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商)나라는 왜 빈번하게 천도(遷都)하였을까?
글: 사설신어(史說新語)
"탕(湯)이 걸(桀)의 폭정을 없애고 팔방을 평정하고, 박읍(亳邑)을 수도로 삼아 상(商)을 세운다" 중국고대의 두번째 왕조로서 상나라는 중국역사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친다.
당연히 상나라이전에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夏)나라가 있다. 하나라는 중국최초의 세습제 왕조였다.
그러나, 기원전1600년 상탕(商湯)이 이끄는 상부락이 하왕조를 멸망시키고 상왕조를 건립하게 된다.
그러나, 하왕조가 이미 멸망하였는데도 상나라는 계속하여 빈번하게 도성을 옮겼다. 어떤 사람은 상나라가 이렇게 자주 도성을 옮긴 것은 홍수를 피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견해는 금방 무너졌다.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상왕조가 피하려 한 것은 홍수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상왕조는 도대체 왜 그렇게 자주 도성을 옮겨다녔던 것일까?
상왕조의 역사
상왕조에 관하여, 아마도 상당한 사람들에게는 낯선 왕조일 것이다. 그러나, 소달기(蘇妲己)를 얘기하면 아마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소달기를 알고 있으니, 상왕조를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상왕조는 하왕조의 뒤를 이어 중국에서 비교적 장기간 존재했던 왕조이다.
왕조는 5백년이나 존속했다. 통계에 따르면 상왕조는 모두 17세에 걸쳐 전후로 31명의 제왕이 있었다고 한다.
상왕조의 기원은 황하중하류의 한 부락이다.
다만, 상왕조가 건립된 후부터 빈번하게 도성을 옮기기 시작한다.
하왕조의 후예인 반경(盤庚)이 제왕에 오르고, 은(殷)으로 천도한 이후부터 상왕조는 안정되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다.
상왕조는 노예제의 전성기였고, 상의 시조인 조계(祖契)는 개략 하우(夏禹)와 동시대의 인물이다.
제순(帝舜)시기에, 계는 대우(大禹)의 치수를 도운 바 있으며, 그 공로로 상읍(商邑)을 봉지로 받는다.
하왕조중기, 계의 6대손인 왕해(王亥)는 상업무역을 통하여 상의 세력을 점점 강성하게 키운다. 다만 상왕조를 건립한 것은 계의 14대손에 이르러서이다.
상왕조는 동시대문자로 직접 기록된 최초의 왕조이다. 중국역사상 그리하여 중요한 지위를 가진다. 상왕조에 관하여, 대체로 선상(先商), 조상(早商)과 만상(晩商)으로 나눌 수 있다.
선상은 기실 상왕조가 하왕조를 무너뜨린 이후의 전기이다. 이때의 상왕조는 경제이건 과학기술이건 모두 상대적으로 비교적 선진적이었다.
당연히, 당시의 상왕조통치자가 민심을 얻을 수 있었으므로, 상왕조의 발전 또한 크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상왕조의 첫번째 제왕인 상탕(商湯)이 재위하는 기간도 가장 긴 30년이다. 그이후의 제왕은 연속으로 두번 모두 재위기간이 7년을 넘기지 못한다.
상왕조의 중기는 기실 전체적으로 말해서 그다지 큰 기복이 없었다. 다만 점차 하락하는 추세로 접어든다. 유일하게 언급할 가치가 있는 것은 중기때 상왕조는 제왕이 교체되면서 도성도 바꾸었다. 즉 천도를 하였다는 것이다.
은을 도성으로 정한 이후의 상왕조는 마지막 이백여년간이 만상시기이다. 원래 반경이 상왕조의 운명을 바꿀 전환점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전인재수(前人栽樹), 후인승량(後人乘凉). 전인이 나무를 심고 후인이 그늘을 즐긴다. 반경은 만상시기의 모든 기초를 닦는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 제대로 계승되지 못했을 뿐아니라, 반대로 향락을 탐하게 된다.
상왕조의 상고종(商高宗) 무정(武丁)이 역사무대에 등장하면서, 상왕조의 운명은 다시 한번 전환점을 맞이한다. 무정은 어려서부터 하층에서 단련하였기 때문에, 무정이 이끄는 동안 상왕조는 경제, 정치 및 군사분야에서 모두 유례없는 발전을 이루게 된다.
그의 영도하에 상왕조는 주변의 부락집단을 하나하나 격패시켰을 뿐아니라, 여러 세력을 정벌한다. 그렇게 상왕조의 판도와 세력범위를 확장했다.
다만, 무정이후 상왕조는 계속하여 전쟁을 벌이지만, 진정으로 정복한 세력은 하나도 없게 된다. 그렇게 계속되다보니 상왕조의 국력은 이전만 못하게 된다.
나중에 상주왕(商紂王)이 즉위하고 다시 말(沫)로 천도한다. 즉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조가(朝歌)이다. 비록 상주왕은 남들보다 강한 팔힘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보다 총명한 두뇌를 가졌지만, 그의 황음무도와 백성들에 대한 잔혹한 통치와 압박으로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게다가 무거운 세금부담까지 떠안게 되니 이는 상왕조를 무너뜨리는 마지막 지푸리기가 된다.
당연히, 서주(西周)가 상왕조의 타락시기에 계속하여 발전하고 결국 목야지전(牧野之戰)에서 상왕조를 격패시킨다. 상주왕은 스스로 불을 질러 자살한다. 이렇게 상왕조는 오랜 기간의 통치를 끝내고, 서주로 대체되게 된다.
왜 상왕조는 계속하여 천도하였을까?
기실, 상왕조가 계속하여 천도한 이슈에 대하여 지금까지 내놓은 대답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상왕조가 자연재해를 피하기 위하여 천도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한 나라가 빈번하게 천도를 하게 되면, 국가에 있어서 기반이 불안정하게 되고, 심지어 백성들이 고생을 하고 국고를 쏟아붓게 되어 얻는 이익보다 잃는 손해가 크게 된다.
그러므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통치자는 쉽게 천도를 결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왕조가 자연재해를 피하기 위하여 천도하였다고 하려면, 그 이유가 성립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당시의 사회발전정도를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당시의 인민들은 거의 모두 농경생활을 했다. 만일 자연재해가 농업에 영향을 준다면, 예를 들어, 홍수라든지 가뭄이라든지. 그건 국가의 경제발전에 있어서 모두 거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상왕조가 자연재해를 피하기 위하여 빈번하게 천도하였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다만, 사실이 정말 그러했을까?
만일 정말 자연재해를 피하기 위함이었다면, 왜 계속하여 천도를 해야 했을까? 설마 상왕조시기에 다른 시기보다 더욱 빈번하게 자연재해가 발생했단 말인가?
기록에 따르면, 상탕이전에 상왕조는 이미 8번이나 천도를 했고, 상탕시기에도 5번이나 천도를 했다. 상왕조가 빈번하게 천도한 원인은 대체로 3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 원인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연재해를 피하기 위해서이다. 이때의 자연재해라 함은 황하의 홍수이다.
상왕조는 원래 황하중하류에서 발전한 부락이다. 대우치수가 있기는 했지만, 황하에 이상현상이 나타나기만 하면 상왕조의 백성들은 불안을 느끼게 된다.
어쨌든 농경의 발전은 수리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왕조의 백성들도 '산주변에 살면 산에 의지해서 먹고 살고, 물주변에 살면 물에 의지해서 먹고 산다" 그런데 그 물이 일단 노하게 되면 그 화는 자연히 무고한 백성들에게 미치게 된다.
두번째 이유는 전쟁이다. 당시의 전쟁은 모두 부락과 부락간의 전투였다. 하나의 부락이 지방에서 전투를 지휘하게 되면, 승리를 거둔 후, 그 지휘장소를 풍수길지(風水吉地)로 여긴다.
당연히, 전투를 지휘한 장소는 부락의 중앙지역에서 약간 떨어진 곳이 될 것이다. 어쨌든 전쟁을 벌이게 되면, 자연히 적이 본거지(즉 도성)으로 바로 쳐들어올까봐 우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번째 이유는 바로 황위계승이다. 기실 반경이전에 상왕조는 소위 적장자계승제가 확립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반경이전의 상왕조는 계승제도가 혼란스러웠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후계자가 거주하고 있던 장소가 도성이 된다. 그리하여 상왕조는 계속하여 천도를 하게 된 것이다. 반경이후, 계승제도가 확립되고, 도성도 안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