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자"와 "깡패삼철칙"
글: 풍만만(風慢慢)
1
노신(魯迅)은 <깡패변천사(流氓變遷史)>라는 글에서, 깡패의 기원을 "묵자의 제자(墨子門徒)"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즉, "협(俠)"이다. "협"이 되려면 요구조건이 까다롭고, 사망율도 높고, 보답은 낮았다. 그래서 강도로 변신한다. 그렇지만 계속하여 "체천행도(替天行道)"라는 깃발은 여전히 들고다닌다.
나중에 협기(俠氣)가 있는 사람들이 점차 사라지면서 노예근성이 주류로 된다. 그리하여 강도짓을 해서는 안전하지 않으므로, 깡패로 변신하게 된다.
깡패들이 평소에 무슨 일을 하는가? 노신은 이렇게 설명했다:
"스님들이 술을 마시면 그가 때린다, 남녀가 간통을 하면 그가 붙잡는다. 매춘을 하면 그가 능욕한다. 그것은 선량한 풍속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시골사람이 조계의 규정을 모르면 그가 괴롭힌다. 이는 무지한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다. 머리카락을 자른 여자에게는 욕을 하고, 사회개혁자는 미워한다. 그것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다만 그들의 뒤에는 전통을 받쳐준다. 상대방이 호탕한 강적이 아니라면, 그는 그 사이를 마음껏 횡행한다."
소위 깡패의 3대특징은 이러하다: 첫째, 거짓핑계를 댄다. 예를 들어, "체천행도", "선량한 풍속유지". 둘째, 하는 행위는 그러나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이다. 셋째, 단지 약한 사람에게만 손을 쓰고, 강한 사람에게는 감히 덤비지 못할 뿐아니라, 일반적으로는 무릎을 꿇는다.
이것이 소위 "깡패삼철칙"이다.
종합하면, 소위 깡패는 자신이 숭고한 일을 한다는 환상을 품고 안전하게 다른 사람을 해치는 자이다. 깡패는 한 사람일 수도 있고, 한 집단일 수도 있고, 또한 하나의 행위 하나의 사조일 수도 있다.
2
최근, 애국의 명목으로 막언(莫言, 모옌, 노벨문학상 수상 중국작가), 상인을 고발하고, 농부산천(農夫山泉)을 공격하는 것은 깡패가 변한 새로운 형태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이들 행위가 "깡패삼철칙"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먼저, 그들이 말하는 "애국"은 거짓이다.
애국은 일종의 소박한 감정이다. 강국논단에서 몇점을 얻어야 비로소 애국으로 쳐주는 것이 아니다. 누가 자신이 사는 곳을 사랑하지 않겠는가? 모든 사람은 자신의 방식으로 소박하게 애국한다. 예를 들면, 세금을 내고, 집을 사고, 아이를 낳는 것 등등이 모두 애국이다. 다만 다른 사람이 세금을 적게 내고, 집을 사지 않고,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다고 애국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이 어떤 이슈에 대하여 다른 의견을 가졌다고 애국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다.
애국은 일종의 도덕적 자율이다. 자신에 대한 요구이다. 어떤 사람은 큰 뜻을 세워서 "중화의 굴기를 위하여 공부하겠다"고 할 수 있다. 이건 당연히 애국이다. 어떤 사람이 벽돌을 옮기는 힘든 일을 한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낸다고 하여 애국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찬양은 사랑이고, 비판도 사랑이다. 모두 우리가 생활하는 국가를 더욱 좋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런 이치는 아주 간단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들의 애국방식은 다른 사람들이 애국하지 않는다고 질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다른 사람을 애국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근거도 말이 되지 않는다. 그저 모함이다. 예를 들어, 막언이 "선열을 모욕했다"든지, 상인이 일본식의 요소로 장식했다든지, 농부산천의 포장이 일본문화라든지 등등.
화웨이를 살 것인가, 아이폰을 살 것인가. 와하하를 마실 것인가, 농부산천을 마실 것인가, 국내만화를 좋아할 것인가 일본만화를 좋아할 것인가, 이런 것들은 애국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애국하지 않는다고 말한다고 하여 자신이 애국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런 건 애국에 대한 "왜소화"이다.
다음으로, 그들의 행위목적과 결과는 모두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이다. 적게는 개인이익을 해치고, 크게는 기업이익을 해친다. 조금 더 크게는 비지니스환경을 해친다. 더욱 크게는 우리 국가를 해친다. 하루종일 자신의 작가, 상인, 기업을 공격하면, 이것이야말로 '자기편은 고통받고, 상대편은 좋아할" 일이 아니란 말인가?
마지막으로, 그들은 스스로에게 안전하고, 괴롭힐 수 있는 상대만 공격한다. 예를 들어, 후계자의 국적같은 것이다. 모 "멀찌감치 앞서간(遙遙領先, 화웨이를 가리킴)" 회사창업자의 장녀도 외국국적이 아니던가? 어느 지방의 사업단위는 외국인을 채용하려고 공고하지 않았던가? 그럴 때도 감히 나서서 반대할 수 있단 말인가? 당연히 나는 그렇게 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의 뒤에는 전통을 받쳐준다. 상대방이 호탕한 강적이 아니라면, 그는 그 사이를 마음껏 횡행한다." 노신의 이 묘사는 현재의 소위 애국자들을 아주 생생하고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3
<깡패변천사>는 1930년에 발표되었고, 근 10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선생의 날카로움과 깊이가 느껴진다.
이는 설명한다. 100년이 지났지만 바뀐 것은 없다는 것이다. 깡패는 여전히 같은 깡패이고, 그렇게 많은 깡패들이, 깡패라는 것을 자랑하고 다닌다.
이는 설명한다. 깡패에게는 이치를 설득해서는 깡패가 마음을 바꾸게 되지 않는다. 그 말이 비수처럼 날카롭거나,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좋은 길로 이끄는 것이든 아니면, 중앙매체처럼 '결론적인 한마디'를 하더라도.
바로 며칠 전에, 중앙매체는 집단으로 나서서 '전마행동(戰馬行動)'은 사기애국주의라고 비난했다. 애국을 가지고 클릭수를 늘여서 돈을 버는 것은 '애국(碍國)'이지 '애국(愛國)'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마오싱훠(毛星火, 막언을 고발한 사람)나 농부산천을 공격하여 많은 클릭수를 얻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이 먹혀들겠는가?
기실 나는 깡패를 비난하는데는 별로 흥미가 없다. 필자는 일찌기 <어떤 사람은 등불을 켜고, 어떤 사람은 불을 지른다>는 글에서 이 문제를 언급한 바 있다.
비지니스환경을 파괴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긴다. 노신이 말한 것처럼, "손과 발이 묶여 있는 사람에게 도둑을 잡으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닌가?"
주요 문제는 깡패 자체에 있지 않다. 깡패를 만들어내는 양분과 깡패가 활보할 수 있는 공간에 있다. 깡패는 그저 등불을 켜는 것이고, 누군가 불을 지르고 있는 것이다.
양분과 공간은 무엇인가? 노신이 이렇게 말했다. "결국은 노예근성이다." 10년전에 한 노인이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을 존엄있게 살게 해야 한다고.
그들이 말하는 것은 같은 뜻이다.
만일 이 두 개의 문제가 바뀌지 않는다면, 다시 100년이 흐른다고 하더라도, 노신의 글은 여전히 새것처럼 날카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