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제(金日磾): 한무제는 임종때 왜 흉노왕자인 그를 보정대신(輔政大臣)으로 삼았을까?
글: 사설신어(史說新語)
김일제(金日磾)는 흉노왕자로서 한나라에서 아주 잘 지냈다. 심지어 보정대신까지 지냈는데, 그 근본원인은 한무제(漢武帝)의 신임때문이라 할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가 비록 흉노왕자이긴 하지만, 어려서부터 한무제의 곁에서 함께 자랐다. 흉노인이라는 신분외에 한무제에 있어서는 총신(寵臣)으로 믿을만한 인물이었다.
게다다 한무제의 임종전에 한나라에는 복잡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래서 결국, 김일제가 보정대신이 되어, 한무제가 죽은 후, 한소제(漢昭帝)시대의 '사대천왕(四大天王)'중 한명이 된다.
당연히 이 일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주 복잡하다고 할 수 있다. 한무제시대와 관련된 여러가지 역사적 원인이 있다. 이 사건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간단하게 김일제가 어떻게 하여 한무제의 곁으로 오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김일제의 이야기는 기실 한나라와 흉노간의 전쟁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한나라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한나라가 개국한 때로부터 한나라와 흉노와의 관계는 계속 독특했다. 한나라와 흉노는 당시에 모두 강대했고, 누구도 상대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쌍방이 화친의 방식으로 외교관계를 건립하기로 결정한다.
한무제시대에 이르러, 한나라의 국력은 날로 강성해지고, 흉노의 세력은 점점 내리막길을 걷는다. 그후 한나라는 흉노에 대한 대규모 반격을 개시한다. 즉 이 기간동안 한나라는 두 명의 절대전신(絶代戰神)인 위청(衛靑)과 곽거병(霍去病)이 두각을 나타내어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
이 역사에서 한나라의 각도로 보자면, 한나라가 흉노에 대규모로 반격한 것은 기분좋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시각을 바꾸어 흉노의 시각에서 본다면,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한나라의 승리는 흉노에게 있어서 엄청난 재앙이었다.
원래 흉노의 전성기때 아주 강대한 유목정권으로 통치지역이 동북지역에서 중앙아시아까지 걸쳐 있었다. 그러나 한나라가 반격을 시작한 후, 흉노는 연전연패하면서 자신이 생존을 의지하던 초원을 잃게 된다.
그러나, 한나라가 흉노에 반격하는 과정에서, 한나라는 먼저 흉노에게 가장 중요한 하투초원(河套草原)을 빼앗는다. 그후 흉노의 주력이 견제당하는 틈을 타서, 직접 곽거병에게 군대를 이끌고 출정하게 하여 하서주랑(河西走廊)을 개척한다. 이렇게 하여 서역으로 통하는 통로를 확실하게 열게 된다.
한나라가 하서주랑을 공략하는 동안, 흉노쪽에서 이쪽을 지키는 왕이 휴도왕(休屠王)이었다. 휴도왕은 원래 흉노의 하서주랑쪽을 지키는 최고권력자였다. 그러나 나중에 곽거병에게 패배하면서 휴도왕은 부득이 한나라에 투항할 수밖에 없게 된다.
여기에서 흉노의 당시 내부구조를 간략히 설명하고 지나가겠다. 흉노는 유목정권으로서 내부에서 집행한 제도는 기실 선진(先秦)시기 중원의 분봉제(分封制)와 유사했다. 흉노의 내부에 지위가 가장 높은 사람은 선우(單于)라고 한다. 어느 정도 주(周)나라 천자(天子)와 비슷하다.
선우의 아래에 지위가 선우 다음으로 높은 두 사람이 있다. 바로 좌현왕(左賢王)과 우현왕(右賢王)이다. 흉노내부의 다른 왕들과 비교하여 이 두 명의 왕은 지위가 가장 높고, 휘하의 무리도 가장 많으며, 선우를 보위하는 책임을 진다.
좌우현왕의 아래에 다른 흉노왕들이 있다. 이들 흉노왕들은 중원지역의 제후왕과 비슷하다. 각자 일부 부족을 이끈다. 그들과 흉노선우와의 관계는 주나라의 제후와 주천자와의 관계와 유사하다.
휴도왕은 통치지역이 하서주랑이므로, 원래 실력이 아주 강한 흉노왕이었다. 김일제는 바로 그 휴도왕의 장남이다.
여기에서 반드시 한 마디 설명하고 지나가야할 것이 있다: 김일제의 부친은 흉노왕이지 흉노선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중원으로 비유하자면 그는 대체로 제후왕의 아들이지, 주천자의 아들은 아닌 것이다.
만일 한나라의 반격이 없었더라면, 휴도왕은 하서주랑에서 원래 편안하게 잘 살았을 것이다. 김일제는 어른이 된 후에 순조롭게 그 자리를 이어받아 휴도왕의 후계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의 나중의 지위는 중원의 제후왕과 비슷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한나라의 대규모 반격으로 전체 하서주랑이 곽거병에게 패퇴당한다. 하서주랑의 몇몇 흉노부락은 기본적으로 곽거병에게 패배하여 지리멸멸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역사상 유명한 "하서지전(河西之戰)"이다.
하서지전을 거치고 나서, 흉노의 하서지역에서의 실력은 크게 약화된다. 당시의 흉노선우, 그리고 흉노좌우현왕의 주력부대는 다시 한나라의 주력부대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곳으로 증원올 수가 없었다. 하필이면 바로 이때 그 흉노선우는 하서지구의 패전에 크게 분노하여 이쪽의 몇몇 흉노왕을 문책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후에 하서주랑의 몇몇 흉노왕들은 심사숙고한 끝에 계속 선우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이 별 의미가 없겠다고 여긴다. 그에게 문책을 당하느니 차라리 직접 한나라에 투항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당시 투항을 준비한 몇몇 흉노왕들 중에서 휴도왕은 실력이 가장 강한 왕이었다. 이건 그가 뭐 대단해서라기 보다는, 이전에 그의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곽거병의 주력과 마주치지 않았었다. 그래서 나중에 투항을 준비할 때, 이 흉노왕은 계속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자신은 계속 선우에 충성하더라도, 죽임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계속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던 휴도왕은 다른 흉노왕들에게 피살당하고 만다. 그리고 그의 부하들은 다른 흉노왕들이 접수당하고, 이들 흉노왕들은 결국 한나라에 철저히 투항하게 된다.
만일 휴도왕이 스스로 투항했더라면, 투항이후, 휴도왕의 가족들은 한나라체서 비교적 높은 지위를 인정받았을 것이고, 대우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가 다른 흉토왕들에게 제거당하다보니, 투항한 이후 휴도왕의 가족들도 당연히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하여 원래 흉노왕자였던 김일제는 한나라로 갔을 떄 겨우 14살이었는데, 한나라의 황실마장(馬場)에 배속되어, 말을 기르는 마부(馬夫)가 된다.
흉노왕자에서 한나라의 마부로 전락한 것이다. 그 차이는 엄청나게 컸다. 그러나 휴도왕이 이전에 우유부단하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을 고려하면, 한나라에서 그의 가족을 처형하지 않은 것만 하더라도 이미 은혜를 베푼 셈이다. 마부가 되어 살아갈 수 있다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 없었다.
이렇게 하여 그후 여러 해동안 김일제는 한나라의 마부의 신분으로 생활하며 성장한다. 그런데, 김일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한나라는 흉노를 철저히 격패시켰고, 결국 흉노는 막북(漠北)으로 쫓겨난다.
그리하여 김일제가 어른이 된 후에는 한나라의 흉노에 대한 태도가 이미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비록 약간의 흉노인들이 가끔 한나라의 변방을 침입하여 한나라를 골치아프게 하기는 했지만, 대체적으로 말해서 이때 한나라는 더 이상 흉노를 그들의 최대의 적으로 보지 않았고, 그저 격패할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
이렇게 되니, 귀순을 원하는 흉노인들을 한나라는 모두 받아들이게 된다. 이 일은 기실 한문제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당시 한나라의 국책으로는 흉노인이 귀순을 원하면 그것은 중원문화를 숭상하고, 중원문화에 동화되기를 원하는 것이니 한나라는 투항을 받아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백성과 같이 취급해주었다.
이런 배경하에서, 김일제는 한무제의 눈에 들게 된다.
하루는 한무제가 식사를 잘하고 난 후에 자신의 말을 끌고 오라고 명한다. 말을 타고 한바퀴 둘러볼 생각이었다. 이런 심리상태는 현재로 하자면 돈있는 사람이 고급식당에서 식사를 한 다음에 스포츠카를 타고 시내를 한바퀴 드라이브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자신의 좋은 말을 자랑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말을 타는 동안에 김일제는 마부로 말몰이를 책임졌다. 당시 함께 말타는 것을 도와주던 마부가 있었는데, 다른 마부들은 호기심에 한무제의 곁을 따르는 후궁들을 훔쳐보곤 했다. 그런데 오직 김일제만이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모는데만 집중하고, 시종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그의 행동에 한무제는 관심을 갖게 된다.
그후, 한무제는 호기심에 김일제의 신분을 물어본다. 그러자 한무제도 생각이 났다. 확실히 그런 흉노왕자가 있었던 것이다. 김일제는 아주 성실하게 일하고, 말도 잘 기른 것으로 한무제의 총애를 받게 된다. 그후 한무제는 그를 마감(馬監)으로 발탁하고, 나중에는 자신의 곁에 두고 비서로 쓴다.
이렇게 하여 김일제는 말을 잘 기른 것때문에 한무제에게 발탁되었다.
최소한 사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고, 아주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만일 사서의 기록만으로 본다면, 우리는 당연히, 김일제가 발탁된 일에는 더 이상 따져볼 것이 없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일은 사서에 아주 상세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의 시대배경과 연결시켜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한무제가 김일제를 발탁할 때의 심리는 아주 흥미로웠을 것이다.
먼저, 당시 한무제가 김일제를 발탁하고자 한 것은 절대로 단순히 그가 말을 잘 길렀기 때문은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실 그의 흉노왕자라는 신분이었다.
이는 듣기에 이상할 수 있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당시 한나라는 이미 흉노를 무너뜨렸고, 많은 흉노인들이 한나라로 귀순해 들어왔고, 한나라에 동화되었다. 이런 상태하에서, 한나라의 고위층은 반드시 충분한 포용력을 보여주어야 했다. 심지어 이들 흉노인들은 진정 한족들과 동등하게 대해준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러한 때 만일 투항한 흉노왕자가 한나라에서 고위관료로 지내고, 심지어 황제의 총애까지 받는다면, 다른 흉노인들에게 자신에게도 똑같은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투항해온 흉노인들은 더욱 진심으로 한나라에 복속하게 될 것이다.
결국, 한무제가 당시 김일제를 발탁하는 선택을 한 것은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라 할 수 있다. 우연한 점은 그날 한무제가 확실히 흥미가 일어서 김일제를 만났고, 김일제를 선택한 것이라는것이다. 필연적인 점은 당시의 역사배경으로 볼 때, 한무제가 반드시 흉노인 한명을 발탁해서 중점적으로 배양하여 다른 사람들의 모범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김일제는 한무제의 곁으로 오게 되고, 한무제에게 중용된다.
그러나 이어서 김일제가 한무제의 주변으로 온 다음 그가 한 일은 비교적 기이하다.
기이하다는 것은 그가 일을 아주 깔끔하게 처리했다는 것이 아니다. 김일제는 흉노출신이므로 그의 여러가지 관념은 전통적인 중원인들과 큰 차이가 있었다. 이로 인하여 김일제가 그 후에 한 여러가지 일들은 우리가 단순히 중원의 관념으로 판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만일 중원문화로 그를 판단한다면 우리는 그가 아주 모순적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그가 한 일들은 모두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만일 흉노인의 문화배경에서 생각한다면, 그런 일들은 아주 합리적이다.
한무제에게 중용된 후, 김일제는 계속하여 조심스러웠고, 일처리에서 조그만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그리고 한무제에게 극도로 충성한다.
만일 중원문화로 생각한다면 그건 아주 불가사의한 일이다. 김일제의 인생경력을 보면 왕자에서 마부로 전락하고, 다시 한무제에게 발탁되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마음 속으로 원한을 품게 될 것이고, 일단 굴기할 기회가 생기면 분명히 기회를 잡아 보복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흉노인들은 그런 관념이 없다.
흉노인들의 관념에서 김일제같은 사람은 한나라의 마부로 지냈지만, 한나라가 죽이지 않은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한무제에게 다시 발탁된 후에는 한무제의 은정을 진정으로 느끼고, 한무제에게 극도로 충성해야 한다.
그래서, 김일제의 충성과 조심은 흉노인들의 사상에서 아주 정상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극도로 충성하다보니 시간이 오래 흐른 후 한무제는 김일제에 대한 태도를 점점 바꾸기 시작한다. 진정으로 그를 신뢰하게 된 것이다. 그후, 김일제는 한무제를 모실 때 더더욱 공경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의 두 아들은 모두 황궁으로 들어가서 한무제가 자식처럼 기른다.
더욱 기이한 일은 나중에 이 두 아이가 조금 자란 후, 그중 큰아들이 궁녀들과 놀아나기 시작한다. 김일제가 그런 사실을 알게 되자 직접 자신의 아들을 죽여버린다.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하여 자신의 아들까지 바치고, 마지막에는 심지어 자신이 직접 아들을 죽이기까지 한다. 이런 행위는 중원의 문화에서라면 어떻게 보더라도 다른 의도를 가진 것이라 여겨질 것이다. 예를 들어, 춘추시대에 자신의 아들을 죽여 제환공에게 요리를 만들어준 역아(易牙)는 바로 그런 전형적인 간신이다.
한무제 말년에 이르러, 무고지화(巫蠱之禍)가 발생하고, 한무제는 신하들에 대하여 점점 신임을 잃게 된다. 그렇게 되다보니 한무제와 가까이 에서 일하면서 일처리를 아주 조심스럽게 하던 몇몇 대신들은 자연스럽게 한무제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되게 된다. 예를 들면, 곽광(霍光)과 김일제가 그런 사람이다.
무고지화가 발생할 때, 김일제는 대신으로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시종 한무제의 편에 선다. 게다가 그는 이전부터 충성스러웠기 때문에, 한무제는 그를 철저히 신임한다. 특히 무고지화를 처리한 후, 이전에 태자를 모함했던 한 대신은 한무제를 암살하려고 기도했다. 한무제의 보복을 피하기 위해서.
위기의 순간에 김일제는 이상함을 눈치채고, 그 자객이 한무제를 공격하려고 할 때, 그 자객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한무제는 피살을 면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을 거친 후 한무제는 발견하게 된다. 김일제야말로 자신이 신뢰할만한 인물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무제의 병이 위중해지면서, 한무제는 자신의 후사를 처리하게 된다. 당시 한무제는 자신의 막내아들 유불릉(劉弗陵)을 후계자로 삼기로 결정내렸다. 유불릉은 당시 나이가 어려서 스스로 정무를 처리하기는 어려웠다. 만일 황실의 종친중의 어느 인물이나, 유불릉의 모친쪽 사람이 그를 도와 보정(輔政)한다면 한무제는 유불릉이 황위를 찬탈당할까봐 우려했다.
그리하여, 한무제는 반드시 절대로 신임할 수 있는 신하로 하여금 유불릉을 보좌하도록 해야겠다고 결정한다. 그리하여 이전에 발생한 무고지화등으로 믿을 수 있는 신하가 많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주변을 지키던 몇몇 대신들 뿐이었다.
그리하여, 한무제는 최종적으로 곽광, 김일제, 상홍양(桑弘羊)과 상관걸(上官桀)의 4명이 함꼐 어린 황제를 보좌하도록 한다. 이 안배를 마친 후 며칠 지나지 않아, 한무제는 병사한다. 이어서 역사는 한소제시대로 접어든다.
한소제시대에는 바로 이 4명의 보정대신이 최고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한무제가 죽은 후, 보정대신이 된 김일제는 확실히 자신의 인생에서 절정기에 이르렀다. 만일 김일제가 정말 간신이었다면, 정말 수십년은 은인자중하면서 참아오면서, 한나라에 복수하려고 했다면, 이제 절호의 기회가 다가온 것이다.
그가 다른 세 명의 보정대신만 처리한다면, 혼자서 조정대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그후 흉노인의 신분으로 한나라의 최고권력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김일제가 충신인지 간신인지는 곧 드러날 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무제가 죽은 후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4대 보정대신의 권력균형이 아직 무너지기도 전에, 김일제는 돌연 병에 걸리고, 바로 사망해 버린다.
기원전86년, 유불릉이 등극한 첫해에 김일제가 사망하니 향년 49세였다.
이것이 바로 역사상 진실한 김일제이다.
만일 사서의 기록만 본다면, 혹은 김일제가 일생동안 한 일들을 본다면, 우리는 김일제는 확실히 충신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비록 그가 흉노왕자이지만, 나중의 한흉전쟁으로 집안이 몰락하여, 한나라의 마부가 되었다. 나중에 한무제에게 발탁되어 한무제에게 충성을 다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한무제에게 바쳤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김일제는 어떠한 부적절한 거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시종일관 한나라에 절대충성했고, 한무제에 절대충성했다. 흉노인의 문화로 본다면, 이런 상황은 확실히 합리적이다.
다만 문제는 중원문화의 각도에서 본다면, 김일제의 많은 행동은 확실히 아주 궤이하다. 예를 들어, 분명히 한나라와는 국구가한(國仇家恨)이 있는데, 한무제에 극도로 충성한다든지, 또 예를 들어, 한무제에 충성하기 위하여 직접 자신의 아들을 죽인다든지.
김일제를 제외하고 역사상 유사한 행위를 한 사람들은 모조리 간신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추측했다. 김일제는 아마도 역가상 최강의 잠복자(潛伏者)였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수십년의 시간을 들어 한무제에게 극도로 충성했는데, 기실 그것은 기회를 기다린 것이라고. 한무제의 신임을 얻은 후 미래에 한나라에 더욱 확실하게 보복하기 위해서라고. 단지 한무제가 죽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아직 한나라에 보복할 힘을 갖기도 전에 돌연 죽어버린 것이라고.
결국, 역사상의 김일제는 확실히 모순적인 인물이다. 그의 일생경력을 보면, 그는 확실히 한무제에게 극도로 충성했다.
그가 마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던 행동만을 본다면 그는 확실히 충신이다. 바로 그의 이러한 극도의 충성때문에 한무제는 임종전에 그와 같은 흉노왕자에게 한나라의 보정대신을 맡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