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문혁후)

문혁의 비극: "인흘인(人吃人)"

중은우시 2025. 1. 22. 15:55

글: 임배서(林培瑞)

<북경지춘> 1996년 12월호

2년전 중국의 작가 정이(鄭義)는 타이완에서 책을 한권 출간했다. 제목은 <홍색기념비(紅色記念碑)>이다. 책에서는 문혁시기 광시(廣西)에서 발생한 식인현상을 묘사하고 분석했다. 출판이후 해외중국인들 사이에서 논쟁이 일어났으며, 지난 달에는 미국에서 영문번역본이 출판되었다.

중국인과 중국에 관심있는 외국인은 일찌감치 문혁에 관한 잔인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왔고, 많이 알고 있다. 더욱 잔인한 이야기는 차마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이다. 당국이 말하지 못하게 할 뿐만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이야기 자치게 나무나 추악하여, 말로 한다는 것 자체가 문명언어의 기본적인 수준에 위반하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들은 항상 일종의 상반된 느낌이 있다. 만일 우리가 인류의 가장 추악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것을 꺼내어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는다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을 뿐아니라, 또한 아주 위험한 일이라고. 타조처럼 숨는다고 끝날까? 어떤 현상을 인식하기 원치 않는다면, 그것의 원인을 분석하길 원치 않는다면, 어떻게 그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정이와 처인 베이밍(北明)의 도덕정 용기는 비범하다. 1986년과 1988년 두 차례에 걸쳐 광시로 가서 현지조사를 한다. 방문과 문서자료에서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한다: 1968년 여름, "계급적인(階級敵人)"에 대한 비판, 투쟁, 살해가 일어난다. 죽인 후에는 배를 가르고, 심장과 간을 꺼내어 잘게 썬 다음 기름에 튀겨서 먹었다. 다리도 먹었고, 생식기도 먹었다. 피해자가 아직 죽기 전에 미리 배를 가르고 살을 베어낸 경우도 있었다. 또 어떤 사람은 계급적인 입장이 굳건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적의 머리를 베어낸 후 농구장으로 가서 사람머리로 농구를 했다. 이를 통해 입당자격을 얻으려 한 것이다. 그후 그는 입당했을 뿐아니라, 지도자는 그를 위해 당대회까지 소집해 주었다.

이런 이야기는 당연히 듣기에 거슬린다. 누구도 듣길 원하지 않는다. 누군가 유언비어를 퍼트리는게 아닐까? 고의로 공산당을 모독하는 건 아닐까? 아쉽지만 그렇지 않다. 정이는 많은 당과 정부의 내부문건 부본을 얻었고, 이들 문건은 피해자의 친척이 정의에게 할 말이 근거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예를 들어, 광시 친저우(欽州)지구에서 1987년의 공식통계보고서를 보면, 해당 지구에서 문혁기간에 사람을 죽이고 입당자격을 얻은 사람이 1,153명이다. 우이현(武宜縣)에서 1983년에 내놓은 문건을 보면, 1968년 여름에 최소 75명이 다른 사람들에게 먹혔다. 그중 심장과 간이 꺼내어진 사람이 56명, 생식기가 잘린 사람이 13명이고, 모조리 먹힌 사람(심지어 발까지 모두 먹었다)이 18명이었다. 살아있는 상태로 배가 갈린 사람이 7명이다. 보고서에는 구체적인 성명이 붙어 있다. 광시의 다른 현의 통계는 포함되지 않았다.

정이의 책이 출판된 후, 많은 해외중국인들은 그를 지지했고 용기에 감탄했다. 다만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다. 비판하는 사람은 정이가 말하는 사실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는 않았다. 그들도 사실은 인정한다. 다만, 서로 다른 이유로 그런 현상은 발표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필자가 들은 이유는 네 가지이다.

첫째, 어떤 사람은 식인현상은 여러해 이전의 불쾌한 경험인데, 왜 굳이 지금 끄집어 내는가? "미래를 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다만, 정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우리가 이전의 인위적 재난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만일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연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미래를 볼 수 있겠는가. 일본군대가 1940년대에 중국에서 간음약탈한 것을 일본의 학교과서는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군대는 우리가 잊기를 원한다. 우리가 백지처럼 그저 '미래를 보는' 것을 원한다. 그게 옳은 일인가? 건강한 일인가? 중국공산당이 광시에서 사람을 먹은 현상은 충분한 자료가 있는데 십여년간 계속하여 발표하지 않았다.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게 건강한 것인가?

정이에 대한 두번째 비판은 광시는 장족(壯族)자치구이고, 장족의 민족전통은 비교적 원시적이어서 한족보다 더 쉽게 야만적인 행윌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상당히 비열하다. 광시에서 사람을 먹은 사람들은 절대다수가 한족이거나 한화된 장족이다. 식인의 원인도 소수민족의 원시문화에 있지 않다. 모택동이 만든 당대계급투쟁이 원인이다. 장족을 희생양으로 삼는 나약한 아Q주의에 불과하다.

세번째 유형의 비판을 비교적 많이 들었다. 어떤 해외중국인은 정이가 집안의 추악한 일을 바깥에 드러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면 전체 중국인의 이미지가 훼손된다는 것이다. 다만 정이를 지지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얼굴에 상처가 있다고 하여 거울을 탓해서는 안된다. 진상을 숨기는 것은 허약하다는 표지이다. 그리고 해외에서 이미 편안하게 잘 살고 있는 중국인이 단지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하여, 편안한 느낌을 유지하기 위하여, 국내에서 피해를 입은 동포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기회조차 막아버린다면, 그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이다.

나 자신은 외국인이다. 외국인에 대한 반응은 비교적 잘 알고 있다. 내 생각에 서양사회에는 확실히 일부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들도 있다. 중국에서 식인현상이 있었다는 것을 들으면 깜짝 놀랄 것이다. 간단하게 중국을 비문명적인 나라라고 욕할 수 있다. 다만 그런 서방인들은 책을 잘 보지 않는다. 책을 본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정이가 쓴 수준높은 책이 아닐 것이다. 내 생각에 정이의 많은 서방독자들은 또 다른 놀라움을 느낄 것이다. 그들은 물어볼 것이다: 설마 중국에서, 문화가 그렇게 찬란한 중국에서, 사람이 그렇게 귀여운 중국에서, 이런 일이 출현했단 말인가? 책을 다 본 이후에, 그런 독자들은 중국을 욕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모택동을 욕할 것이다. 위국청(韋國淸. 장족출신장군)등을 욕할 것이다. 절대로 광시의 피해자들은 동정할 것이다. 그리고, 중국에 극히 추악한 사실을 직시할 용기를 지닌 작가가 있다는 것을 알면 그런 서방독자들ㅇ느 오히려 중국에 대하여 높이 평가할 것이다. 낮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정이에 대한 네번째 비판은 어떤 사실은 너무나 추악하기 때문에 써내게 되면 사람의 기본반응을 자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독일의 나치정권이 무너진지 여러해가 지난 후에야 비로소 누군가 포로수용소의 무서운 사실들을 진지하게 회고하기 시작했다: 독가스, 인피등갓 등등. 미국이 원자폭탄을 일본의 히로시마에 투하한 날은 나 개인적으로 태어난지 돐이 되는 날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이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30여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것을 직시할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그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3년전에, 나는 처음으로 정이의 광시에 대한 보도를 보았다. 그저 개략 20분 정도 보고, 10여분동안 휴식을 취했고, 다른 일을 하면서 평정을 회복했다. 추악한 것을 회피하는 것은 확실히 국가 혹은 문화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의 보편적인 반응이다. 다만, 그것에 가장 총명한 반응일까?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정이와 같이 비범한 사람의 보도를 보게 되면 그가 나의 평정을 무너뜨렸다고 비난해야 할까? 아니면 그가 나를 일깨운 것에 대하여 감사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