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武丁)의 "난처(難處)"
글: 독서삼매(讀書三昧)
무정(武丁)의 지명도는 상(商)왕조의 군주들 중에서 거의 개국군주인 탕(湯)과 망국군주인 주(紂)만이 그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일 것이다. 다만, 주처럼 폭군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탕처럼 명주(明主)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무정은 바로 그런 명주가 되고자 하는 제왕이었다. 그러다보니 무정에게는 무정의 '어려운 점(難處)"이 있었다. 무정의 '난처'는 무엇일까? 먼저 그의 꿈부터 얘기해보자.
<사기.은본기>에는 이런 말이 있다: "무정이 밤의 꿈에서 성인을 얻었는데, 이름이 열(說)이다"(武丁夜夢得聖人, 名曰說)". 즉, 군주가 된 무정이 하루는 저녁에 꿈을 꾸는데, 꿈 속에서 '열'이라는 이름을 지닌 성인을 만났고, 그의 보좌를 받았다는 것이다. 꿈에서 깨어난 후, 그는 꿈에서 본 "열"의 모양을 떠올리며 모든 관리를 대조해보았으나, 한 명도 들어맞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백관들에게 각지를 다니며 찾으라고 명한다. 결국 "부험(傅險)"이라는 곳에서 "열"을 찾아낸다. 무정이 보니, 꿈에서 본 것과 똑같았다. 과연 그였던 것이다. 다시 그와 얘기를 나눠보니 정말 성인이었다. 그래서 즉시 그를 재상에 임명한다. 나중에 "열"의 보좌하에, 은상은 다시 부흥했다. 보라. 얼마나 신기한 꿈인가?
그러나, 무정이 꿈이 진짜였을까? 무정이 이 꿈을 꾸기 전에, <사기.은본기>를 보면 이런 미묘한 기록이 있다: "제무정이 즉위했고, 은을 흥성시킬 방안을 고민했다. 그러나 그를 보좌할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삼년간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정무는 총재(冢宰)에게 맡기고, 국풍(國風)을 관찰했다." 이 기록에서 기술한 '행간에 숨은 뜻'을 자세히 음미해보면, 우리가 그 가운데의 비밀을 푸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원래, 무정은 포부가 있는 제왕이었다. 그는 상왕조를 부흥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도와줄 사람을 찾지 못한다. 붉은 꽃이 아름답게 보이려면 파란 잎이 받쳐주어야 하는 법이다. 그래서, 즉위후 첫 3년간, 그는 정력을 집중하여 한 가지 일에 몰두한다. 즉 조사연구를 한 것이다. 곳곳을 다니며 관찰하고 인재를 유심히 살핀다. 확실히 "열"은 무정이 이 3년의 '관국풍'하는 동안 즉 조사연구하는 동안 발견한 인재이다. 그들 둘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꿈에서 보았다는 것은 그저 남의 이목을 가리려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무정은 왜 '꿈에 성인을 얻었다"는 신비한 장난을 친 것일까? 그냥 바로 그를 크게 기용하지 않고. 여기에도 당연히 원인은 있다. 그 원인이 바로 무정의 '어려운 점'이어다. 원래 "열'은 "서미(胥蘼)" 즉 죄를 범한 노예였던 것이다. 이런 출신의 사람에게 아무리 경천위지의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한꺼번에 그를 재상의 위치로 끌어올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면 문무백관이 받아들이겠는가? 이것이 바로 책략이 필요한 점이다. 그 책략은 바로 "몽조(夢兆)" 즉 꿈의 계시였다. 이렇게 하여 무정은 교묘하게 사람들의 미신심리를 이용하여, 순조롭게 자신이 쓰고싶은 인재인 '열'을 발탁할 수 있었다.그리고 간접적으로 "열"의 명성을 높여 주었다.
이렇게 고심을 한 것을 보면 무정의 총명함을 엿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무정의 부득이함도 엿볼 수 있다. 인재를 발견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인재를 쓰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일대명주에게도 이런 '난처'가 있는 것이다. 하늘아래 얼마나 많은 현명하고 능력있는 인재들이 매몰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