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한)

유양(劉襄): 유방의 장손으로 능력이 너무 뛰어나 황제에 오르지 못한 인물

중은우시 2024. 8. 2. 14:44

글: 역사전쟁(歷史戰爭)

한문제(漢文帝) 시기에 아주 기괴한 정변이 일어난다. 당시 조정에 큰 혼란도 없었고, 경사의 경위부대도 정상적으로 운용되고 있었는데, 제북왕(濟北王) 유흥거(劉興居)가 거병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런 반란은 기실 자살행동이나 다름없다. 그가 성공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유흥거가 설마 미쳤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가 반란을 일으킨데는 기실 정치적 배경이 있다.

유흥거의 부친은 유비(劉肥)로, 유방(劉邦)의 장남이다. 모친 조씨(曹氏)는 유방이 여후와 결혼하기 전에 만난 애인이다. 유방이 황제로 등극한 후, 유비는 황장자(皇長子)였으나 적출(嫡出)이 아니어서 황위를 계승할 자격이 없었다. 그리하여 제왕(齊王)에 봉해지는데 그쳤다. 유비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서한역사에서 비교적 유명하다. 그들이 바로 유양(劉襄), 유장(劉章)과 유흥거이다.

한혜제(漢惠帝)가 죽은 후, 여후가 대권을 장악한다. 공신집단에 대항하기 위하여 여후는 여씨일가에 대거 작위를 내린다. 9명이 후(侯)의 작위를 받고, 5명이 왕(王)의 작위를 받았다. 이는 유방이 생전에 공신집단과 맺은 "백마지맹(白馬之盟)"에 어긋나는 것이고, 다른 유씨제후의 이익도 침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씨가 받은 봉지는 모두 유씨제후들에게서 빼앗은 것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유양의 제국(齊國)은 제남군(濟南郡)을 떼어내서 여왕의 식읍으로 넘겨야 했다. 그랬지만 여후는 제국에 대한 압박이 부족하다고 여겨, 다시 낭야군(琅邪郡)을 떼어 유택(劉澤)에게 넘긴다.

균형을 맞추는 이치는 탄압과 회유를 병행한다는 것이다. 여후는 제나라의 일부 봉지를 떼어낸 후, 다시 여씨여자를 유양의 동생 유장에게 시집보낸다. 정략결혼을 시킨 것이다. 그러나 근본이익이 충돌하는 상황하에서, 정략결혼은 큰 작용을 하기 어렵다. 유장이든 유양이건 모두 시기만 기다렸다. 여씨들을 제거할 시기를.

여후8년(제애왕 9년, 기원전180년)에 그 시기가 도래한다. 여후가 마침내 사망한 것이다. 여후는 자신의 사후에 여러 세력들이 움직일 것이라는 점을 알아서, 국면을 안정시키기 위해, 여산(呂産)을 상국(相國)에 앉히고, 도성에 살면서 대군을 통솔하도록 조치했다.

여후의 대비는 꼼꼼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여산등의 능력이 부족했을 뿐이다. 군권을 장악하고서도 여러 신하들과 지방의 각 제후들을 억누르지 못했다. 여씨들은 제후와 조정대신들이 연합하여 거병할 것이라는 소식만 계속하여 들었고, 상황이 좋지 못하다고 여긴 그들은 선발제인(先發制人)으로 먼저 손을 써서 정변을 일으켜, 조정세력을 숙청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여씨들은 기밀유지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이 일을 여록(呂祿)의 사위인 유장이 알게 된다. 그는 즉시 이 일을 장안에 있는 유양에게 알린다. 유양은 소식을 들은 후, 형제 3명이 연합하여 병력을 일으켜 여씨집단을 주살하기로 한다. 성공후에는 유양을 황제로 추대하기로 결정했다.

유양은 거병에 반대하는 제국의 상국(相國) 소평(召平)을 죽여버리고, 낭야국의 병력도 회수하기로 결심한다. 유양은 손아래사람이 손윗사람에게 하는 말투로 낭야왕 유택에게 서신을 보낸다: 이곳으로 오셔서 대국을 주재해 주십시오. 유택은 그를 의심하지 않고, 급히 제국으로 간다. 그러나, 그가 도착하자 유양을 그를 구금하고, 낭야의 병력을 모조리 장악한다.

유양은 격문을 붙이고, 여러 제후왕들에게 서신을 보내 여씨세력을 토벌하자고 한다. 여산은 유양을 평정하기 위하여, 관영(灌嬰)으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출정하게 한다. 그러나 관영은 창끝을 거꾸로 돌려 유양과 연합하여 여씨들을 공격한다. 결국, 유양, 관영, 주발(周勃), 진평(陳平)등의 노력으로, 여씨집단은 모조리 주살된다.

일찌감치, 유택이건 아니면 공동으로 여씨집단을 주살하기로 상의한 신하들도 모두 일이 성사되면 유양을 황제로 추대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사실상, 다른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유양은 아주 적합한 황제후보이다. 그는 유방의 장손이어서 법통상 황위를 계승하기에 정당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여씨세력을 제거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를 황제로 추대하는 것은 그러한 공로에 대한 보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씨집단을 제거하고나자 형세는 크게 바뀌어 버린다. 조참(曹參)의 아들 조줄(曹窋)등 소수의 몇명만이 유양을 황제로 추대했고, 주발, 진평등은 반대한다.

유택은 유양에게 감금된 후, 일찌기 유양에게 그가 유씨황족의 연장자 신분으로 유씨종족이 유양을 황제로 추대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이건 기실 유양의 완병지계(緩兵之計, 시간끌기)였다. 목적은 제국을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도성에 도착하자 격렬하게 유양이 황제에 오르는 것을 반대한다. 그리고 당당한 이유도 내세운다: "유양의 외숙은 흉포하고 잔인하다. 만일 유양을 황제로 세우면, 또 다른 여씨가 나타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유택은 대왕(代王) 유항(劉恒)을 황제로 추대하자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유항의 모친 박희(薄姬)는 성품이 고상하고, 유항도 성격이 돈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모두 표면적인 이유이고, 근본원인은 유양의 외숙이 잔인하고 흉포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양의 세력이 방대한데 있었다. 유양이 보유한 제국은 강역이 넓고, 병력도 강했다. 게다가 그는 낭야의 병력까지 흡수하여, 여씨집단을 제거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호소력도 강했다. 또한 유양은 무위이치(無爲而治)를 봉행하는 황제가 아니다. 만일 그가 황제에 오르면 이전의 한나라 황제들처럼 신하들과 함께 천하를 다스리지 않을 것이다. 진평, 주발등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정변을 일으켜 여씨집단을 제거한 것은 바로 당초 유방이 약속한 황제와 공신집단이 천하를 나누어 공동으로 다스리겠다는 정치국면을 회복하기 위함이었다. 이제 다시 강력한 황제를 추대한다면 그들의 목표는 달성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유양이 그저 세력이 미미한 소제후왕이고, 세력도 미미하여, 공신집단의 말을 잘 들을 것같았으면 아마도 유양은 순조롭게 황위에 올랐을 것이다.

그리하여, 주발, 진평등은 조줄의 관직을 면직시키고, 비밀리에 대왕 유항을 황제로 모시기로 결정한다. 유양이 이를 알았을 때는 유항이 이미 경성으로 오는 도중이었다. 유양은 당연히 군대를 일으켜 공신집단에 죄를 물을 생각도 해보았지만, 당시의 국면을 보면 조정의 대다수의 군대는 모두 공신집단이 장악하고 있었다. 유양이 이들과 대적해서는 승산이 없었다.

유양과 공신집단의 힘겨루기에서 결국 공신들이 최종승리를 거둔다. 대왕 유항은 황위를 계승하는 행운아가 된다. 그러나 유씨천하를 구해낸 유양은 어쩔 수 없이 조용히 봉국으로 돌아가야했다.

한문제는 일찌기 유흥거, 유장도 왕에 봉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이 두 사람이 형인 유양을 황제로 추대하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불쾌해진다. 그리하여 유흥거와 유장에게 작은 나라를 주게 된다. 유흥거로서는 이전에 한 약속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자신의 형이 황제에 오르지도 못하자 한문제와 조정에 불만이 컸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유항이 즉위한 후, 유양과 유장이 차례로 사망한다. 사서에 두 사람의 사인을 따로 기록해놓지 않았지만, 아마도 우울증에 빠져서 일찌감치 죽은 것일 수도 있고, 유항이 조치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두 형이 연이어 사망한 것은 유흥거의 민감한 신경을 건드리게 된다. 그래서 흉노족이 대거 침입할 때 유흥거도 거병하게 된다. 그는 반란이 성공하지 못해도 상관이 없었다. 어쨌든 조금 일찍 죽느냐 조금 나중에 죽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니까. 유흥거는 결국 패전하여 자결하게 된다.

유양 삼형제는 원래 서한의 최고통치자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은 성공에서 단 한걸음만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 한걸음이 공신집단에 막혀버린다. 공신집단은 서한 정치국면에서 방대한 괴물이었다. 유양은 그들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들의 기반을 뒤흔들 힘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황제에 오르지 못한 것이다. 유양의 불행이라면 그가 아주 강대하긴 했지만, 충분히 강대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