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표의 마지막 7일...
글: 서염(徐焰)
(서염이 쓴 <북대하왕사추종보고>, 중앙문헌출판사에서 발췌)
북대하(北戴河)의 서쪽 바닷가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곳, 연봉산(聯峰山) 연화석(蓮花石) 옆에, 청회색의 공(工)자형 2층건물이 한동 숨겨져 있다. 이곳은 북대하 중직관리처(中直管理處)의 별장건물들 중에서 96호이어서, 96호루라고도 불렀다(모택동이 거주하는 별장은 95호이다).
1971년 9월 12일 깊은 밤, 임표(林彪), 섭군(葉群), 임입과(林立果), 유패풍(劉沛豊)은 이곳에서, 황급히 산해관공항으로 가는 자동차에 올라탔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이 청회색의 공자형 2층건물은 이로 인해 임표의 생애에서 마지막을 보낸 유일한 목격자가 된다.
1969년 북대하 96호루를 건축할 때, 임표는 떠오르는 해와 같았다. 그는 햇빛을 겁내고, 바람을 겁내고, 불을 겁내고, 격렬한 소리를 겁내고, 급변하는 온도를 겁내며, 사람이 많은 것도 겁냈다....많은 일반인들이 겁내지 않는 것들을 그는 겁냈다. 그러므로, 임표가 북대하의 별장을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지고, 다른 수장들로부터 멀리 떨어지고,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해달라고 요구함에 따라, 관련부서에서는 북경군구 공정병 제7공구는 전 연화석공원 송도초당(松濤草堂)의 원래 부지에 이 독특한 별장을 건설하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지만, 내부시설은 신경을 많이 썼다. 임표가 바람을 무서워하는 생활습관에 맞추기 위해, 96호루의 실내벽은 아주 두꺼웠고, 나무문과 창도 매우 튼튼했다. 창문은 모두 두꺼운 홍색의 바닥까지 내려오는 커튼으로 가려 바람이 들어올 수 없게 했다.
96호루의 배치는 모가만(毛家灣)과 유사했다. 임표가 동쪽에 거처하고, 섭군이 서쪽에 거처했따. 중간의 긴 복도에는 업무인원들의 사무실이 있었다.
임표의 침실 서쪽벽에는 4개의 영화를 방영하는데 쓰는 방영공(放映孔)이 있었다. 크기와 높이가 달랐다. 1층의 모서리에는 20여미터 깊이의 실내수영장이 있었는데, 임표는 물을 무서워하여, 이 수영장은 섭군을 위해 설계된 것이었다. 별장의 곁에는 원래 산의 지형을 따라 만든 차고가 있었는데, 잘 은폐되어 있었다. 차고에서 건물안으로 가는 자동차통로가 있어, 자동차는 직접 거실까지 진입할 수 있었다.
북대하 96호루
일반적으로 말해서, 여름에 북경에서 별 일이 없으면, 임표는 자주 대련 혹은 북대하에서 거주했다. 1970년 제9기2중전회이후, 임표와 모택동간의 관계에 급격한 변화가 발생한다. 그는 북경에 머물길 원치 않았고, 자주 소주와 북대하를 오갔다. 1971년 4월, 임표는 그가 제9기 2중전회에서 앞장서서 일으킨 풍파에 대하여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았고, 그는 시종 자신의 견해를 고집한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1971년, 북경의 여름은 무척 더웠다. 임표는 다시 북대하로 피서를 떠난다. 그의 믿을만한 오른팔이자 아들인 임입과는 북경에 머물면서 수시로 그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특히 모택동의 동향에 대하여.
모택동의 남순(南巡)은 이해의 8월 15일부터 시작되었다. 주요목적은 각지의 주요영도간부들과 '인사'하는 것이었다.
모택동 자신의 말을 빌리면, 그는 진백달(陳伯達)이 도처에 유세한 것을 본받았다고 하면서, "여산회의를 개최한지 근 1년이 지났지만, 여산의 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간부와의 대화에서 임표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직접적으로 그가 임입과를 초천재라고 치켜세운 일을 비판했다.
이전에는 모택동이 외출하면 기본적으로 9월말에 북경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1971년의 남순때 모택동은 반달을 앞당겨 귀경한다. 그의 전용열차가 비밀리에 북경 풍대(豊臺)역에 도착한 후 11시간만에, 임표이 전용기는 돌연 북대하에서 이륙을 강행했고, 2시간후에 비행기는 추락한다. 9.13사건은 이렇게 발생한 것이다.
9월 5일, 광주군구 공군참모장 고동주(顧同舟)는 모택동이 장사에서 말한 내용을 비밀리에 임입과에게 보고한다. 9월 6일 저녁, 황영승(黃永勝)은 모택동이 말한 내용을 북대하의 임표와 섭군에게 보고한다. 그리고 9월 12일저녁 임표등이 황급히 비행기를 타고 도망치기까지, 짧은 7일동안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는 북대하96호루는 실로 암류용동(暗流湧動)이었고, 각로의 사람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이곳에 모여들었다. 그러나 떠난 사람은 오직 임표, 섭군, 임입과였다.
예비사위, 예비며느리를 처음 만나다
임표의 위사장(衛士長) 이문보(李文普)의 회고에 따르면, 9월 6일 주우치(周宇馳)는 모택동이 남방을 순시할 때 호남, 광동, 광서등지의 당정군지도자간부들을 만나 임표를 비난한 발언자료를 북대하로 와서 임표, 섭군, 임입과에게 전했다. 발언내용이 무엇인지는 불명확하다.
그후, 섭군은 직접 전화를 걸어 북경의 임두두(林豆豆)에게 남자친구 장청림(張淸林)과 임입과의 여자친구 장녕(張寧) 그리고 공정보위부(空政保衛部)에서 임두두의 경위업무를 전담하는 처장 양삼(楊森)을 북대하로 부른다. 임두두등 세명은 96호루에서 400미터 떨어진 황색주택에 머문다. 경위일련번호로는 56호루이다. 임입과의 57호루는 50미터 밖의 소백유마로(小柏油馬路) 건너편에 있었다.
북대하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임두두는 임입과의 57호루로 불려가서 그와 밀담을 나눈다. 그동안, 임표, 섭군은 임두두를 보겠다고 했고, 이문보는 57호루로 뛰어가 통보한다. 주우치가 입구에서 막아섰으나, 그가 수장이 두두를 보려한다고 말하자, 주우치는 그를 들여보내준다.
장녕, 장청림을 만나고, 임표는 아주 기뻐했다. 섭군이 그에게 만족하는지 물으니, 그는 "만족한다. 아주 만족한다. 한명은 노홍군의 딸이고, 한명은 노동인민의 아들이니, 아주 좋다."
바로 이때, 섭군은 긴장하여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9월 7일 저녁 9시 30분경, 총참2부의 한 참모가 관례대로 섭군에게 '강의'를 하는데, 원래의 내용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대왕 혹은 미국영화 <패튼장군>이었다. 그러나 섭군은 이날따라 돌연 <세계지도집>을 꺼내놓고, 몰골에 어떤 대도시가 있는지 물었고, 어떤 지방에 소련군대가 있는지, 중소, 중몽국경지구에 얼마나 많은 소련군대가 있는지를 물었다.
폭풍전야의 천륜지락(天倫之樂)
모택동의 남행담화를 알고난 후, 아들은 북경에서 어사망파(魚死網破, 최후의 결전을 죽기살기로 하다)를 준비하고, 마누라는 북대하에서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임표 자신은 평상시처럼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이문보의 기억 속에, "9월 8일, 임표는 모든 것이 평상시와 같았다. 96호루는 아주 조용했다. 임표는 나에게 임입과가 어디로 갔는지 묻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 임입과가 북경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이미 안전하게 북경에 도착했으니 나보고 수장에게 보고하라는 것이다. 나는 즉시 임표, 섭군에게 보고했고, 임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잘했다!"고 말했다.
9월 9일, 북대하 96호루는 비교적 조용했다. 바다에는 수영하는 사람이 있었고, 산위에는 경계가 삼엄했다. 임표사무실의 사람들은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각자 자신의 일로 바빴다.
9월 9일에 잠을 자지 못하여, 임두두는 9월 10일에 오후2시까지 늦잠을 잔다. 일어난 후, 장청림, 장년과 함께 산해관, 진황도로 유람을 간다. 장녕은 임표에게 작은 새를 한 마디 선물하고, 임두두는 부친을 위해 기계병(機械兵)을 사왔는데, 기계병은 총을 매고, 포복을 하고, 조준사격을 할 수 있었다. 임표는 이를 보고 아주 크게 웃으며 기뻐했다.
섭군은 즉시 이문보에게 이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라고 눈짓을 보낸다.
예비사위, 예비며느리도 보고, 즐겁게 선물을 가지고 놀고, 사진도 찍었다. 아무도 임표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설사 나중에 밝혀진 자료에 따르더라도, 이 마지막 7일간, 임표가 침실에서 무슨 활동을 했는지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11일 오전 11시경, 섭군은 이문보에게 모가완에 전화를 걸어 부군장이상의 간부명단과 전군부대배치상황표를 가져오라고 지시한다. "수장이 전쟁준비문제를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시험삼아 그가 광주로 갈 생각이라고 밝힌다. 당시 이문보는 별 것이 아니라고 여기고 즉시 대답했다: "지금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광주로 왜 가려고 하십니까?" 그리고 더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12일 오전, 임표는 이문보를 불러 물건은 수습해서 대련으로 갈 준비를 하라고 지시한다. 오후에 임두두가 돌연 이문보에게 말한다: "임입과가 온갖 나쁜 짓을 다하면서, 모주석을 해치려 한다. 그들은 광주로 가려고 한다. 만일 안되면 수장을 홍콩으로 보내려 한다. 너는 수장이 비행기를 타고 떠나게 해서는 안된다." 이문보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 이문보는 임표가 대련으로 가는지 광주로 가는지를 생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섭군은 임두두, 장청림을 데리고 임표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다: "장청림이 청혼하고, 두두가 동의했습니다. 오늘 저녁에 '약혼식'을 거행하려고 합니다."
임표도 박수를 치며 좋다고 했다: "아주 좋다! 너희들 약혼 축하한다." 그리고 섭군, 임두두, 장청림과 사진을 찍었다.
그날 저녁, 섭군은 비서와 업무인원에게 이렇게 지시한다. 손님이 와서 먹을 것은 아닌데, 좋은 담배, 술, 과자, 차등을 준비해랴. 그리고 영화 2편을 준비해서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라.
모든 사람들이 임두두와 장청림의 약혼을 축하하며 즐기고 있을 때,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가무승평(歌舞昇平)의 북대하96호에 대지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마지막 영화 한편
먼저, 임입과가 돌연 도착했다. 어두워진 후, 96호루의 복도에서는 홍콩의 애정영화 <첨첨밀밀(甛甛蜜蜜)>이 상영되고 있었다. 임두두, 장청림, '임표사무실'비서, 경위, 봉사인원이 모두 모여서 함께 보고 있었다.
20시경, 영화가 절반쯤 상영되었을 때, 비서 송덕금(宋德金)은 돌연 해군 산해관공항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신분이 불명확한 비행기가 곧 착륙하는데, '임표사무실'에서 알고 있느냐는 것이다.
섭군은 딸의 약혼식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어, 아들을 맞을 차를 보내지 않았다. 비행기가 착륙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그녀는 급히 전화로 이문보에게 말한다. 임입과가 이번에 오는 것은 임두두의 약혼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라고.
저녁 9시경, 임입과는 꽃다발을 들고 임표의 별장에 나타난다.
업무인원들은 영화를 보고 있었고, 섭군은 계속 임표이 방에서 장시간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임입과가 돌아온 후, 즉시 그도 밀담에 가담한다. 임두두는 내근공무원 장항창(張恒昌), 진점조(陳占照)를 시켜 문밖에서 몰래 엿듣도록 시킨다.
장항창이 돌아와서 그녀에게 말했다: "금방 화장실에서 문을 사이에 두고 안에서 하는 두 마디 말을 들었는데, 한 마디는 섭군의 말로, '홍콩으로 가면 되겠다!'라는 말이고, 한 마디는 임입과의 말로,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아직도 황, 오, 이, 구를 나에게 넘겨주지 않습니까?'였다."
임두두는 형세가 긴박한 것을 보고, 즉시 이문보와 유길순(劉吉純)을 불러 상의한다. 그리고 당시 북대하에서 임표를 보위하는 8341부대 부단장 장굉(張宏)과 2대대 대대장 강작수(姜作壽)에게 보고한다.
주은래가 그 소식을 듣고, 금방 산해관공항에 명령을 전달한다. 임입과가 북대하로 타고온 그 256호 트라이던트비행기는 주은래, 황영승, 오법헌, 이작붕 4사람이 함께 명령을 내린 경우에만 이륙할 수 있다고. 이작붕은 그와 임표간의 특수한 관계를 고려하여, 교묘하게 주은래의 명령을 고쳐서, 결국 임표가 도망할 수 있게 해준다.
그후에는 주은래가 전화를 걸어 위문한다. 9월 12일 저녁 11시반, 주은래는 직접 섭군에게 전화를 걸어 임표의 상황을 묻는다. 그가 먼저 섭군에게 북대하에 전용기가 있는 것을 아는지 물었으나, 섭군은 먼저 모른다고 말하고, 조금후에 잠시 시간을 두고 말을 바꾸어 주은래에게 말한다: "있습니다. 전용기 한 대가 있습니다. 아들이 타고 온 것입니다. 그의 부친이 말하기를 내일 날씨가 좋으면 하늘을 한바퀴 둘러보겠다고 했습니다."
주은래는 전화로 섭군에게 묻는다: "다른 곳으로 가려는 것이 아닌가?" 섭군이 대답한다: "원래 대련으로 가려고 했는데, 이곳의 날씨가 약간 춥습니다."라고 말한다. 주은래는 "야간에 비행하는 것은 안전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한다.
섭군은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저녁에 비행기를 타지 않을 겁니다. 내일 아침 날씨가 좋아지면 다시 탈 것입니다." 전화를 끊을 때, 주은래는 그들에게 비행할 때, 날씨상황을 파악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만일 필요하면, 그가 북대하로 가서 임표동지를 만나보겠다고 말한다.
공항으로 가려면 반드시 8341부대를 지나가야 한다.
전화를 끊은 후, 시간은 11시 40분을 가리켰다. 섭군은 이문보를 불러, 임표의 방문앞에서 기다리라고 한 뒤, 그녀가 임표의 방에 들어가서 몇 마디를 한 뒤에 이문보를 들어오라고 한다.
이문보는 이렇게 기억한다: "이때, 임표는 일찌감치 침상에서 일어나 옷을 다 입고 있었다. 임표는 그에게 말했다. '오늘 저녁에는 잠이 오지 않는다. 너는 준비해라. 지금 출발하겠다.'"
23시 50분경, 당사자 진점조(陳占照)는 이렇게 말한다: "임입과, 섭군, 유패풍이 함께 임표의 거실로 갔다. 얼마 후, 섭군과 임입과가 걸어나왔다. 임표는 벨을 눌러, 나에게 말하기를 즉시 밤에 대련으로 갈 것이고, 쉬지 않겠다. 어떤 물건은 가지고 가지 않아도 되고, 쓸수만 있으면 충분하다. 대련에서 1주일정도 쉬다가 돌아오고, 북경으로 가서 국경절을 지내겠다고 말한다. 이때 유패풍이 객실 문앞에 서있었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가 보니 쇼파위에 3,4개의 검은색 손가방이 놓여 있었다."
그날 저녁, 96호루의 많은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목격했다. 홍치 방탄전용차가 도착한 후, 임표, 섭군, 임입과가 차례로 자동차에 탔고, 평상시에 차를 타고 나갈 때의 관례대로, 임표의 경위비서 이문보가 앞좌석에 앉고, 뒷쪽에 임입과, 유패풍, 섭군, 임표가 앉았다.
유길순(劉吉純)이 막 96호루에 도착했을 때, 임표의 차는 이미 출발했다. 그와 송비서, 이비서와 소장은 함께 신속히 다른 '볼가(伏爾加)'차량을 타고 산해관공항으로 갔다.
이때 8341부대의 강작수 대대방은 북경의 지시를 받았다. 경위부대에게 전투태세를 갖출 것을 선언하며, 임표의 자동차를 막고 그가 북대하를 떠나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
96호루는 산언덕에 있어서, 남쪽으로 가는 길밖에 없고, 내려가려면 임표의 차량은 임두두의 57호루와 임입과의 56호루를 지나고, 다시 아래에서 8341부대의 58호루를 지나야 했다. 그리고 도로중간의 동서 양쪽은 각각 55호루와 56호루인데 경위부대의 거처였다.
그래서 강작수는 "55호루와 56호루의 사이에 1개 분대를 두고, 도로를 따라 200미터 남쪽에 다시 1개분대를 두었다. 대원들은 큰 길에 횡열로 배치되었고, 양쪽길에 인간방벽식의 관문을 만들어 임표의 차량을 막아 그가 외출하지 못하게 하려 했다. 나머지 경위전사는 모두 건물안에서 방안에 불을 끄지만 옷은 벗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전투준비태세를 갖추어 언제든지 전투할 수 있는 상태로 대기하게 했다."
여학문(呂學文)은 이렇게 회고한다: "경위원들이 임표, 섭군, 임입과와 임표비서, 경위대장 이문보가 96호루에서 나와 자동차에 타는 것을 보았다. 그후 기사 양진강(楊振剛)이 차를 몰아, 빠른 속도로 남으로 향하는 도로를 내려오고 있었다."
이때, 어디의 경위전사인지 몰라도 연이어 소리쳤다: "차가 내려온다. 빨리 막아라!" 당시 나는 1차방어선에 있었고, 10여명의 전사들도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정지! 정지!" 그러나, 자동차는 속도를 낮추지 않고, 오히려 계속하여 클랙션을 울리면서 액셀을 밟았고, 직접 인간장벽으로 부딛쳐 왔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때 섭군은 차를 운전하던 양진강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다: "8341부대가 수장을 배반했다. 수장을 해치려 하니, 빨리 뚫고 지나가라."
중대장 초계명(肖啓明)은 2차방어선에 있었다. 그는 도로의 동쪽에 있었는데, 차량이 1차방어선을 뚫고 그들에게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전사들은 연이어 '정지'라고 소리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는 가로방향으로 기사를 향해 총을 쏘았다(수장은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운전사를 죽여서 차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차는 방탄차량이었고, 총알이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자동차는 이렇게 2차방어선도 뚫었다."
철로난간도 뚫고 지나가다.
차밖으로, 경위전사들이 자동차에 밀려 이러저리 흩어졌다. 차안에 타고 있던 이문보의 구술에 따르면, 임표가 임입과에게 이렇게 묻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이르쿠츠크는 얼마나 멀리 있는가. 몇시간이나 비행해야 하는가. 이문보는 즉시 이번에 떠나는 것이 외국으로 도주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차에서 내리기로 결심한다.
자동차가 7,80미터쯤 달려나간 후, 여학문의 눈앞에 이런 장면이 펼쳐진다: "홍치 전용차가 돌연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이어서 차 에 타고 있던 이문보다 뛰어내렸다. 그리고 차 뒤로 몇 발자국 뛰어갔을 때, 그는 뒤에 몇마디 소리를 지르는 것같았다. 이어서 차안에 있던 사람(나중에 알기로 임입과)가 그를 향해 총을 한발 쏘았고, 이어서 여러발을 쏘았으며, 이문보는 바닥에 쓰러진다.
우리가 자동차를 추격해 갔지만, 자동차와 3,5미터 거리에 이르렀을 때, 자동차는 는빠른 속도로 북대하를 벗어났고, 경위요원들은 뒤에 한참 뒤쳐지게 된다.
여학문은 GM차를 타고 임표의 차를 추격해 갔다. 북대하소가를 지난 후, 자동차는 북으로 달렸다. 해변대교를 지날 때, 그들은 임표차의 그림자를 보았다. 운전기사가 액셀을 밟았지만, 아쉽게도 임표의 차는 최고성능의 차량이다. GM차량과 홍치는 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들이 산해관공항 부근의 철도입구에 이르렀을 때, 철도당직방에서 이미 난간을 내려놓았다. 남북의 도로로 가로 걸려 있었다. 이는 동서방향으로 기차가 지나갈 것이라는 것이다. 이때, "임표의 차는 뒤에서 추격해 올까봐 우려하여, 차체가 특수구조로 되어 있는 점을 믿고 액셀을 밟아 난간을 부딛쳐 뚫고, 공항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철로입구에 도착했을 때, 유조탱크를 끄는 기차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나갔다. 우리의 자동차 등불앞에는 흙먼지가 가득했고, 시야가 불분명했다. 이때 나는 시계를 보았더니 13일 새벽 0시 13분이었다. 우리 차량이 산해관공항에 도착했을 때, 임표가 탄 트라이던트가 막 이륙하고 있었다. 이때는 개략 0시 30분쯤이다."(여학문의 <나는 임표 도주를 막은 자이자 추격한 자이다>)
북대하 96호루를 벗어난지 2시간여후에, 임표, 섭군, 임입과는 하늘로 날아올랐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임표가 도망칠 생각이었는지, 아니면 그가 대련, 광주, 소련 혹은 몽골로 가려했는지에 대한 해답은 추락한 파편과 함께 소리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