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河南)의 문화를 누가 묻어버렸는가?
글: 성시적지득(城市的地得)
어제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한 친구가 수업때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낙양(洛陽)의 고속철역에 대학생들이 금의위(錦衣衛) 복장을 하고 설날을 맞이하여 귀향하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학생들은 그건 괜찮지 않느냐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금의위는 금의환향의 의미도 있지 않습니까?"
이건 기담괴론이 아니다. 많은 젊은이들의 인식이다. 비록 바이두백과에서 금의위가 무엇인지 찾아볼 수는 있겠지만, 누가 귀찮게 그걸 검색하고 있겠는가? 그렇게 복잡하게 알아보는 것보다 이렇게 간단하게 생각하는게 더 낫지 않겠는가?
어떤 하남사람들(대부분 낙양에 사는 사람들)은 나를 공격한다. 역시 같은 의미이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금의위 복장을 하고 맞이하는 것은 "네티즌의 요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더 융중해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대에는 아마도 황실의 사람들만이 금의위가 도열하여 해주는 환영을 받지 않았을까"
도대체 어떤 드라마에 그런 장면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러해 전의 술자리를 떠올렸다. 한 친구가 술에 취해서 화장실에서 나를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장선생....언젠가 우리 하남사람이 황제가 될 거요.....(맞다. 나는 토박이 하남사람이다)"
금의위 복장을 입든, 그저 금의위를 좋아하던, 마음 속에는 모두 황제꿈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금의위가 도열하여 고향으로 돌아오는 농민공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것이다. 이건 정말 복잡한 의미가 있는 "하남문화풍경"이다.
이 풍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존귀감과 권력감이다. "금의환향".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람은 자신이 아주 존귀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존귀인가. 그 기준은 바로 권력이다. 이는 산동사람들이 설날에 귀향할 때 검은색 승용차를 타고 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남사람들은 귀향할 때 '금의위'가 반겨주는 것이다.
관광업을 진흥시키기 위하여, 하남의 각지방은 노력하고 있다. 한편으로 하남인들은 아주 자랑스러워한다. 자신이 전중국에서 가장 문화적인 성이라는 점에 대하여. 다른 한편으로 자비감에 빠져 있다. 왜냐하면 하남의 문화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남은 문화가 뛰어나다. 그러나 모두 땅 속에 묻혀 있다."
다만 이 "묻혀 있다"는 동사의 앞에는 반드시 주어가 있어야 한다. 역사와 시간의 황토 외에 인심이 포함되어야 한다. 사람이 그렇게 한 것이다.
하남에서 사람들은 '진정한 역사'를 찾아볼 수가 없다. 필자의 고향인 주구(周口)는 복희(伏羲)의 고향이고, 아주 위대하다. 그러나, "복희"는 그저 전설상의 인물이다; "노자고향"도 있다. 그러나, "노자는 녹읍(鹿邑)사람이다" 아마 이것도 전설일 것이다. 거기에 지어진 건물들은 나보다 나이가 적다.
역으로 살펴보자. 하남에 무슨 100년된 건축물이 있는가? 내 고향의 전체 현성에서 나는 100년이 넘은 건물을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민국시대 선비의 집이라도 찾아볼 수 있기를 더욱 바랐다. 몇대 사람들의 전승, 장서, 교양을. 그러나 그런 것들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내가 다니던 소학교가 있는 곳은 "대사(大寺)"라는 지명을 가지고 있었다. 부근에는 "대사유장(大寺劉莊)"이라는 마을도 있다. 이는 이전에는 마을 자체보다 절이 중요했었다는 것이다. 다만, 지금은 학교에 '절'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심지어 기왓장 한장 보이지 않는다.
우리 세대는 아무도 거기에 일찌기 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해보면 비로소 과거의 역사를 조금 알 수 있다. 이것이 거의 하남의 진실된 모습이다. 진정 가치가 있는 것은 이미 모조리 훼손되었다. 소위 "모두 땅 속에 묻혀 있다." 그저 스스로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자기기만적인 안위만이 남았다. 만일 문화재를 발굴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게 오늘날의 하남인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하남인들이 관광업을 생각하면, 그저 발명창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번은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한 표지판을 보았다. "관공별조처(關公別曹處)". 관우가 조조와 이별한 곳이라는 것이다. 이건 삼국연의에 나오는 장면이다. 어쨌든 그건 소설이다. 그런데, 그것까지도 '개발'해 냈다.
어제 한 친구가 영상을 보내주었는데, 상구(商丘)의 문화관광부서에서 만든 것이었다. 한 남자가 갑옷을 입고, 당나라때의 장순(張巡)으로 분장했다. 왜냐하면 장순은 안사의 난때 수양(睢陽, 지금의 상구)을 지킨 바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장순"으로 하여금 상구를 지키도록 하면서,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통관문서"를 발급해주고 있다. 그의 곁에는 화목란(花木蘭)이 서 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장순이 수양을 지킬 때, 기실 아주 잔인했었다고.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사람을 먹었다고. 관광객들이 무서워할 일이 아닌가?
이는 낙양의 금의위와 같은 이치이다. 새로운 하남의 관광선전은 모두 "역사"를 끄집어 냈다. 다만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이 역사는 진실된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상구를 위해 극력 변호한다: "장순을 먹칠하지 말라. 역사드라마를 보라."
그렇다. 역사드라마를 보라. 역사를 보지 말고. 만일 당신이 그에게 에이즈촌을 아느냐. 가오야오제(高耀潔, 저명한 에이즈운동가)를 아느냐고 물으면 기분나빠할 것이다. 이들 "역사"는 아직도 따끈따끈하다. 그러나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