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환공(齊桓公)은 왜 굶어죽은 후 67일간이나 시신이 방치되었을까?
글: 임염청추(林炎淸秋)
제환공은 춘추오패(春秋五覇)의 으뜸이다. 그는 현명한 인물을 골라서 잘 썼고, 제나라의 정치를 개혁하여 국부민강(國富民强)하게 만들었다. "구합제후(九合諸侯) 일광천하(一匡天下)"하며 정치적 업적이 휘황했다. 그는 중국역사상 명성이 대단한 중량급 인물이다. 그러나 바로 이 후인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영웅이 말년에 아주 처량하게 지냈다는 것이다. 굶어서 아사하였을 뿐아니라 시체도 침대에 67일간이나 방치되어 있었고, 아무도 안장해주지 않았다.
군웅이 할거하는 나세에 제환공이 두드러질 수 있었던 것은 관중(管仲)이 잘 보좌한 공이 크다. 두 사람은 군산관계는 천고의 미담으로 남아 있다. 그들은 서로 곁을 지키면서 41년간이나 함께 한다. 제환공의 춘추패업은 관중의 공을 무시할 수 없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관중이 쏜 화살이 제환공의 허리띠를 맞추면서이다. 두 사람의 운명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관중은 원래 제환공이 군대를 몰고와서 그의 죄를 물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친구인 포숙아(鮑叔牙)가 제환공에게 그를 추천해주어서 그는 제나라의 국상(國相)을 맞게 된다. 두 사람은 보자마자 뜻이 통했고, 바로 가까워지며 추심치복(推心置腹), 탄성이담(坦誠而談)했다. 관중은 젊고 포부가 있는 제환공을 위하여 큰 청사진을 그렸고, 그가 패업을 이룩하도록 도왔다 한명은 성숙한 정치가로서 참을 성을 가지고 젊은 군주가 성장하는 것을 도왔고, 또한 믿음을 가지고 영명하고 탁월한 패왕으로 배양했다. 만일 관포지교는 그저 보총 친구간의 친밀한 관계라고 본다면, 관중과 제환공의 천고의 만남은 더욱 숭고하고 특수한 관계일 것이다. 협력파트너에서 정치적인 동지가 되고, 명성을 천고에 남겼으며, 무수한 우수한 지사들이 이상으로 삼았으니까.
관중은 제환공을 따라 비바람을 같이 맞으며, 심혈을 다 쏟았고, 40여년후에 제나라는 이미 가장 부유하고, 가장 강성하고 가장 명성있으며 가장 영향력있는 주재자가 되어 있었다. 규구회맹(葵丘會盟)이후 제환공은 패업의 정점에 도달한다. 이 해에 제환공은 65세였고, 관중은 73세였다. 이미 둘 다 노인이 된 것이다. 규구회맹이 있은지 6년째 되는 해, 관중은 사망한다. 임종때, 그는 제환공에게 4사람을 멀리하고 중용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왜냐하면 이 네 사람은 제나라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네 사람은 모두 누구일까?
기실 이 네 사람은 모두 제환공이 총애하는 신하들이었다. 당연히, 관중이 싫어했던 인물들은 모두 아부를 잘하고 윗사람의 뜻만 받드는 간신이었을 것이다.
첫째는 역아(易牙)이다. 그는 제환공의 주방장이었다. 그는 요리를 아주 잘해서, 그가 만든 음식은 제환공의 입맛에 딱 들어맞았다. 그래서 제환공은 평상시에 그에게 많이 의지했다. 한번은 역아가 제환공에게 특별한 고기를 준비해서 먹게 했다. 제환공은 도대체 무슨 고기이기에 이렇게 맛이 좋은지 물어본다. 그러자 역아가 말하기를 이는 충성심을 나타내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을 죽여서 요리로 만들어 바친 것이라고 하였다. "살자이적군(殺子而適君)". 관중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잔인하고 인간성이 없이 자신의 아들마저도 아끼지 않는다면, 어찌 당신을 아끼겠습니다. 앞으로 그를 중용하지 마십시오."
둘째는 상지무(常之巫)이다. 관중은 이렇게 말한다: "상지무는 비록 생사를 점치고, 병을 몰아내고 재해를 물리치는데에는 능하지만, 만일 대왕이 그를 총애하고 신뢰하고, 후대하게 되면, 그는 반드시 교만해지고 발호하며 거리낌이 없어질 것입니다. 대왕께서도 운명을 믿지 마시고 상도(常道)를 고수하셔야 이런 자들에게 이용당하지 않으십니다."
셋째는 수조(竪刁)이다. 당시 견조는 제환공을 곁에서 모시기 위하여 아무런 망설임없이 거세하여 환관이 되었다. 관중은 이렇게 말한다: "한 사람이 자신의 신체와 존엄조차 불필요하다면 그가 어찌 당신을 아끼겠습니까?"
넷째는 위공자(衛公子) 계방(啓方)이었다. 관중은 말한다: "계방은 당신을 십여년 모셨습니다. 그 동안 돌아가서 자신의 부모를 뵌 적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이 너무 독하고, 공리를 너무 탐하며, 너무나 불효합니다. 그런 사람은 덕이 없습니다."
관중이 죽은 후, 제환공은 그의 건의를 따라, 이 4사람을 황궁에서 내보낸다. 그래도 나이가 들다보니 제환공의 몸도 나빠지기 시작한다. 자주 식사를 잘 못하고,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며, 기거가 불안했다. 그는 관중의 임종유언을 잊고 다시 네 사람을 불러서 자기를 모시게 한다.
관중이 살아 있을 때, 제환공을 도와 제효공(齊孝公)을 세자로 세운다. 그런데 나머지 다섯 공자는 포기하지 않고 처심적려(處心積慮)하며 자신의 일당을 이끌고 명쟁암투(明爭暗鬪)를 벌인다. 역아, 수조등 4명의 간신은 금방 매수되어 각자 공자들에게 가담하여 권력투쟁을 벌인다. 그리하여 그들은 원래의 사나운 면목을 그대로 들어내어, 낭패위간(狼狽爲奸)하고, 기상만하(欺上瞞下)하며, 위호작창(爲虎作倀)했다. 심지어 제환공을 암중으로 해하기까지 한다.
관중의 예언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제환공이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역아, 수조가 궁정으로 통하는 도로를 막고, 제환공을 높은 담장 안에 연금시킨다. 연로하고 노쇠한 제환공은 외롭게 침상 위에 누워 있으면서, 하늘을 불러도 하늘이 대답없고, 땅을 불러도 땅이 대답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굶었는지 모른다. 마음씨좋은 궁녀 하나가 몰래 음식을 가져다가 겨우 숨이 붙어있는 제환공에게 먹인다. 제환공이 묻는다: "어찌 아무도 나를 보러 오지 않는 것이냐?" 궁녀는 그에게 바깥에서 발생한 일들을 말해준다. 일대패주는 참지 못하고 통곡을 한다: "모두 내 잘못이다. 관중의 말을 듣지 않아 이런 큰 화를 불렀구나!" 그 후에 세상을 떠난다.
제환공이 죽은 후, 아무도 그를 신경쓰지 않았다. 그의 자식들은 서로 권력을 빼앗기에 바빴다. 그래서 제나라는 혼란에 빠지고, 그의 시신은 침대 위에 67일간이나 방치되어 있는다. "산사부장(身死不葬), 충류출호(蟲流出戶)" 일대패주가 생전에는 권세가 혁혁하고, 위명이 팔방에 떨쳤는데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는 이렇게 굶어죽고, 아무도 시신을 수습해주지 않았다. 확실히 슬픈 역사의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