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여우샤(張又俠)가 인민해방군을 완전히 장악했는가?
글: 호해(胡亥)
동부전구(東部戰區) 사령관 린샹양(林向陽)이 물러난 것은 인민해방군 오대군구(五大軍區)의 사령관교체가 마무리된 것을 의미한다. 이번 조치는 시진핑의 군대내에서의 심복들을 숙청하는 작업의 중대한 진전이며, 동시에 인민해방군 권력구조의 전면적인 구조조정을 완성했음을 선언한 것이다. 이번 핵심조치로, 장여우샤(張又俠)는 오대전구를 통합하는 작업을 완성했고, 육군을 핵심으로 하는 "육군이 왕이다"라는 군대장악체계를 확립했으며, 군권을 공고히 하는 기초를 닦았다.
7월부터, 장여우샤는 점진적으로 군권국면의 재조정을 실시했다. 먼저, 그는 시진핑이 육군체계내에 심어놓은 푸젠 31군출신들을 겨냥하여 정리작업에 들어갔다. 9월초, 전 육군정위(陸軍政委) 친슈통(秦樹桐) 상장이 제거된다; 그후 육군 부사령관 리훠후이(黎火輝) 중장, 장밍차이(張明才) 중장등 시진핑파의 핵심인물들이 연이어 낙마했다. 이런 행동을 통해 장여우샤는 시진핑파의 육군내에서의 기반을 철저히 약화시키고, 전면적으로 육군을 장악하는데 있어서의 장애를 제거한 것이다. 이에 상응하게, 장여우샤는 신속히 새로운 육군지휘부를 구성한다. 그의 오랜 심복인 리챠오밍(李橋銘) 상장을 핵심으로 하여, 쉬더칭(徐德淸) 상장을 육군정위에 임명하여, 일문일무(一文一武)의 듀얼코어배치를 통해, 육군의 지휘효율과 협력능력을 현저히 제고했다. 이 배치는 각대전구의 협조능력을 강화시켰을 뿐아니라, 작전지휘체계를 핵심으로 하여 군권을 주도하는 국면의 핵심라인이 형성된 것이다.
육군체계를 공고히 하는 것과 동시에, 장여우샤는 육군과 오대전구를 핵심으로 하는 육군이 군대체계를 장악하는 것이 이미 형성되었다. 그 핵심역량은 13개 중장비합성집단군, 그리고 신장군구, 시장군구의 양대기동부대로 총병력이 150만을 초과한다. 그리고 강대한 해군, 공군 및 하이테크기술작전지원부대를 보유한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장여우샤의 치군노선이 영병(領兵)작전을 핵심으로 하여, 덩샤오핑, 장쩌민, 시진핑시기의 정치공작우선전통을 대체했다. 이를 통해 직업화된 지휘모델을 확립한다. 이 변혁은 리챠오밍, 황밍(黃銘), 우야난(吳亞男)등 군대를 지휘하는 상장을 군권장악의 핵심역할에 위치시킨다. 이를 통해 장쩌민, 시진핑시기의 '치군(治軍)'과 '영군(領軍)'을 불리시켰던 국면을 바꿔버린 것이다.
장여우샤의 동작은 시진핑의 군대내의 영향력을 현저히 약화시킨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중앙군사위원회 정치공작부 주임 먀오화(苗華)는 이미 정직되었고, 중앙군사위 참모장 류쩐리(劉振立), 무경사령관 왕춘닝(王春寧)도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시진핑의 군내내의 심복으로 유일하게 남은 허웨이둥(何衛東)은 이미 주변으로 밀려났다. 장여우샤의 포석이 완성되면서, 군권은 육군체계에 집중되었고, 중공의 최고지도자가 당정군의 권력을 모두 장악하던 전통이 타파되어, 당정최고지도자와 군권이 분리되어, 당이 군대를 지휘하는 원칙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역사적인 변화는 중공의 권력구조와 정치동향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타이완해협, 남해등 주변안전의제도 이미 전통적인 당내의 정치적의사결정에서 점진적으로 군대가 주도하는 군사의제로 바뀌고 있다. 타이완해협문제에서, 개전할 것인지 말 것인지, 언제 개전할 것인지 등등의 의사결정은 지금 점진적으로 당정최고지도자가 단독으로 장악하던 것에서, 갈수록 군대측의 이슈가 되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미중관계 및 중국주변국과의 중대한 외교의사결정도 점차 군대가 주도하고 있다.
이런 신국면하에서, 중국의 외교 및 내정의 의사결정권은 군대측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시진핑이 계속 집권하든 아니면 막후로 물러나든, 군대는 갈수록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군대가 강경하게 국가권력을 주도하는 국면이 나타날 수 있다. 장여우샤는 군대를 전면적으로 통합함으로써, 인민해방군의 지휘구조를 새로 만들었을 뿐아니라, 중국정치에 완전히 새로운 길을 열었다. 강군치국(强軍治國)을 핵심으로 하는 군인의 정치간여모델이 시작된 것이다. 이 모델은 '당이 군대를 지휘한다'는 전통을 타파했고, 중국의 권력구조가 중대하게 변화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중국의 미래 통치모델과 역사방향을 바꾸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