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에 희성(姬姓)국가는 얼마나 될까?
글: 천지사화(天地史話)
서주(西周)의 제후국들 중에는 희성(姬姓)이 반이상을 차지했었다. 그렇다면, 전국시대로 접어든 이후에는 희성국가가 몇 개가 남아 있었을까?
먼저, 전국칠웅의 성씨를 보자. 기실 희성의 비율은 여전히 아주 크다. 연(燕), 위(魏), 한(韓)이 모두 희성이다.
연(燕)의 시조인 연소공(燕召公)은 주무왕(周武王)의 동생인 희석(姬奭)이다. 즉 서주개국의 소공(召公)이다.
한(韓)의 국군은 진(晋)이 대부인 한무자(韓武子)의 후손이다. 한무자는 진무공(晋武公)의 숙부이고, 역시 주무왕의 후손이다. 희성한씨(姬姓韓氏)이다.
위(魏)나라의 선조는 필공고(畢公高)이다. 필공고는 주무왕 희발(姬發)의 동부이모(同父異母)의 동생이다. 필국에 분봉을 받는다. 서주말기 필국이 서융(西戎)에 멸망하면서, 후예인 필만(畢萬)은 진헌공(晋獻公)에 의탁하고, 진헌공은 위(魏)의 땅(지금의 산서성 예성현 일대)을 필만에게 봉지로 내린다.
전국칠웅중 나머지 나라들을 살펴보자.
진(秦)나라의 시조 진비자(秦非子)는 상나라 주왕(紂王)의 수하명장인 비렴(飛廉)의 장남 악래(惡來)의 후손이다. 영성(嬴姓)이다.
조(趙)나라의 시조는 비렴(飛廉, 蜚廉)의 차남 계승(季勝)의 후예이다. 역시 영성(嬴姓)이다. 그러나, 진나라는 주평왕(周平王)을 따라서 비로소 개국하게 되었고, 조나라는 진나라에 의탁했다가 최종적으로 삼가분진에 참가하여 조나라를 세운다.
제(齊)나라의 시조는 여상(呂尙, 강태공)으로 강성여씨(姜姓呂氏)이다. 나중에 전씨(田氏)가 대체하여 국군에 오르는데, 원래는 진(陳)나라의 후예이고, 규성(嬀姓)으로 우순(虞舜)의 후손이다. 진려공(陳厲公) 규약(嬀躍)의 아들 진완(陳完)이 제나라에 의탁하고 그의 후대가 제나라이 국군에 오른다.
초(楚)나라는 미성웅씨(羋姓熊氏)이다. 현제(玄帝) 전욱(顓頊)의 후예이다. 이 네 나라의 선조는 모두 고대의 성현들이다.
전국시대 나머지 나라들을 살펴보자:
월(越)나라의 시조는 하(夏)나라의 군주 소강(少康)의 서자(庶子) 무여(無余)이다. 국군은 사성(姒姓)이다.
파(巴)국의 시조는 희성(姬姓)이고, 자작(子爵)이다. 위치는 섬남(陝南)이며, 나중에 중경(重慶)부근으로 옮겨갔다.
촉(蜀)국은 사천현지부락 낙아부씨(落魚鳧氏)가 건립했으며, 두성(杜姓)이다. 위치는 성도(成都)부근이다.
송(宋)국의 시조는 미자계(微子啓)와 미중연(微仲衍) 형제로, 자성(子姓)이다. 상(商)나라 국군의 후예이다.
중산국(中山國)은 융적(戎狄)이 건립한 국가이다. 희성(姬姓)인데, 아마도 백적(白狄)이 한화하면서 취한 성일 것이다. 주나라천자와는 혈연관계가 없다.
정(鄭)나라의 시조는 주려왕(周厲王)이 작은아들이고, 주선왕(周宣王)의 동모제(同母弟)인 왕자우(王子友)이다. 희성(姬姓)이다.
위(衛)나라의 시조는 주문왕(周文王)의 적구자(嫡九子), 강숙봉(康叔封)이다. 희성(姬姓)이다.
등(滕)나라의 시조는 주문왕의 십사자(十四子) 희수(姬繡)이다. 희성(姬姓)이다.
주(邾)나라는 추(鄒)나라라고도 하는데, 시조는 전욱의 후예인 안안(晏安)의 후인으로 조성(曹姓)이다.
비(費)국의 시조는 노희공(魯僖公)의 계우(季友)이다. 나중에 독립하여 소국이 된다. 희성(姬姓)이다.
전국시대에 위의 나라들에 주나라를 더해서 18개의 제후국 중에서, 백적인 한화한 중산국까지 합친다면 10개의 나라가 희성이다. 반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