 국제관계강연을 했다. 그해 여름, 후쿠야마의 이 강연원고는 <역사의 종말>로 정리되어 <The National Interest>잡지에 발표된다.

이 글은 크게 찬양을 받으면서 또한 큰 반박도 받게 된다: 역사는 시간의 함수이다. 시간이 정지하지 않으면 역사는 종말이 없다.

그 말은 당연히 틀린 것이 없다. 다만 후쿠야마가 말하는 "역사"는 제도변화의 과정이다. "역사의 종말"이라는 것은 인류제도의 변화(혁명 혹은 개선)의 과정이 곧 끝날 것이라는 말이다. 소련이 일당독재의 독재통치를 포기한 것은 증명한다. 자유민주의 사회관리제도가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을. 이후 더 이상 대규모의 제도개혁과 사회혁명은 없을 것이다. 소위 "역사의 종말"은 바로 그런 뜻이다.

후쿠야마의 이 글이 발표된 후 2년반이 지나, 소련은 1991년 성탄절에 해체를 선언한다. 이는 더욱 후쿠야마의 통찰력을 증명했다. 이후의 사회제도 변화는 더 이상 혁명을 겪지 않았다.

소련이 스스로 해체한 것을 보면 그렇다. 다만, 후쿠야마의 견해는 프롤레타리아문화대혁명을 겪은 중국은 포함되지 않는다. 바로 "역사의 종말"이 발표된 1989년 여름에 중국에서는 공산당을 혁명하려는 89년 민주운동이 발생했지만, 6.4진압을 당하게 된다.

그렇다면 중국은 "역사의 종말"대군에 가입할 수 있을 것인가?

36년전에 천안문광장에서 발생한 사태를 보면 아주 어렵다고 보인다.

왜 어려울까?

그것은 중국이 일찌감치 중국판 "역사의 종말"을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중국판 "역사의 종말"은 바로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것이다. 이 과정은 기원전236년에 조나라를 공격한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기원전221년 제나라를 멸망시킴으로써 끝이 난다. 15년이 걸렸다.

그후 비록 6국의 구귀족이 연합하여 진나라를 멸망시켰고, 서초패왕 항우가 열국을 다시 봉했지만, 곧이어 유방이 다시 통일해버린다. 진시황이 제도의 우세를 가졌다는 점에서 시대를 앞서간 측면이 있다. 비록 치도(馳道)를 만들어 교통을 개선했지만, 통신기술은 여전히 느렸다. 그리하여 유방은 다시 통일한 후에 역시 제후를 분봉한다. 다만, "유씨가 아니고 왕이 되는 자는 천하가 함께 주살할 것이다."라고 정하게 된다.

그후 중국의 역사는 비록 왕망이 신, 삼국, 남북조, 오대의 난을 거치게 되지만, 대체로 진시황이 당초 만든 제도를 유지하게 된다. 단지, 수, 당때 과거제도를 추가하여, 일부 반골기질이 있는 인재들을 체제내로 흡수했을 뿐이다.

진(秦)에서 청(淸)까지 제도는 기본적으로 크게 바뀌지 않았다. 특히 대청은 철저히 봉방건국(封邦建國)을 포기한다. 비록 왕을 봉했지만, 봉지(封地)는 없었다. 명나라때 연왕(燕王)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봉지가 있었고, 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청은 삼번을 평정한 후, 철저히 봉지를 가지고, 병권을 가진 번진을 없애버린다. 대청에 이르러 진정으로 진시황이 봉건제도를 소멸시키려는 목적을 완성하게 된 것이다.

무술변법에서 신해혁명, 국민당의 북벌과 중공의 '해방'까지 항상 진시황이 시작한 '역사의 종말'을 벗어나고자 하고, 역사를 다시 쓰고자 했다. 그러나, 몇차례 몸부림을 쳤지만 결국은 되돌아오곤 했다. 결국은 부득이하게 위대한 지도자가 직접 일으키고 지휘하는 프롤레타리아문화대혁명의 아래에서 기원전221년의 기점으로 되돌아가버린 것이다.

그리스, 로마를 기점으로 하는 서방사회관리제도의 변화와 부흥은 1991년 소련해체로 '역사의 종말'을 이루었다. 이후 더 이상 혁명은 없다. 남은 것은 자본주의의 길 뿐이다.

중국은 거기에 끼지 못했다. 눈을 떠서 세계를 바라보기 전에, 중국역사의 종말은 "육왕필(六王畢), 사해일(四海一)"(6국을 멸망시키고, 천하를 하나로 통일하다)의 "진왕소육합(秦王掃六合)"에 머물러 있다. 이전에, 춘추전국의 각국은 변법과 혁신을 계속했다. 다만 그후에는 없었다. 단지 황실의 성이 바뀌는 왕조교체만 있을 뿐이다. 승리하는 측은 다시 옛 제도를 재건하고, 1천년간 진나라의 정치와 법을 시행했다.

중국인이 그럴 듯한 개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대내적으로 독재, 대외적으로 확장을 꿈꾼다. 모든 중국인은 조야를 불문하고, 무슨 제도상의 대내적인 공평, 대외적인 우호를 추구하지 않고,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기세로, 세계를 통일하고, 역사를 종결하려 한다. 이것이야말로 중국인의 마음 속에 있는 최대의 포부이자 이상인 '백년만의 대변국' 즉 동승서강(東昇西降)이다.

누가 집권하든 마찬가지이다. 승리의 기치를 워싱턴 백악관의 옥상에 꽂는 것이다; 마치 베트남의 남방유격대가 승리의 금성홍기(金星紅旗)를 미국 주사이공대사관의 옥상에 꽂았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