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가(法家)는 GDP에 관심이 없다
글: Achilles
한번은 누군가 나의 지후(知乎)의 답글에 댓글을 달아놓았다: "한비자(韓非子)는 대철학가(大哲學家)이다." 나는 크게 놀랐다.
여기에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씀드리자면, 나는 중국고대에는 철학가가 없었다고 보는 그런 무지한 사람은 아니다.
만일 누군가 노자, 장자를 철학가라고 말한다면, 나는 전혀 이의가 없다. 공자, 맹자가 철학가라고 말한다면, 윤리학도 철학으로 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한비자는 아니다. 한비자의 학설에서 학문을 하는 것은 모두 사회의 좀같은 존재이다. 그와 동창인 이사(李斯)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행하지 않았던가. 어디 철학가가 자신의 판을 깨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하여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물었다: "한비자도 철학가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는 나의 대댓글에 이렇게 다시 댓글을 달았다: "한비자의 이론은 지주계급을 해방시켰고, 생산력을 발전시켰다. 다행히 내가 체계적으로 배웠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당신에게 속을 뻔했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감히 고등학교 역사교과서가 체계적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더이상 그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는 나로 하여금 깊은 생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다른 것은 신경쓰지 않더라도, 법가(法家)의 변법(變法)의 핵심사상은 바로 모든 사람이 다른 일 예를 들어 공상업에 종사하거나, 학문을 하거나, 유협(遊俠)이 되거나, 은사(隱士)가 되거나하는 것을 금지하고,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두 가지 일만 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는 농사를 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투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력자원을 집중하면, 자연스럽게 전쟁에서 더욱 강력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법가에게는 두 가지 비결이 더 있었다. 이를 통해 인력자원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다. 하나는 중벌경상(重罰輕償)이고, 다른 하나는 민중을 가난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정말 아주 천박하다. 법가에서는 이런 것을 발견한다. 만일 군왕이 상을 하사함으로서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행위를 하도록 하려면 한편으로 돈이 많이 들고,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의 적극성이 그다지 높지 않게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왕이 엄격한 형벌로 자신이 보기 싫어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게 막으면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더욱 노력하게 된다.
이건 아주 시대를 앞서간 깨달음이다. 현대의 행위경제학은 이것을 손실혐오라고 부른다. 쾌락보다 고통이 3배의 영향력을 지닌다고 한다.
이뿐아니라, 사람은 징벌을 받음으로 인해서 군왕을 더욱 받들게 된다.
<상군서>의 제4편 <거강(去强)>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중벌경상(重罰輕賞), 즉상애민(則上愛民), 민사상(民死上);
중상경벌(重賞輕罰), 즉상불애민(則上不愛民), 민불사상(民不死上)
형벌을 중하게 내리고, 상을 내리는데 신중하면, 즉 군왕은 백성을 아끼는 것이 되고, 백성은 군왕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상을 많이 내리고, 형벌을 내리는데 신중하면, 즉, 군왕은 백성을 아끼지 않는 것이 되고, 백성은 군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는다.
법가는 심지어 스톡홀름증후군까지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정만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민중이 가난을 유지해야한다는 것에 대한 상앙의 해석은 이러하다.
빈즉중상(貧則重賞)
백성을 결핍된 상태로 유지해야 상을 내리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의 한계효용체감법칙을 법가는 미리 알고 있었던 것같다.
현재, 우리는 확실히 법가의 변법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의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법가의 이론이 생산력을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을까?
나의 생각에 그렇지는 않다.
만일 당신이 경제학을 배웠다면, 첫번째 경제학모형은 생산가능성한계일 것이다. 이 모형은 아주 간단하다. 사회의 모든 자원으로 단지 2가지 제품(A와 B)만을 생산할 수 있다면, 횡축과 종축은 각각 이 두 가지 제품의 생산량을 의미한다. 이 곡선이 대표하는 것은 모든 자원이 최대한이 효과를 발휘할 때, A와 B의 생산량에 대한 서로 다른 조합이다.
통상적으로 말해서, 이 곡선은 밖으로 볼록한(凸) 모양을 띈다. 왜냐하면 모든 자원이 어느 한 가지 제품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모든 자원을 단일한 생산활동에 투입했을 때, 그 기회비용은 아주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소위 기회비용이라는 것은 같은 자원으로 다른 물건을 창조해낼 수 있는 가치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모두 100개의 노동력이 있는데, 그중 60명은 숙련된 철장(鐵匠)이고 40명은 숙련된 도장(陶匠)일 때, 최선의 노동력자원분배는 철장에게 쇠제품을 만들게 하고, 도장에게 도자기를 만들게 하는 것이다. 만일 모든 사람이 쇠를 다루거나, 혹은 모든 사람이 도자기를 다루면 그것은 자원낭비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법가변법이후의 사회를 우리는 간단한 생산가능성한계로 그려볼 수 있다.
그중 농경,전투를 횡축으로 하고, 농경,전투를 제외한 모는 생산활동을 횡축으로 했을 때, 우리는 모든 자원, 인력, 문력을 농경과 전투에 투입했을 때, 농경과 전투의 산출은 확실히 최대가 되고, 이로 인하여 군사력도 최대화되지만, 그 기회비용은 아주 크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우리는 이렇게 상상해볼 수 있다. 만일 모든 사람이 농경, 전투에 종사하면 한 나라에서 원래 발명창조에 필요한 사람,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 수공업에 종사하는 사람, 학문을 하는 사람, 문예방면에 종사하는 사람도 모두 농사와 전투에 참가해야 한다. 이들은 원래 그들에게 더욱 적합한 일을 했다면, 사회에 더욱 큰 공헌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경제학의 각도에서 보자면, 법가의 자원분배방식은 지극히 불합리했다.
확실히 춘추전국시대에 비록 식량보유가 충분하였지만, 진나라는 경제가 가장 발달한 지역은 아니었다. 진나라사람들의 생활수준오 아주 낮았다. 당시 경제가 가장 발달한 동방의 제(齊)나라는 필자의 기억에 고등학교때 안자(晏子)가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보았던 초나라의 도성 임치(臨淄)의 번화하고 부유한 모습을 묘사했던 것이 기억난다.
제지임치심백려(齊之臨淄三百閭), 장몌성음(張袂成陰), 휘한성우(揮汗成雨), 비견계종이재(比肩繼踵而來), 하위무인(何爲無人)
제나라의 임치의 삼백개 이문에는 사람들이 소매를 펼치면 햇빛을 가려 그늘이 지고, 사람들이 땀을 흘리면 비가 오는 것같고, 어깨를 부딛치고, 발꿈치를 부딛치며 계속하여 사람들이 지나가는데, 어찌 제나라에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임치의 호구는 한나라초기와 한무제 두 차례의 이주를 겪은 후에도 여전히 수도 장안보다 많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다. 왜 법가의 변법은 경제발전에 불리했을까? 그런데도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까?
상앙(商鞅)의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하나였다: 힘(力)
그리고 상앙은 힘과 지식을 대립시켰다. 즉 국가의 무력과 문화를 대립시킨 것이다.
<상군서> 제5편 <설민(說民)>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국호력(國好力) 왈이난공(曰以難攻), 국호언(國好言), 왈이이공(曰以易攻)
국가가 힘을 숭상한다면, 이는 어렵게 얻은 것으로 적을 공격하는 것이고, 국가가 공리공담을 숭상하면 이는 쉽게 얻은 것으로 적을 공격하는 셈이다.
제6편 <산지(算地)>에도 이런 말이 있다:
민우즉지가이승지(民愚則知可以勝之)
세지즉력가이승지(世知則力可以勝之)
사람들이 우매하면 지혜로 그들을 이길 수 있고,
사람들이 지식이 있으면, 힘으로 그들을 이길 수 있다.
법가는 전국시대의 백가쟁명(百家爭鳴)으로 각국의 사람들이 모두 지혜를 쌓고, 언변을 중시할 때, 힘으로 이것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무력은 일종의 특수한 상품이다. 한 나라의 이런 상품이 다른 나라들을 압도할 때, 즉 다른 나라에서 생산한 것은 모두 그들을 위해 바쳐지는 물건이 된다. 그리하여 비록 진나라 자체의 생산력을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지만, 진군은 어디를 공격한다는 말만 들으면 진나라병사들은 모두 주먹을 불끈쥐고 소매를 떨쳐 일어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터에서 적군의 수급을 베개 되면 상과 작위를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왕도 다른 나라에서 생산한 상품들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이사의 <간축객서(諫逐客書)>를 보면, 진왕의 호화사치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 내용이 있다:
"만일 반드시 진나라에서 생산된 것이 아니면 쓸 수 없다면, 야광주로 조정을 장식해서도 안되고, 서각 상아로 만든 물건도 폐하께서 쓰시면 안될 것이며, 정나라, 위나라의 여자를 후궁으로 들여도 안될 것이고, 북방의 좋은 말을 폐하의 마굿간에 넣으셔도 안될 것이고, 강남의 금석도 폐하께서 쓰지 말아야 할 것이고, 서촉의 단청도 쓰시면 안될 것입니다. 만일 후궁을 장식하거나, 진열하거나, 폐하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눈과 귀를 기쁘게 하는 것들은 반드시 진나라의 것이어야 한다면, 지금의 보석이 달린 비녀, 귀에 달고 있는 귀걸이, 비단으로 만든 옷, 비단옷을 수놓은 장식은 폐하의 앞에 올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진나라의 문화에 적응하여 우아하고, 아름다운 외국여인도 폐하의 곁에 서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같은 방식으로 육국통일이후에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암세포에 비유할 수 있다. 숙주가 죽으면 그 스스로도 살아남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결국, 법가의 변법은 경제발전에 백해무익하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오늘날 국가의 GDP는 통상적으로 총지출 혹은 총수입의 방식으로 계산한다. 예를 들어 내가 현재 등이 간지러운데 스스로 긁을 수 없어서, 누군가에게 10위안을 주고 긁어달라고 했다면, 나는 등이 시원해지고, 누군가는 10위안의 수익을 얻는다. 동시에 이 10위안은 국가의 GDP에 계상된다.
다만, 법가에 있어서, 그 10위안의 GDP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