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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선집>에 수록되지 않은 모택동의 문건과 서신

중은우시 2024. 8. 18. 22:06

글: 옥미수(玉米穗)

"항전의 발동과 견지는 국민당을 떠나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국민당은 손중산선생, 장개석선생이라는 앞뒤로 두 명의 위대한 영수가 있다."

"항전이래 민족영수와 최고통수 장위원장의 통일영도하에..."

"중국은 사상유례없는 항일대단결을 형성했다."

"국민당은 영도와 기간(基幹)의 지위를 정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은 국민당에 대하여 부정확한 관찰을 하고, 그들은 국민당의 전도를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정확한 방식은 마땅히 모두 일치하여 성심성의껏 장위원장을 옹호하는 것이다."

이상의 발언은 만일 출처를 밝히지 않는다면, 위대한 지도자 모택동이 직접 한 말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말들은 그가 엄중하게 비판한 왕명(王明)의 항일민족통일전선문제에서의 주장이나 말고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아무런 차이가 없을 뿐만아니라, 심지어 "민족영수 장위원장"을 존경하고 숭배하는 것이 더욱 뚜렷했다. 그러나, 이 말은 확실히 모택동이 직접 한 것이다.

1938년 10월 12일부터 14일까지, 모택동은 정치국을 대표하여 중공제6기 6중전회에서 회의에 <논신계단(論新階段)>이라는 제목으로 정치보고를 한다. 위에 인용한 내용은 바로 <논신계단>의 정치보고에 나온다. 이 보고서는 나중에 모택동이 주편(主編)을 맡은 <육대이래(六大以來)> 문헌에 전문이 수록되지 않았을 뿐아니라, <모택동선집>에도 전문이 수록되지 않는다. 원인은 간단명료하다. <논신계단>은 왕명과 완전히 동일한 견해와 관점을 많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공당사의 정통적인 입장은 모택동이 바로 이 중공제6기 6중전회에서 "왕명의 우경기회주의노선을 철저히 비판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논신계단>에서 얘기한 이상의 견해외에, 모택동은 당시에 심지어 국민당에 이런 제안까지 했다. 공산당원이 중공당적을 보류하는 조건하에서 공개적으로 국민당에 참가하겠다고. 모택동은 또한 이런 말도 한다. 중공은 국민당에 가입한 공산당원의 명단을 적극적으로 제출하겠다고. 그리고 모택동은 국민당에 이렇게 보증한다: 중앙은 국민당군대내에 당지부를 만들지 않을 것이며, 국민당당원내에서 공산당원을 발전시키지도 않겠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모택동이 1938년 9월 29일 6중전회를 개막하는 당일, 장개석에게 친필서신을 쓴 것이다. 이 서신은 나중에 주은래가 10월 4일 무한(武漢)에서 직접 장개석에 전달한다. 이 서신에서 모택동은 장개헉에 대하여 "탄복해 마지 않는다"고 하면서 "선생의 성덕(盛德)을 무릇 중국인이라면 모두 숭앙(崇仰)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자연히 이 서신도 <모택동선집> 혹은 <모택동서신선집> 기타 중공중앙의 문건집에 수록되지 않는다. 1990년 3월 <주은래연보(1898-1949)>가 출판될 때, 이 서신이 언급된다. 다만 여전히 서신의 전체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모택동은 항상 중공이 항일민족통일전선에서 고도의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입장을 주장하고 강조하여 왔다. 그런데 왜 제6기 6중전회에서의 발언은 돌연 180도 방향을 바꾸게 된 것일까? 설마 그의 생각이 바뀐 것일까? 확실히 그렇지 않다. 이는 모택동이 당시의 복잡미묘한 형세에 적응하기 위해 고의로 연막탄을 뿌린 것이다. 한편으로 스탈린과 중공당내의 이견에 대응하고, 다른 한편으로 장개석을 마비시키기 위해 설계한 모략수단이었던 것이다.

모택동은 스탈린이 중국의 항일민족통일전선을 극히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모스크바와 코민테른의 게오르기 디미트로프는 왕가상(王稼祥)을 통하여 사실상 모택동을 중공지도자로 인정하겠다는 뜻을 전했고, 모택동은 모스크바와 코민테른이 그에 대해 안심할 수 있다는 자태를 보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은 국공합작을 할 의향이 있다는 것을 말했고, 심지어 중공이 국민당에 가입하겠다는 제안까지 한 것이다. 이를 통해 모택동이 국공합작에 성의가 없다는 반대파의 입을 막으려 한 것이다. 모택동에 있어서, 필요가 있다면, 마음에 없는 말이거나 전후모순되는 말을 하거나, 하나의 입장에서 다른 입장으로 바꾸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논신계단>도 장개석을 마음놓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다만 장개석은 그에게 속지 않았다. 모택동이 국민당을 절대로 믿지 못하는 것처럼, 장개석도 중국공산당을 근본적으로 믿지 않았다. 장개석은 주은래가 그에게 전해준 모택동의 친필서신을 받은 당일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모택동의 이 친필서신의 말투를 보면 시작하면서 '양당의 장기합작'을 말하고, 끝내면서 '중화민족통일단결'을 얘기했다. 이건 지금까지 공산당의 말투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의심이 생겼다." "그리하여 나는 이것은 중공이 제2차로 우리 당에 대거 침투하려는 음모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민국13년부터 16년까지의 침통한 경험이 있다. 다시 속을 수는 없다."

시간이 흘러, 중공은 전국정권을 성공적으로 탈취했다. 그후 이미 전국각족인민의 위대한 영수가 된 모택동이 당시 마음에도 없이 말하거나 쓴 글을 <모택동선집> 혹은 <모택동서신선집>에 넣어 세상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부적절하다. 만일 세간에서 이를 잊어버리거나 혹은 흘려넘긴다면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