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선진)

춘추양대기보(春秋兩大奇寶)중 하나인 수후지주(隨侯之珠)에 관한 문헌기록들...

중은우시 2022. 12. 29. 16:11

글: 소가노대(蕭家老大)

 

춘추전국시대의 수(隨)나라에는 진귀한 보물이 하나 있었는데, "수후지주(隨侯之珠)"라 불렸다. 이것은 "화씨지벽(和氏之璧)과 더불어 춘추양대기보라 불렸다. 이 양대기보는 춘추전국시기에 여러번 언급된다. 예를 들어, '변화보박(卞和報璞)", "완벽귀조(完璧歸趙)"등의 고사이다. 그러나, 최초의 봉건왕조인 진나라가 멸망한 후, "수후지주"와 "화씨지벽"은 모두 사라진다. 이건 무슨 이유때문일까?

 

역사상 "수후지주"에 관한 문헌기록은 다수 존재한다. 

 

<맹자.양왕(讓王)>에는 이런 말이 있다: "지금 어떤 사람이 여기에서, 수후지주를 가지고 천길 절벽에 있는 참새를 쏘는데 쓴다면 세상사람들은 반드시 비웃을 것이다. 왜 그런가? 중한 것을 써서 경한 것을 얻가 때문이다." 그 뜻은 중대한 것을 버려서 경미한 것을 구한다는 뜻이다. 수후지주를 가지고 높은 산의 참새를 잡다니. 

 

<묵자>에는 이런 말이 있다: "화씨지벽, 야광지주(夜光之珠), 삼극육이(三棘六異), 이는 제후들의 좋은 보배들이다." 여기서 야광지주는 '수후지주'를 의미한다.

 

<여씨춘추. 관생편>에도 "수주탄작(隨珠彈雀)"으로 큰 재목을 작은 일에 쓰는 이치를 비유한다. 

 

그외에 <한비자>에는 이런 말이 있다: "화씨지벽은 꾸미지 않아도 오색영롱하고, 수후지주는 꾸미지 않아도 은황색이 난다. 그 재질이 아주 아름다워서 꾸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서한의 <회남자.남명>에는 이런 말이 있다: "예를 들어, 수후지주, 화씨지벽은 얻는 사람이 부유하고, 잃는 사람이 가난하다." 등등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수후(隨侯)가 행차할 때, 뱀 한 마리가 누군가에게 허리가 베어져 목숨이 간당간당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수후는 상처를 살펴보았는데, 큰 뱀은 구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처럼 보였다. 수후는 그 뱀이 영물이라고 생각하여 측은지심이 들었다. 그리하여 어의가 가져온 약물을 뱀의 상처에 발라준다. 그 뱀은 서서히 지각이 살아났고, 점차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 그 뱀은 수후의 가마 주위를 세 바퀴 돈 후에, 숲 속 깊은 곳으로 기어갔다. 1년이 지난 후, 수후가 다시 행차에 나섰는데, 돌연 한 소년이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는 꿈을 꾼다. 그리고 자신이 작년에 목숨을 구해준 뱀이라고 얘기하면서 구명지은에 보답하기 위하여 특별히 수후에게 보배 하나를 바치겠다고 한다. 수후가 꿈에서 깨어나니 과연 커다란 구슬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 구슬은 주위 1치까지 밝게 빛났다. 낮에는 달처럼 희고 매끄러웠으며, 밤에는 광채를 내뿜었다. 실내를 대낮처럼 밝힐 수 있었다. 수후는 이를 보배로 여겨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국보(國寶)"로 삼는다.(동진 간보의 <수신기>)

 

춘추전국시대는 여러 제후가 난립했고, 수나라는 한수(漢水)의 동쪽에 있는 자그마한 제후국이었다. 당시 제후들간에 패권을 놓고 다투고 있었고, 여러 소국들은 소멸되거나 병합되었다. 수나라는 먼저 초나라의 부속국이 되었다가 나중에 초나라에 의해 멸망한다. "수후지주"도 자연스럽게 초나라의 국고에 들어간다. 사료기재에 따르면, 기원전350년, 진(秦)나라가 사신을 파견하여 초나라의 보물을 보여달라고 요구한다. 초선왕(楚宣王)은 영윤(令尹) 자서(子西)에게 "진나라가 초나라의 보물을 보고싶다고 하는데, 나의 화씨지벽과 수후지주를 보여주어도 되겠는가"라고 말한다. 이를 보면 수후지주는 확실히 초나라에 있었다. 나중에 진나라가 강성해지면서 육국을 통일한다. 전후로 초나라 조나라를 멸망시키면서, 춘추의 양대기보인 "수후지주"와 "화씨지벽"은 모조리 진나라의 수중에 들어가 진나라의 국보가 된다. 이는 이사(李斯)의 <간축객서>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진시황에게 글을 올려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현재 폐하는 곤산지옥(昆山之玉)을 다듬고, 수화지보(隨和之寶)를 가졌으며, 명월지주(明月之珠)를 늘어뜨리고 있다. 이들 여러가지 보배는 진나라에서 생산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좋아하시는데 무엇때문입니까?" 그 의미는 현재 진시황이 곤륜산에서 나는 아름다운 옥도 가지고 있고, 수후지주, 화씨지벽도 가지고 있는데, 이들 보물은 모두 진나라산이 아니다. 그런데도 폐하는 아주 좋아하고 있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고 진시황이 황제를 칭하면서 황제의 인장을 화씨벽을 조각하여 '옥새'로 만들었고 그 위에 "수명어천(受命於天), 기수영창(旣壽永昌)"이라는 여덟글자를 새긴다. 글자는 이사가 썼고, 이를 새긴 장인은 당시 저명한 옥장(玉匠)인 손수(孫壽)이다. 진나라가 멸망한 후, 천하는 대혼란에 빠지고, '옥새'는 대대로 전해져 내려갔지만, '수후지주'는 그 후로 행적이 묘연하다.

 

"수후지주"의 행방에 관하여는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분소설(焚燒說)"이다. 유방이 함양을 점령하고, 진왕 자영의 항복을 받아낸다. 그리고 모든 물건을 등기하여 보존하였다. 그런데 항우가 아방궁을 불태울 때, '수후지주'도 함께 불에 탔다고 한다.

 

둘째, "유락민간설(流落民間說)"이다. 이 설은 초패왕(楚覇王)과 관련이 있다. 항우가 함양으로 쳐들어간 후, 함양에서 많은 보물과 미녀를 약탈한다. 그는 '수후지주'는 원래 초나라의 보물이라고 여겨 그것을 빼앗아갔다. 그런데 나중에 항우가 전쟁에서 패하면서 '수후지주'는 민간으로 흘러들어갔다고 한다.

 

셋째, '배장설(陪葬說)" 수후지주는 실제 야명주(夜明珠)이므로 진시황이 죽은 후, '수후지주'를 배장품으로 시황제의 묘실에 초를 대신하여 두었다고 한다(以代膏燭). 이 설이 가장 믿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