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한)

원앙(袁盎): 서한초기의 정치한 이기주의자

중은우시 2024. 8. 19. 11:10

글: 서북낭(西北狼)

 

서한초기의 정계에서 원앙은 비교적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의 가장 유명한 사적은 오초칠국지란때 한경제(漢景帝)를 설득하여 조착(晁錯)을 죽인 일이다.

평생 실질적인 일을 추구하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욕을 먹어온 조착과 비교하면, 원앙은 평생동안 허황한 일만 했을 뿐 실질적인 일은 한 적이 없다. 그런데 그런 자가 정계에서 물만난 고기처럼 잘 나갔다. 원앙의 정치한 이기주의자철학은 이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교육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것이다.

1. 정명한 정치투기꾼

서한초기는 계급의 고착화가 매우 심했던 시기이다. 개국공신 및 그들의 자제들이 중앙정부의 모든 권력을 독점했다. 많은 관직은 공신자제들이 세습했다. 예를 들어 창고를 관리하는 가족은 대대로 창고를 관리하였고 나중에는 아예 성까지 창(倉)이나 고(庫)로 한다.

창고를 관리하는 하급관리까지 이러할진대, 정부의 고위관직상황은 더더욱 심했었다. 가의(賈誼), 조착, 원앙, 장석지(張釋之)같이 건국후에 출생한 젊은 세대의 한문자제(寒門子弟)는 정상적인 경로로는 관료사회의 고위층에 올라갈 수가 없었다.

가의와 조착은 승진을 위하여 결국 황제가 공신을 탄압할 때의 앞잡이가 된다. 그 결과 두 사람은 모두 최후가 좋지 못했다. 그리고 원앙, 장석지는 다른 젊은이들을 대표하며 또 다른 선택을 한다.

원앙의 부친은 “군도(群盜)” 출신이다. 이런 출신성분으로 두각을 드러내기란 가의, 조착과 같은 양가집 자제들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원앙은 처음부터 정상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은 포기한다. 원앙의 첫번째 보스는 바로 여록(呂祿)이었다. 여씨집단에 의탁하는 것은 당시로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행위였다.

여씨집단이 분쇄된 후, 이치대로라면 원앙도 함께 청산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원앙의 형인 원쾌(袁噲)가 혁명의 최대공신 주발(周勃)의 휘하에 있었다. 그가 나중에 줄을 잘못 섰던 동생을 구해준다. 이에 대하여 필자는 원씨집안이 양쪽에 모두 줄을 댄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여씨가 타도된 후, 대왕(代王) 유항(劉恒)이 경성으로 들어와 황위를 잇는다. 그가 한문제(漢文帝)이다. 한문제는 매번 조회를 마칠 때마다 주발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는 주목례를 행한다. 그의 등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눈길을 거두었다. 황제로서 이는 부득이한 태도이지만, 또한 크게 모욕적인 일이기도 했다.

이때, 정계의 하급관리인 원앙은 한문제의 아픈 점을 잘 파악해서 과감하게 일어나 목소리를 낸다: 주발에게 무슨 공로가 있는가. 옛날 여후가 유씨왕들을 박해할 때 그는 병력을 손아귀에 쥐고 있으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여후가 죽은 후에 그는 비로소 들고 일어났다. 주발은 그저 병권을 쥐고 있다가 시기를 잘 만난 것뿐이다. 그에게 무슨 대단한 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문제는 원앙의 발언을 듣고 깨달은 바가 생긴다. 그리하여 과감하게 주발에 대한 ‘주목례’를 거둔다. “그후 황제는 더욱 강해지고, 승상은 더욱 두려워하게 된다.”

주발은 원앙이 자신에게 나쁜 말을 했다는 것을 알고 그를 불러서 한바탕 욕을 한다. 너의 형과 내가 그렇게 관계가 좋은데, 네가 감히 나의 등에 칼을 꽂느냐. 양심이라는게 있느냐.

사서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강후망앙왈(絳侯望盎曰), “오여여형선(吾與汝兄善), 금아내훼아(金兒乃毁我)!”

2. 정계에서 구르다.

주목례사건이후, 원앙은 공신집단에 크게 밉보이게 된다. 만일 특별한 일이 없다면, 원앙은 그후 크게 보복을 받아야 했고, 제2의 가의가 될 터였다.

다만, 원앙은 가의보다 고명했다. 그는 누가 대장인지를 정확히 파악했다. 공신집단은 중앙정부의 중요직위를 독점했기 때문에, 그가 승진해서 자리를 차지하려면 반드시 왕권의 앞잡이가 되어야 했다. 다만 중앙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으려면, 공신들과의 관계를 너무 악화시켜서도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고위관직을 차지했다고 하더라고 결국 가의와 같은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한문제의 지위가 갈수록 공고해지면서, 주발에 대해 추후산장(秋後算帳)을 생각하게 된다. 주발은 한문제의 즉위초기에 여러가지 무례한 행동들을 했었다. 그리고 한문제를 핍박하여 세명의 친아들을 죽였다. 이런 원한을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가.

주발도 황제와 사이가 나쁘다는 것을 잘 알았고, 매번 조정에 올 때마다 갑옷과 투구를 차려입고 왔다. 정말 멍청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황제가 너를 처리하고자 하면 그게 무슨 소용있단 말인가. 그저 구실을 주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나중에 한문제는 이를 구실로 삼아 그에게 반란의 혐의를 뒤집어 씌우고, 주발을 감옥에 쳐넣는다.

주발이 어려움을 당하자 아무도 감히 나서서 주발을 위해 말하지 못했다. 오직 원앙만이 나서서 주발은 죄가 없다고 말한다. 그의 이런 행동으로 인하여 지난번에 맺었던 원한도 사그러뜨렸을 뿐이나라, 그는 성공적으로 공신집단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후 주발은 풀려났고, 주발은 원앙과 가까이 지낸다.

원앙의 정명함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당시 한문제의 곁에는 총애를 받는 환관 조담(趙談)이 있었다. 외출할 때마다 항상 한문제와 함께 천자육준(天子六駿)을 타고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원앙은 이를 가만히 보고 있지 않고, 직접 달려나가 조담을 끌어내린다.

이 일은 크다고도 볼 수 있고 작다고도 볼 수 있다. 작게는 한문제와 조환관의 관게가 좋다는 것이고, 크게 보면 이것은 한문제가 정계에 환관역량을 끌어들이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원앙이 이렇게 한 것은 바로 공신집단이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이 아닌가.

황제와 공신 이외에 외척세력도 원앙에 대하여 만족한다.

한문제에게는 총애하는 여인이 하나 있었는데, 신부인(愼夫人)이다. 한번은 한문제가 신부인을 데리고 황후와 함께 상림원(上林苑)을 구경했다. 자리배치를 할 때, 신부인의 자리를 황후와 동격으로 준비했다. 원앙은 이를 보자, 정치적 투기의 기회가 왔다고 여긴다. 즉시 신부인 앞으로 달려나가 이것에 네가 앉아야할 자리인가라고 소리친다.

원앙의 행동에 한문제가 대노한다. 네가 쇼를 하는 것은 좋지만 나한테까지는 곤란하다. 내 여자에 대하여 왜 네가 나서는가. 네 눈에는 황제가 안보이는가. 그러나 원앙은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척부인과 여후의 이야기를 들이밀며 한문제에게 말한다. 저는 모두 황상을 위해서 한 것입니다.

정말 그랬을까? 어떻게 그렇겠는가. 그가 이렇게 한 것은 그저 윗사람을 받들고 아랫사람은 억누르는 것이다. 두황후는 원래 한문제의 첩실중 한명이었다. 한문제의 여씨혈통으로 의심되는 조강지처와 세 명의 아들은 한문제가 경성으로 들어오기를 전후하여 의심스럽게 모두 죽는다. 한문제가 등극한지 2달도 되기 전에 공신집단은 한문제를 압박하여 두희를 황후로 세우게 하고, 그녀가 낳은 아들 유계(劉啓)를 태자로 세우게 한다.

확실히 이 두황후의 지위는 공신집단에서 확보해준 것이다. 그 원인을 따져보면 두씨집안은 출신이 빈한하여 강대한 외척의 배경이 없기 때문이었다. 한문제가 현재 신부인을 황후와 동격으로 취급한다면 그건 공신집단을 무시하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원앙이 대답을 한 후에 신부인과 황제가 모두 원앙이 잘했다고 애기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신부인은 원앙에게 오십금을 사례금으로 내리기까지 한다. 정말 대단한 자가 아닐 수 없다.

3. 옛스승을 죽이다.

이렇게 하여 원앙은 남다른 수단으로 공신, 외척, 황권의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한다. 당시 서한정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 된다. 여러 세력들도 모두 그를 어느 정도 인정하게 된다.

다만 총명함이 지나치면 목숨을 잃게 된다. 원앙이 다시 역사의 정확한 일방에 섰을 때, 그가 맞부닥쳐야 했던 사람은 규칙이라고는 전혀 지키지 않는 상대였다: 양왕(梁王) 유무(劉武)

오초칠국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로가 가장 큰 사람은 주아부(周亞夫)를 제외하고는 바로 이 양왕 유무이다. 전쟁을 개시하기 전에, 한경제는 양왕을 묶어놓는다. 한번은 술자리에서 양왕에게 이런 약속까지 한다; 네가 죽은 후에는 양왕에게 황위를 넘겨주겠다.

양왕은 그 말을 믿고 과연 오초칠국의 난때 크게 활약한다. 반란이 평정된 후 양왕은 한경제가 약속을 이행해주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예상밖이었다: 사월, 한경제는 아들 유영(劉榮)을 황태자로 앉히고 유철(劉徹)을 교동왕(膠東王)에 앉힌다.

어렵게 2년후에 황태자를 폐위시킨다. 모친 두태후는 장안에서 회의를 개최하여 동생인 양왕이 황위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경제는 그 자리에서는 반박하지 않고, 그저 대신들과 회의를 해보고 결정해야겠다고 말한다.

그 결과 원앙은 다시 한번 황제의 뜻을 잘 읽었다. 이런 일은 무슨 이론이나 법도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저 황제가 그를 황태제로 앉히고 싶어하지 않는다. 황제가 하고자 하는 일이라면 원앙이 나서서 형종제급은 안된다고 당당하게 주장했고, 결국 ‘두태후’를 설득시킨다.

유무는 원통스러웠지만 황제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원앙이라는 앞잡이는 처리할 힘이 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그는 한 가지 계책을 준비한다. 사람을 보내어 원앙을 암살하려고 한다. 원앙이 더 이상 조정에서 놀아날 수 없도록. 양왕이 보낸 자객은 그러나 원앙을 만나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원앙은 아마도 유무가 그렇게 멍청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은 것같다. 그래서 그 일을 신경쓰지 않다가, 결국 죽임을 당한다.

비록 나중에 유무가 심한 처벌을 받기는 하지만, 원앙은 더 이상 세상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결론

한문제시기의 정계에서 4명의 스타는 원앙, 가의, 조착, 장석지였다. 모두 기원전200년의 건국후에 태어난 세대이다. 이들은 모두 뛰어난 재능을 가졌고, 원래 한왕조를 건설할 동량지재였다. 그러나 한나라초기의 복잡한 정치환경하에서 재능있는 자는 제대로 쓰이지 못했다. 가의는 장사로 좌천되고, 조착은 죽임을 당한다. 남은 원앙, 장석지는 정치투기꾼이 된다. 결국 그들도 최후는 좋지 못했다. 무두 문경지치는 좋은 시절이었다고 말하지만, 그 시대에 살아간다는 것은 청년인재들에 있어서는 일종의 비극이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