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국시대의 각지방 군벌(軍閥)은?
글: 대웅역사관(大熊歷史觀)
원세개(袁世凱)가 소참(小站)에서 병사들을 훈련시킨 후, 그의 손으로 당세 세력이 가장 큰 북양군벌(北洋軍閥)이 형성된다. 그리고 그는 다시 민국의 대총통에 오른다. 원세개는 확실히 대단한 인물이다. 특별히 당시 각 지역의 장수들이 모두 원세개에게 기꺼이 복종했다. 다만 원세개의 사후 각지의 세력은 독자적으로 행동한다. 원세개 생전의 부하들도 통치권력을 놓고 다투기 시작하며, 서로 싸운다. 이때부터 민국은 장기간의 군벌혼전시기로 접어든다. 그렇다면 민국시대 각지의 대군벌은 누가 있었고, 어느 성을 근거지로 하였을까?
직계군벌(直係軍閥)은 현재의 하북(河北)을 근거지로 한다. 하북은 청나라떄 직예성(直隸省)이었기 때문에 민국시대에 이르러 이 지방의 장군들을 사람들은 직계군벌이라고 부르게 된다. 그 우두머리는 풍국장(馮國璋)이다. 그는 원세개집단의 가장 중요한 대장중 하나이다. 또한 북양삼걸(北洋三傑)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중에 조곤(曹錕), 오패부(吳佩孚), 손전방(孫傳芳)등의 대군벌은 모두 직계군벌에 속한다.
환계군벌(皖係軍閥)은 현재의 안휘(安徽)를 근거지로 한다. 원세개가 죽은 후, 안휘에서 단기서(段祺瑞)를 우두머리로 하여 형성된 군벌이다. 원세개 사후 실력이 가장 강한 파벌이었는데, 환계의 시절은 오래 가지 않는다. 직환대전에서 패배한 후, 점점 역사무대에서 사라진다.
봉계군벌(奉係軍閥)은 현재의 동북, 만주를 근거지로 한다. 당시 심양(瀋陽)은 봉천(奉天)으로 불리웠다. 그래서 이 지방의 군벌을 봉계군벌이라고 한다. 우두머리는 장작림(張作霖)이다. 비록 그는 녹림(綠林) 출신이지만, 봉계군벌은 그의 지휘하에, 민국후기 가장 강대한 군벌로 성장한다.
전계군벌(滇係軍閥)은 현재의 운남(雲南)을 근거지로 한다. 이 군벌은 채악(蔡鍔), 당계요(唐繼堯)가 일으킨 중구기의(重九起義)로 형성된 군벌집단이다. 다만 호국전쟁(護國戰爭)후에 채악이 병사하면서, 당계요가 전계군벌의 우두머리가 되어, 운남을 18년간 주재한다. 나중에 용운(龍雲), 노한(盧漢)도 전계군벌의 거물들이다.
진계군벌(晋係軍閥)은 현재의 산서(山西)를 근거지로 한다. 이 군벌의 우두머리는 염석산(閻錫山)이다. 그는 대단한 인물이다. 북양시절부터 항전시기까지 그리고 해방시기까지 그는 계속하여 진계군벌의 우두머리이다. 다른 군벌들은 우두머리가 교체되었지만, 오로지 진계군벌만은 한번도 교체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염석산은 오뚜기라는 별명도 얻는다.
계계군벌(桂係軍閥)은 현재의 광서(廣西)를 근거지로 한다. 이 군벌도 민국시기에 비교적 강대한 군벌이다. 북양시기의 우두머리는 육영정(陸榮廷)이다. 민국시대 장개석 통치시기의 우두머리는 이종인(李宗仁)과 백숭희(白崇禧)이다. 그러므로 계계는 다시 구계계(舊桂係)와 신계계(新桂係)로 나뉜다.
천계군벌(川係軍閥)은 현재의 사천(四川)을 근거지로 한다. 민국혼전시기에 천중(川中)은 장기간 혼전을 겪는다. 그리하여 천중군벌은 파벌이 비교적 많다. 등석후(鄧錫侯), 유문휘(劉文輝), 유상(劉湘), 양삼(楊森)등이 모두 천계군벌의 거물들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들은 모두 유상에게 격패당하고, 이후 천계군벌은 잠깐동안의 평화를 맞이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은 모두 딴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이상의 몇 개 군벌들 외에 서북(西北)의 마가군(馬家軍)이 감녕청(甘寧靑, 감숙, 영하, 청해)에 있었고, 상계군벌(湘係軍閥) 즉 호남을 근거지로 한 군벌로 당생지(唐生智), 하건(何健)이 있으며, 검계군벌(黔係軍閥)은 귀주(貴州)를 근거지로 하며 왕가열(王家烈)을 우두머리로 하며, 월계군벌(粤係軍閥)은 광동(廣東)을 근거지로 하며 진제당(陳濟棠)을 우두머리로 한다.
나중에 민국시기의 각 군벌들은 전쟁과정에서 소멸하거나 흡수당한다. 오로지 진계, 계계만이 오랫동안 존속한다. 해방전쟁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소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