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국연합군이야말로 중국인민해방군이다 - 아편전쟁이 중국인민의 해방전쟁이다.
글: 우별자(右撇子)
중국의 우민교육은 황당 그 자체이다. 중공이 만들어낸 각종 정치용어를 보면, 코메디와 몰염치로 충만핟. "해방(解放)"이라는 말을 보기로 하자. 곳곳을 다니며 강탈하고는 모두 '해방'이라는 명목을 붙인다. 전중국을 해방했다는 것은 기실 전중국을 강탈하여 자기 소유로 했다는 말이다. 특히 '대만해방'이라는 것은 더욱 가소롭다. 대만인들을 아주 잘 살고 있는데, 한 무리의 '못사는 자'들이 하루종일 '대만해방'시키겠다고 떠들고 있다니, 자신은 발에 족쇄를 달고서, 다른 사람을 해방시켜주겠다고 떠들고 있다. 이것보다 더 우스운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중국인의 일상언어를 보면, 우리는 자주 해방전에 어떠했고, 해방후에는 어떻고 하는 말들을 듣게 된다. 공산당이 국민당과 강산을 쟁탈한 전쟁을 가리켜 '해방전쟁'이라고 부른다. 도처에 가서 '해방'시켰다는 것이다. 중국의 도시중에서 '해방로(解放路)'가 없으면 그건 도시라고 할 수도 없다.
"해방". 도대체 무엇을 해방시켰다는 말인가? 해방후에 중국인들은 왜 그렇게 죽어라 외국으로 도망쳤을까? 저명한 홍콩도망붐은 해방후에 중국인들이 죽어라 영국통치하의 홍콩으로 도망친 것이다. 뉴욕의 차이나타운에서 생활하는 푸저우사람은 듣기로 대다수가 푸젠에서 밀항한 사람들이다. 중국이 해방되지 않았는가? 해방되었는데 왜 도망치거나 밀항했는가?
이것은 중국인의 정신착란의 아주 분명한 현상의 하나이다.
중국인이 정말 해방되었는가? 역사의 각도에서 보자면, 사실은 분명하다. 100여년전, 중국은 여전히 농경사회였다. 남자들은 변발을 하고 마괘(馬褂)를 입었다. 여자들은 전족을 하고 재주가 없는 것을 덕이라 여겼다. 그러나 오늘날의 중국인을 보라. 많은 사람들은 양복에 구두를 신었다.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더 대단하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현대화된 도구들을 보자. 컴퓨터, 자동차, 비행기, 기차, 인터넷....이런 것들은 100여년전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확실히 중국사회가 1세기여동안 천지가 뒤집히는 변화를 겪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중국인의 몸과 마음은 모두 상당한 정도로 해방되었다. 비록 많은 중국인들이 지금도 여전히 황제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은덕에 감사하고 있지만, 중국사회는 어쨌든 천년간 유행하던 태감제도와 여자들의 전족제도라는 악습을 없애버렸다. 중국사회의 문명진보는 객관적으로 말해서 아주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 한가지 문제가 있다. 도대체 중국사회가 1세기여동안 문명이 진보한 것은 무엇때문인가? 도대체 누구의 공인가? 도대체 누가 중국인들을 해방시켜주었는가?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대다수의 중국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중국인민해방군이 중국인민을 해방시켜주었다고. 대만의 국민당사람이라면 국부 손중산이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국인을 해방시켰다고.
사실이 정말 그러할까? 나는 하나의 기본적인 가설을 가지고 이런 주장에 의문을 던져보겠다.
만일 이 세계에 서방사회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예를 들어, 유럽이 존재하지 않고, 영국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중국인들의 세계는 지금 어떤 모습이었을까?
쉽게 상상이 가능하다. 만일 이 세계에 서방사회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중국인들은 컴퓨터, 자동차, 비행기, 기차를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과학기술은 모두 서방인들이 발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천년간 유행한 태감제도와 전족의 악습도 서방문화가 중국에 들어온 후에 비로소 중국인들이 스스로가 얼마나 추악한 짓을 했는지 깨닫고 부득이 버리게 된 것이다. 만일 서방문화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중국인들이 왜 천년간이나 유행한 습관을 버렸겠는가? 그러므로, 중국인의 관념이 현대화된 것은 서방인들 때문이다. 만일 서방문화의 전래가 없었더라면, 오늘의 중국에는 거의 100% 태감문화가 성행했을 것이다. 여자들도 100% 전족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손중산등 혁명당인들은 모두 서방에서 생활한 후에 돌아와서 혁명을 했다. 그러므로 만일 서방인이 없었더라면 손중산등 혁명당인들도 '민주공화'등 현대적인 민주관념을 가졌을 수가 없다. 중국사회는 거의 100% 여전히 청나라황제의 통치하에 있었을 것이다. 설사 청왕조가 무너졌다고 하더라도, 서방인들의 문화침입이 없었더라면, 중국인은 역시 중국인이다. 황제를 바꿀 뿐 여전히 옛날 그대로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 수 있다. 중국사회에 거대한 변화를 조성한 것은 기실 서방인이다. 특히 영국인이다. 서방인들이 발전된 과학기술과 현대화된 관념을 전해주었다. 서방인들이 우리 중국인들에게 지구가 원래 둥글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네모난 것이 아니라. 우리 중국인들이 전등과 컴퓨터, 비행기, 자동차, 항생제....등등 무수한 현대화된 편의를 누리게 해준 것도 바로 서방인이다. 서방인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중국인들의 생존상태가 어떠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근원을 따져서 얘기하자면, 기실 서방인이 중국인을 해방시켜주었다. 최소한 서방인이 가장 먼저 중국인의 우매라는 단단한 껍질을 깨주었고, 중국인이 우매에서 벗어나 문명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서방의 물질과 문화가 중국으로 전래된 것은 주로 청나라때의 일이다. 바로 청나라조정이 완고하게 서방문화와 물질의 전래를 막았던 것이다.
서방인, 특히 영국인은 중국에 들어올 때 먼저 청나라조정과 교섭을 했다. 당연히 그들도 이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주로 경제목적이다. 다만 객관적으로 중국인들에게 물질과 심령의 해방을 가져다 주게 된다. 영국인은 전등, 기차, 자동차등 현대화된 생활도구를 가져다 주었을 뿐아니라, 인권, 부녀해방등등 현대인권개념도 가져다 주었다. 이런 것들이 없었더라면, 중국사회는 그렇게 거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없었을 것이다.
기실 영국인은 중국인만 해방시켜준 것이 아니라 전인류를 해방시켜 주었다.
그렇다. 영국인은 함포를 가지고 전세계를 정복했다. 그들이 세계를 정복한 최초의 동기는 전인류를 해방하려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반대로, 그들의 원시적인 동기는 아마도 이기심과 탐욕이었을 것이다. 경제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재물을 얻기 위해, 금은보화를 얻기 위해서일 것이다. 다만, 하느님은 신기한 손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대중에게 이득을 가져다 주게 만든다. 이것은 마치 자유시장경제의 모든 참여자들이 각자 이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참여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사회에 이득을 가져다 주고, 모든 사람들이 이익을 얻게 해주는 것과 같다. 영국인이 세계를 정복한 주요동기는 이기적인 것이었지만, 객관적으로 영국인은 인류문명의 씨를 전세계에 뿌린 것이다. 이는 인류의 행운이고, 더더욱 중국인의 행운이었다.
원명원(圓明園)을 불태운 팔국연합군은 기실 진정한 중국인민해방군이다. 중국의 국문을 열어제킨 "아편전쟁"이 기실 진정한 중국인민의 해방전쟁이었던 것이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1세기여전에 중국인의 심신에 가로놓인 압박은 바로 낙후된 과학기술과 우매한 관념이었다. 청나라조정은 폐관쇄국정책을 시행했고, 중서방간의 문화와 경제교류를 막았다. 본질적으로 말해서, 청나라조정이야말로 중국인들의 압박자였다. 왜냐하면 청나라조정은 중국인이 서방의 현대화된 인권관념과 현대화된 생활도구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막았기 때문이다. "아편전쟁"의 중국인에 대한 의미는 아편 자체에 있지 않고, 중국의 대문을 열었다는데 있다. 중국인들이 외부의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는데 있다. 이것이야말로 '해방'의 진정한 의미이다. 팔국연합군이 직접 북경으로 쳐들어와서 황실의 정원을 불태워버렸다. 이는 중국인의 압박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고, 청나라조정의 통치기반을 심각하게 뒤흔들었다. 이때부터 청나라조정은 비바람에 흔들리게 된다. 이 군대는 비록 '중국인민해방'이라는 기치를 내걸지 않았지만, 실제로 중국인민을 해방시켜주었다. 그들은 비록 직접 청나라조정을 무너뜨리지 않았지만, 청나라조정을 무너뜨리는데 아주 중요한 흠을 내주었다.
팔국연합군이건 아편전쟁이건 겉으로 보기에는 중국인민을 해방시킨다는 기치나 구호를 내걸지 않았다. 다만 본질적으로 이미 중국인민해방의 목적을 달성했다. 이때부터 중국인들은 희망을 보았고, 서광을 보았다. 이후 중국사회의 거대한 변화의 싹이 튼 것이다.
비록 서방인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사교도 가져왔고, 소련의 하수인 중공도 가져왔다. 그러나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중국인들의 몸에 붙게 된 주요한 원인은 역시 중국인들 자신의 뿌리깊은 진제(秦制, 진나라제도)때문이다. 그래서 중공은 완전하게 서방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제의 적계자손(嫡係子孫)이다. 최소한 진제와 서방마르크스레닌주의의 잡종이다.
많은 중국인들은 아마도 나와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이들은 영국인들이 세계를 정복하면서 범한 죄행으로 영국인들의 인류에 대한 공헌을 말살한다. 팔국연합군과 아편전쟁은 확실히 중국에 어느 정도 손실과 상처를 주었다. 다만 중국사회에 가져다준 긍정적인 효과가 부정적인 효과보다 훨씬 크다. 문명화된 서방이 우매하고 낙후된 청나라조정과 대항하면 유혈의 희생을 피할 수 없다. 다만 이런 손실은 중공 자신의 소위 '해방전쟁'으로 조성된 손실과 비교하면, 확실히 세발의 피다. 청나라조정의 우매함과 낙후에 완고함까지 더해져 있는데, 함포가 아니면 그것을 어떻게 열 수 있었겠는가? 해방군이 총을 쏘지 않고, 포를 쏘지 않고서 어떻게 중국인을 해방시킬 수 있었겠는가?
많은 중국인들은 팔국연합군이 원명원을 불태워버린 것에 대하여 분노한다. 그러나 불탄 것은 황제의 후화원이지 너의 초가집이 아니다. 네가 왜 가슴을 치며 슬퍼하는가? 우매한 청나라조정의 고위관료는 다른 나라의 외교협상대표를 죽여버렸다. 이런 야만적인 통치자를 상대하면서 그 후화원을 불태워버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전혀 지나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영국인은 함포로 중국의 대문을 열었다. 영국인의 당초 동기가 어떠하든지간에, 객관적으로 이는 중국인을 해방시킨 일대 장거이다. 만일 누구든 이런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나는 간단한 질문을 하나 하도록 하겠다. 만일 영국인이 함포로 중국의 대문을 열지 않았다면, 너의 어머니는 지금 아마도 여전히 전족을 하고 있을 것이다. 중국여인의 발이 해방되는 것만 보더라도 영국의 함포는 엄청난 공로를 세운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중국인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모르는 민족이다. 생각해보라 청왕조가 중국에 무엇을 가져다 주었는가? 다시 생각해보라. 영국인, 서방인이 중국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었는가? 전자가 가져다 준 것은 거의 재난이다. 후자가 가져다 준 것은 자신의 생활수준이 극도로 제고되고 심신이 해방된 것이다. 왜 서방인이 청황제의 후화원을 불태웠는가? 중국인이 왜 이렇게 분개하는가? 생각하면 할수록 이해가 되지 않는다.
중국근대사를 되돌아보면, 본인은 서방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만일 서방인이 없었더라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들은 길게 변발을 기르거나 전족을 했을 것이다. 당금 국모도 십중팔구 전족한 여인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의문이 있는가?
그러므로, 영국왕실은 전인류의 존경을 받을 만하다! 영국인의 정치유산이야말로 인류해방의 가장 큰 공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