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항우)

항우(項羽)의 패망후 그 휘하의 4대맹장은 어떻게 되었는가?

중은우시 2021. 6. 6. 22:48

글: 종횡오천년(縱橫五千年)

 

서초패왕 항우는 힘이 남달라서, 상대가 두려움을 느끼던 맹장이다. 동시에 항우의 휘하에는 4명의 맹장이 있었다. 그들은 항우를 따라 동정서토, 남정북전하였다. 거록지전에서는 진군 40만을 격파하기도 했고, 팽성지전에서는 유방의 56만대군을 물리쳐서 위명을 천하에 떨친다. 그러나, 항우는 결국 패망했다. 그렇다면 그의 휘하에 있던 4대맹장은 어떤 최후를 맞이했을까?

 

가장 먼저 얘기해아할 맹장은 용차(龍且)이다. 용차에 관한 사료는 많지 않다. 그는 분명 일찌감치 항량, 항우를 따랐을 것이고, 계속하여 항씨집안이 심복이었다. 용차는 항량의 휘하에서 사마(司馬)를 맡았고, 동아전투에 참가하여 진군을 대파한다. 항우의 용인술에는 특징이 있다. "그가 즐겨 기용하는 사람은 항씨일족이거나 처가의 일족이다. 그렇지 않으면 뛰어난 인재라도 기용하지 않았다." 즉 항우가 쓰는 사람은 항씨집안의 자제이거나 그와 가까운 사람이다. 다른 성씨의 인물중에 용차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항우가 서초패왕을 자칭한 후, 유방이 거병하여 대항하여 초한전쟁이 발발한다. 이 과정에서, 항우는 자주 용차로 하여금 대군을 이끌고 상대하도록 했다. 영포(英布)가 항우를 배신한 후, 항우는 "항성(項聲), 용차로 하여금 회남(淮南)을 공격하게 했다" 그리고 용차는 영포의 군대를 격패시킨다. 기원전203년, 항우와 유방이 대치할 때, 한신이 북방을 공략하고, 남하하여 초를 공격하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 용차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북상하게 한다. 그러나, 용차는 한신의 적수가 도지 못했다. "기병장수 관영(灌嬰)이 공격하여, 초군을 대파하고, 용차를 죽인다"

 

두번째는 종리매(鍾離昧)이다. 용차와 마찬가지로 종리매도 항우의 심복장수이다. 여러번 유방을 격패시킨다. 진평(陳平)은 일찌기 유방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항왕(항우)의 골경지신(骨鯁之臣)은 아부(亞父), 종리매, 용차, 주은(周殷)과 같은 자들로, 몇몇 되지 않습니다." 진평의 반간계로 인하여 종리매는 항우의 시기를 받는다. 항우가 죽은 후, 종리매는 옛날의 친구였던 한신에 의탁한다. 나중에 한신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종리매를 자살하도록 핍박한다. 그러나, 한신도 유방의 박해를 피하지 못한다.

 

셋째는 영포이다. 영포는 여러서 범죄를 저질러 경형(黥刑)을 받은 바 있다. 그래서 경포(黥布)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포는 여산(驪山)에서 노역을 한 적이 있다. 나중에 도망쳐서 녹림호걸이 되고, 한때는 오예(吳芮)의 수하장수였다. 그후에 항량에 의탁한다. 영포는 용맹하고 전투를 잘했다. 항우의 장수들 중에서 제일맹장이라 할 수 있다. 거록지전에서 그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선봉이 되어 관중으로 쳐들어간다. 기원전206년, 항우가 천하에 분봉할 때, 영포는 구강왕(九江王)에 봉해진다.

 

초한전쟁이 발발한 후, 유방의 회유로, 영포는 항우를 배신한다. 그리고, 항우를 포위공격하는 전투에 참가한다. 그는 한왕조의 건립에 큰 공을 세운 것이다. 유방이 황제를 칭한 후, 영포를 회남왕(淮南王)에 봉한다. 기원전196년, 영포는 팽월(彭越)이 육장으로 되는 것을 보고 아주 두려워한다. 그리하여 다시 반란을 일으킨다. 유방은 친히 군대를 이끌고 나가 쌍방은 큰 전투를 치른다. 결국 영포는 패배하여, 수백명을 이끌고 도망치나, 최종적으로 유인살해당한다.

 

네번째는 계포(季布)이다. 계포는 초(楚)나라 사람이다. 일찌기 협객(俠客)이었다. "협객으로 초에 명성을 얻었다" 나중에 계포는 항우를 따라 거병하고, 여러 번 전공을 세운다. 특히 초한전쟁때, 계포는 여러번 군대를 이끌고 유방을 격파한다. 몇번은 거의 유방을 죽음직전까지 몰아넣었따. 항우가 패망한 후, 유방은 '수배령'을 내려 "계포에 천금을 건다. 만일 숨겨주면 삼족에 죄를 묻겠다." 계포는 먼저 복양의 주(周)씨집안에 숨고, 다시 대협 주(朱)씨의 집으로 간다.

 

주(朱)씨는 하후영을 통하여 유방을 설득한다. 그제서야 유방은 계포의 죄를 사면해준다. 나중에 유방은 친히 계포를 만난다. 그리고 그를 낭중(郞中)에 임명한다. 이 낭중은 의원이라는 뜻이 아니라, 황제 신변의 시종관이다. 황제의 고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한혜제때, 계포는 중랑장(中郞將)으로 승진한다. 한문제때에 이르러 계포는 하동군수가 되어 업적을 많이 세운다. 사람들은 "황금백근을 얻는 것보다, 계포의 약속을 받아내는 것이 낫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일락천금(一諾千金)의 유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