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선진)

주무왕(周武王)은 상(商)을 멸망시킨 후 어떤 조치를 취했을까?

중은우시 2020. 7. 1. 21:40

글: 소가노대(蕭家老大)

 

주무왕(周武王)은 이름이 발(發)이다. 그는 주문왕의 차남이다. 그의 형인 백읍고(伯邑考)가 상나라 주왕(紂王)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에 그가 왕위를 승계하게 된 것이다. 그는 즉위한 후 강상(姜尙, 강태공)을 스승으로 삼아 군사를 책임지게 하고, 주공단(周公旦)을 보좌하게 하여 주로 정무를 책임지게 했다. 소공(召公)과 필공(畢公)은 그의 오른팔 왼팔로 내정과 군대를 정돈했다. 그리고 도성을 호(鎬, 지금의 섬서성 서안 양하동쪽)로 옮겨서 상나라를 멸망시키는 전쟁을 적극적으로 준비한다.

 

그가 즉위한 다음 해, 상왕조의 전쟁대비활동을 탐색하기 위하여, 군대를 출동시켜 대규모로 동진한다. 맹진(盟津, 지금의 하남성 맹진 동북쪽)까지 진격한다. 그는 먼저 필원(畢原, 지금의 섬서성 성양 부근)에 도착하여, 주문왕의 능묘에 제사를 지내고, 그 후에 주문왕의 위패를 들고 스스로를 태자발(太子發)이라고 칭하며 군대를 이끌고 맹진까지 간다. 이는 상을 멸하는 것은 주문왕의 뜻이고, 자신이 주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다.

 

당시 8명의 제후가 소식을 듣고 함께 출동한다. 모두가 즉시 상을 멸하는 전쟁을 개시할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주무왕과 강상은 시기가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황하를 건넌 후, 다시 전군을 이끌고 회군한다. 역사상 이번 행동을 "맹진관병(盟津觀兵)"이라 부른다. 실제로 이는 상을 토벌하는 군사연습이라 할 수 있다.

 

다시 2년이 지났다. 상나라의 정치는 더욱 부패하고, 인심을 흩어졌다. 그리고 동쪽으로 대규모 병력을 보내어 국내는 텅 비어 있었다. 주무왕은 상나라를 토벌할 시기가 성숙되었다고 여기고 과감하게 출병한다. 그는 삼백승(三百乘)의 전차를 이끌고, 호분지사(虎賁之士) 삼천명, 갑사(甲士) 사만오천명을 이끌고 보무당당하게 각로제후의 군대와 합쳐서 맹진에서 황하를 건넌다. 그리고 상나라의 수도에서 칠십리 떨어진 목야(牧野)에 도착한다.

 

주무왕은 이곳에서 전군에 맹세를 한다. 장병들이 통일적으로 행동하고 용감하게 전투할 것을 요구하고, 주왕의 여러가지 악행을 지적하며 자신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상을 멸하여 징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맹세의 내용은 <상서.목서>에 나와 있다. 상왕은 너무나 돌연한 사태에 군사적인 준비가 부족했다. 황급히 군대를 모아서 전투에 나선다. 그러나 이들은 전투할 생각이 없었다. 양군이 교전할 때, 상나라병사들은 창끝을 거꾸로 들어, 주나라군대가 대승을 거둔다. 이렇게 하여 상을 멸망시키는 대업을 완정하게 된다.

 

상을 멸망시킨 후, 주무왕은 상나라사람들을 회유하는 정책을 쓴다. 주왕의 아들 무경(武庚)을 은(殷)에 봉한다. 그리고 구금되어 있던 기자(箕子)를 석방한다. 또한 주왕에게 살해당한 비간(比干)의 묘를 수리한다. 감옥을 열어, 구금되어 있던 죄수들을 풀어준다. 그리고 주왕의 창고를 열어 그동안 긁어모았던 재물을 민중에게 나누어준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많은 식량을 나누어준다. 이렇게 하여 상왕조 유민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그에 대한 적대감을 완화시킨다.

 

무경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주무왕은 소위 "삼감(三監)"을 설립한다. 상왕조의 왕기지지(王畿之地)를 셋으로 나누어, 감(邯), 용(鄘), 위(衛)의 세 나라를 만들고, 주무왕의 동생인 관숙(管叔), 채숙(蔡叔), 곽숙(霍叔)을 삼국의 군주로 봉한다. 이들로 하여금 무경의 행동을 감시하게 한다.

 

동시에, 분봉제를 실시하여, 공신과 제후들을 새로 제후에 봉한다. 예를 들어, 강상을 제(齊)나라의 국군으로 봉하고, 주공단을 노(魯)나라의 국군으로 봉하고, 소공을 연(燕)나라의 국군으로 봉하며, 동생 숙선(叔鮮)을 관(管)나라의 국군으로 봉하고, 동생 숙도(叔度)를 채(蔡)나라의 국군으로 봉한다. 나머지 제후들은 그와 주왕실과의 혈연관계의 원근에 따라, 모두 분봉한다. 동시에, 상왕조의 기물을 이들 제후들과 공신들에게 하사한다.

 

그러나, 상왕조는 동방의 광대한 지구에서 여전히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에게까지 조치를 취할 시간이 없었다. 주무왕은 상을 멸망시킨 후 1년후에 병사한다. 그의 아들 성왕(成王)이 즉위하는데, 나이가 어려서, 주무왕의 동생인 주공단이 섭정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