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표도주사건 관련자 퉁옥춘(佟玉春)의 진술
퉁옥춘(佟玉春) 구술, 서운(舒雲)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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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9월 12일 18.30분, 산해관공항(山海關機場)의 운항당직 이만향(李萬香)이 보고했다: 북경에서 전용기 1대가 오고 있다. 나는 비행장의 참모장이고, 전용기의 안전보장을 책임지고 있어 즉시 현장으로 달려가 지휘했다. 그러나 전용기는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20시 10분이 되어서야 전용기가 온다는 말을 들었다.
20시 15분, 트라이던트 전용기 1대가 산해관공항에 착륙했다. 나는 전용기로 나아가 영접했다. 이건 관례이다. 수장(首長)이 비행기에 타거나 내릴 때는 공항총책임자가 송영을 해야 했다. 나는 임표(林彪)의 아들 임입과(林立果)가 전용기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의 뒤에는 군복을 입은 사람이 따라나왔다(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공군사령부판공실 부처장 유패풍(劉沛豊)이었다).
임입과는 이삼일에 한번씩 왔기 때문에 자주 본 사람이다. 그는 나에게 인사를 건넨 후, 차를 타고 떠나려 했다. 그런데 돌연 북대하(北戴河)에서 차를 보내오지 않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상한 일이다! 중앙직속기관이 어찌 차량을 보내지 않았을까? 나는 급히 비행장의 당직에게 북대하와 연락하게 했다. 임입과는 초조한 표정이었다. 무슨 급한 일이 있는 듯했다. 그는 북대하에서 차가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나에게 차를 내달라고 했다. 1969년 우리가 비행장을 만들 때, 상급에서는 6대의 신형지프차를 주었고, 이는 북해함대의 공항중에서 유일무이한 경우였다.
지프차가 금방 도착했고, 임입과는 기사에게 내리라고 하고는 그가 기사석에 올라탔다. 유패풍이 차에 올라탄 후, 임입과는 빠르게 차를 몰고 떠났다. 나는 임입과가 길을 잘못드는 것을 발견했다. 날이 어둡고, 임입과는 공항도로에 익숙하지 않으니, 공항에서 비행기수리창고쪽으로 간 것이다.
나는 즉시 쫓아갔고, 임입과가 모는 차가 차고문을 들이받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방향을 틀고자 했지만, 아무리 해도 엔진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금방 다시 다른 지프차를 불렀고, 임입과는 두 말도 하지 않고 차를 바꿔타고 유패풍과 같이 차를 몰아 달려갔다.
나는 생각할수록 안심이 되지 않았다. 산해관공항에서 북대하까지는 40여킬로미터의 거리이고, 도로상황도 좋지 않다. 낮에도 다니는 차량이 적고, 밤에는 더더구나 다니는 차량이 없다. 만일 임입과의 차가 도중에 다시 엔진이 꺼져버리면, 앞이나 뒤로 마을도 보이지 않으니 그로서는 아무런 방법이 없게 될 것이다.
나는 참장(站長) 반호(潘浩), 정위 사악룡(史岳龍)과 상의했다: 그가 우리의 차량을 몰고 있으니, 도중에 사고가 발생하면 곤란하니, 제가 살펴보겠다.
반참장과 사정위의 동의를 받아, 나는 다시 한대의 지프차를 불러, 북대하 서산의 문앞까지 달려갔다. 그러나 지프차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제서야 안심하고 산해관공항으로 돌아왔다.
"9.13사건"이후 나는 비로소 임입과가 진황도로 가는 길에서 북대하에서 그를 맞이하러 오는 승용차를 만났고, 그는 지프차에서 내려 승용차를 몰고 북대하로 갔고, 지프차는 그의 운전기사가 북대하로 몰고 갔다.
내가 산해관공항으로 돌아오니 이미 22시에 가까워졌다. 전용기가 산해관공항에 머물러 있었으므로, 반호, 사악룡도 공항의 단층건물에 있는 이해빈(李海彬)의 항공관제실로 가서 지키고 있었다. 이해빈은 공군전용기사단의 항공관제주임이다. 매년 여름이면, 공군전용기사단은 항공관제주임을 산해관으로 보내어 근무하게 했다. 이 단층건물은 이해빈의 항공관제실이면서 그의 숙소이기도 했다. 전용기가 산해관공항을 오가면 이해빈이 우리 비행장항공관제실에 통보하여 지휘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무슨 상황이 발생한 것인지 물어보았고, 반호는 전용기가 내일 아침 7시에 이륙한다고 말했다. 1970년에 트라이던트를 수입한 후, 우리 산해관공항에 착륙한 트라이던트는 매번 그날 왔다가 그날 떠났다. 한번도 산해관공항에서 밤을 지낸 일이 없었다.
나는 공항 숙사로 돌아왔는데, 이미 22시가 넘었다. 나는 왜 이렇게 이상한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북대하에서 왜 사람을 보내어 임입과를 맞이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임입과의 표정은 왜 그렇게 긴장되고 있을까. 마치 무슨 큰 일이 발생할 것처럼. 당연히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산해관공항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지 않기만 바랐다. 나는 참모장이니 책임이 중대하다. 그리하여 나는 잠을 잘 때도 옷을 벗지 않고 잤다.
23시 30분경, 나의 옆방에 사는 정위 사악룡이 나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는 나에게 급히 그의 집으로 오라고 했다. 사정위는 이만향이 보고한 내용을 말해주었다. 해군제일정위 이작붕(李作鵬)이 두 차례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첫번째는 그날 오후에 산해관공항에 비행기가 언제 도착했는지를 물었고, 반참장은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말해주었다. 10여분이 지난 후, 이작붕은 두번째 전화를 걸어와서 비행기 모델을 물었다고 한다. 반참장은 심상치 않다고 여기고, 전화를 걸어 정위 사악룡에게 알린 것이다.
이때 반참장도 사정위의 집에 도착했다. 우리 셋은 이것이 큰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마음 속으로 계속 불안했다. 이 상황을 즉시 우리의 상급 해항(海航)모사단에 보고해야한다고 생각했고, 그들도 나의 의견에 동의했다. 반호는 전화로 사단장 장조발(張兆發)에게 말했다. 긴급상황이니 사단에서 즉시 사람을 보내달라고. 사단본부는 요녕(遼寧) 금서(錦西)에 위치하고 있어, 기차를 타고 2시간이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당시 우리는 그래도 스스로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여겼다.
우리 세 사람은 밤을 새워 공항으로 갔고, 도중에 부참장 조아휘(趙雅輝)도 둘렀다. 그에게도 상황을 알려주고, 우리 4명은 비행장항공관제실로 갔다. 이만향은 이렇게 보고했다: 0시 6분 이작붕 정위가 다시 제3차로 전화를 했고, 여전히 비행기가 이륙하려면 반드시 북경 주은래총리, 황영승총장, 오법헌부총장과 그의 지시를 받아야 하고, 다른 사람이 승인하더라도 이륙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작붕은 또한 누가 지시하면 바로 그에게 보고하라고 했다. 우리는 더욱 놀랐다. 보기에 정말 큰 일이 발생한 것같다. 당직 이만향은 또한 이런 보고를 했다: 이해빈이 이미 주유차 2대를 요구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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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황이 긴급하다고 여겼다. 전용기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나는 반참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작붕 정위와 직접 통화하시는게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지휘소로 간 후, 기밀전화기로 해군전화교환원에게 전화를 걸어 반호에게 전화기를 넘겨주었고, 그가 직접 이작붕과 통화했다.
이작붕은 그가 이전에 전화로 말한 내용을 반복했다. 나는 한편으로 반호에게 일깨워서 이렇게 말했다:현재 비행기에 기름을 넣고 있는데, 만일 비행기가 강제로 이륙하면 어떻게 할까요? 아마도 이작붕은 그런 상황을 생각지 못했던 것같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만일 강제로 이륙하려 하면, 직접 주은래 총리에게 보고하라. 반호는 다시 물어본다: 임표전용기의 비행사 반경인(潘景寅) 부정위에게 말해주어도 될까요? 이작붕은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참장 반호와 부참장 조아휘는 반경인에게 통보하러 갔다. 그러나 그는 방에 있지 않았다.나중에 그들은 반경인이 그때 옆방 이해빈의 항공관제실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만일 그들의 항공관제실을 한번 가보았더라면, 반경인에게 통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반경인이 듣고 말고는 또 다른 일이긴 하다.
13일 0시 15분, 나는 걸어서 비행기 계류장으로 갔다. 임표전용기에서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도착했을 때, 임표의 홍치(紅旗)차량이 공항으로 들어와서 전용기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멈췄다. 시간은 0시 22분이다.
나는 급히 전용기로 달려갔고, 임입과와 유패풍이 선후로 차에서 내리고, 그후 임표, 섭군(葉群)도 차에서 내렸다. 섭군이 소리쳤다: "누군가 임부주석을 해치려고 해서, 우리는 떠난다." 그녀는 주유차 앞으로 가서 소리쳤다: "빨리 주유차를 빼라, 빨리 주유차를 빼라."
임입과는 차에서 내린 후 역시 소리쳤다: "빨리, 빨리, 빨리, 비행기 시동을 켜라. 비행기 시동을 켜라" 나는 임표일행이 사다리차량이 도착하기도 전에, 승무원이 오르는 작은 사다리를 타고 비행기에 오르는 것을 보았다. 처음 올라간 사람은 유패풍이고, 그 다음이 섭군이었다. 임표는 섭군의 뒤를 따라 올라갔다.
이때, 한대의 지프차가 계류장으로 들어왔다. 7,8명의 8341부대 전사들이 차에서 내렸다. 그들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저 멍하니 서서 임표가 비행기에 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임입과는 전용기 옆으로 가서 전화를 걸었다(전용기 옆에는 고정전화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임표의 전용기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 나중에 특설사(特設師) 태기량(邰起良)이라는 것을 알았다. 판경인은 3명의 엔지니어에게 주유를 하라고 시켰고, 2명의 엔지니어 이평(李平)과 장연규(張延奎)는 비행기 오른쪽 날개 위에 올라가서 주유를 했다. 특설사 태기량은 기내에서 비행전 준비를 했다. 그는 임표를 보았지만, 2명의 부조종사와 항법사, 통신원등 5명의 승무원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을 보고, 비행기에서 내려 이해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태기량을 막고 그에게 말했다: "주은래 총리의 비준이 없으면 전용기는 뜰 수 없다!" 태기량은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힐끗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임입과는 태기량을 밀어서 비행기에 태웠다. 태기량은 약간 망설이는 듯 뒤를 여러 차례 되돌아보았다. 임입과는 마지막으로 비행기에 오른 사람이다.
나는 상황이 매우 긴급하다고 여겼다. 해군제일정위 이작붕은 명확하게 주은래 총리가 이 전용기가 이륙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비상조치를 취했다. 두 대의 주유차로 전용기의 이륙을 막은 것이다. 나는 유료과장(油料科長) 왕학고(王學高)와 유료배장(油料排長) 왕경지(王敬之)로 하여금 각각 1대의 주유차를 몰고 활주로 출구 50미터 거리에 서서 전용기를 막고 절대로 이륙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했다.
나중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담량이 컸냐. 감히 임표의 전용기를 막았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말했다: 주총리가 이륙하지 말라고 하면 누구든 이륙할 수 없다. 내가 책임지겠다! 임표가 이번에 비행기에 오른 것은 목숨을 구하기 위함이다. 항공관제실에서 이륙을 허가하지도 않았고, 항법사와 통신원도 없다. 이건 너무나 비정상적이다.
아쉽게도 내가 지시한 두 대의 주유차는 겨우 1대만이 자리를 잡았다. 만일 두 대가 모두 자리를 잡았따면, 분명 임표의 전용기는 이륙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진할 수도 없고, 후퇴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방대한 트라이던트는 몸을 돌려 두 대의 주유차를 쫓아낼 수도 없을 터였다. 나는 공항 경위를 긴급히 소집했다. 다만 한 가지 소홀한 점이 있다면 총기를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급히 공항부지밖의 당직실로 가서 총을 찾았다. 총과 3발의 총탄이 들어 있었다.
이 때 임표의 전용기에 시동이 걸렸다. 활주로에는 불도 켜지지 않았다. 그저 계류장의 등만 불을 밝히고 있었다. 경위들도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 나는 하늘을 향해 세 발을 쏘았다. 그 뜻은 경위들에게 빨리 오라고 독촉하는 것이었다. 이만향은 총소리를 듣고, 즉시 계류장의 조명등까지 꺼버린다. 산해관공항은 완전히 칠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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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임표 전용기의 3개의 엔진이 시동을 걸었고, 소리가 아주 컸다. 임표전용기의 앞머리등이 켜져 있으므로 우리는 비행기가 빠르게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조종사 반경인이 너무 조급했던 것같다. 활주로 변에 있던 큰 돌에 부딛쳤다.
이 돌은 활주로를 건설할 때 남은 것인데, 아직 치우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반경인은 억지로 90도로 꺽어서 전용기를 회전시켰고, 바퀴 하나가 활주로변의 콩밭에 박혔다. 9월 12일의 낮에 산해관에는 큰 비가 내렸으므로, 땅은 온통 진흙투성이었다. 나는 급히 주유차를 타고 쫓아갔다. 그러나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임표의 전용기는 굉음을 내면서 미친 듯이 동에서 서로 활주로를 달렸다.
전용기는 보이지 않았지만, 당시 나는 전용기가 이륙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서쪽 진황도 방향을 보았다. 이때 8341부대에서 임표의 경호를 책임지는 2대대(大隊) 대대장 강작수(姜作壽)도 차를 타고 왔다. 비행기가 이미 떠났다고 말했다.
나와 강작수는 함께 반만 위치에 도착해있는 주유차로 가서 보았다. 왕학고가 끌고간 주유차는 나의 명령에 따라 지정된 위치에 가 있지 않았다. 그는 무서웠고, 내려가서 보겠다고 하고는 차에서 내렸다. 운전기사는 노병인데 나의 명령을 집행하지 않고, 도중에 멈췄다. 왕경지는 유료과장의 차가 오지 않는 것을 보자 그도 내려가서 보겠다는 핑계를 대고 주유차를 떠났다. 유류차에는 1970년에 입대한 신병 유삼아(劉三兒)만 있었다. 유삼아는 주유차를 지정된 위치로 끌고 갔다. 그러나 그는 엔진을 끄지는 않았다.
임표의 전용기가 오면서 위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주유차는 빨리 길을 비켜라! 주유차는 빨리 길을 비켜라!" 그는 놀라서 차를 몰고 활주로를 벗어난다. 그러나 전용기의 오른쪽날개는 주유차의 쇠두껑에 긁히고, 주유차 쇠두껌의 손잡이도 구부러졌다. 비행기에도 적지 않은 곳이 긁혔다. 한달 후, 콩을 수확하는데, 농민이 땅에서 풀을 뽑고 있다가 비행기의 여피(鋁皮, 알루미늄조각), 등조(燈罩, 등덮개)등을 우리에게 가져왔다. 우리는 중앙전안조(中央專案組)의 공안부 부부장 우상(于桑)에게 제출했다.
나와 강작수는 함께 항공관제실로 갔다. 나는 이만향에게 부근의 레이다를 켜서 비행기 방향을 감시하도록 명했다. 임표의 전용기는 서쪽으로 날다가 방향을 바꾸어 적봉(赤峰)방향으로 날아갔다. 금방 레이다에서 보이지 않았다. 당시 우리는 임표의 전용기가 국경을 넘어갔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날이 밝은 후, 해항의 사단장 장조발이 왔고, 북해함대 부사령관 왕천보(王天保)도 왔다.
9월 13일 14시이전에 강작수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임표의 전용기가 추락했다. 어느 곳인지는 모른다. 그후 우리 8명 당사자들, 참장 반호, 정위 사악룡, 나, 부참장 조아휘, 유료과장 왕학고, 유료배장 왕경지, 기사 유삼아, 그리고 또 다른 기사(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는 모두 심양군구로 가서 각자 자신의 진술서를 쓰고, 우리는 다시 공항으로 돌아와 출근했다. 왕학고와 왕경지도 처분을 받지 않았다.
오랫동안 나는 임표전용기사고의 원인을 생각해왔다. 공군의 보고서에 따르면, 임표전용기가 추락한 원인을 기름이 없어서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임표 전용기사고의 원인은 기름이 없어서가 아니라, 비행기와 주유차의 충돌로 우익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현장에 도착했던 중국주몽골대사관 2등비서 손일선(孫一先)의 책에서, 나는 특별히 트라이던트전용기의 우익에 있는 40밀리미터의 큰 구멍에 주목했다. 비행기의 외각은 여각(鋁殼, 알루미늄)이다. 유조차의 두껑은 철각(鐵殼)이다. 알루미늄이 쇠보다 훨씬 약하다. 주유차의 쇠손잡이까지 구부러졌으니, 비행기의 우익하부의 손상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트라이던트 두 날개에는 모두 기름탱크가 있다. 그리고 비행기 우익의 아래에는 주유구멍이 있다. 아마도 막 부딛쳤을 때는 괜찮았떠라도, 1,2천킬로미터를 날아간 후에 고공기류등 여러가지 복잡한 요소로 인해, 비행기의 손상부위는 다른 곳보다 더욱 큰 압력을 받았을 것이고, 아마도 파열되거나 불이 붙었을 것이다.
당연히, 나는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분석한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것은 "9.13"사건 비행기추락원인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