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항우)

항우가 죽은 후 항우의 부장(部將)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중은우시 2014. 12. 12. 20:38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유방이 항우를 물리친 후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이어서 그는 즉시 공신들에게 작위를 내리고 상을 내리지 않고 그가 생각하기에 더욱 중요한 한 가지 일을 처리한다. 그것은 항우의 부하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그는 원래 그를 옹호했던 몇몇 제후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리고 그 자신이 봉한 두 명의 제후왕 한신(韓信)과 팽월(彭越)을 다독인다. 이어서 그를 옹호하지 않는 임강왕(臨江王) 공위(共尉)를 토벌한다. 몇달 후 공위는 투항하나, 유방은 그를 낙양에서 처형해버린다. 장도(臧荼)는 진나라말기 반란군중 연왕(燕王) 한광(韓廣)의 부장이었다. 일지기 조나라를 지원하는 전투에 참가한 바 있고, 나중에 항우를 따라 관중에 들어간다. 항우가 분봉할 때 그는 연왕이 된다. 원래이 연왕인 한광은 요동왕(遼東王)으로 옮긴다. 나중에 장도는 한광을 공격하여 소멸시킨다. 한3년(기원전204년), 한신이 조나라를 공격하고, 사신을 통해 장도에게 서신을 보낸다. 장도는 유방에 귀순한다. 한5년(기원전202년) 십월, 장도는 연나라땅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원인은 대체로 유방이 항우의 옛 부하들을 추살하기 때문에 장도는 조만간 자신의 목이 날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반란을 일으키면 먼저 준비를 한다. 그리고 군사행동을 취할 때 다시 어떤 구호를 내건다. 그러나 장도는 그러지 않았다. 먼저 구호를 내놓아 반란을 일으킨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군사행동은 하지 않는다. 유방이 친히 군대를 이끌고 오자 장도는 금방 패배하고 장도는 생포된 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목이 잘린다. 만일 아직도 초한이 서로 다투는 중이었다면,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초한상쟁시기에 유방에게 필요한 것은 투항해오는 적장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가능한 한 항우를 상대하는 통일전선을 확대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황제가 되었고, 그는 최대한 자신에 적대적인 세력을 없애고, 유씨천하를 이룩해야 했다. 이것이 바로 그가 항우의 부하들을 배척한 근본원인이다. 당연히 항우의 부하를 배척하는 것은 정권안정을 위하여이다. 이는 대중들에게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래서 유방은 대대적으로 항우부하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당연히 이 두 사람은 엄격히 말해서 항우의 적계가 아니다. 그저 초한상쟁의 초기에 항우를 옹호했을 뿐이다. 특히 나중에 그들은 다시 유방에 투항한다. 만일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도, 공위, 장도는 아마 죽음을 면키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방은 유씨의 통일천하를 이룩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성왕(異姓王)의 존재를 허용할 수 없었다. 다만 항우의 또 다른 일부 부장들은 운명이 전혀 달랐다. 그중 4명이 비교적 유명하다. 그들의 운명은 어떠했는지 차례로 보기로 하자.

 

종리매(鍾離昧): 죽음을 피하지 못한 비정한 영웅

 

종리매는 항우 수하의 5대장수중 한 명이다. 초한대치시기에, 유방이 곤경에 처했을 때, 진평이 유방에게 항우군신의 이간계를 내놓은 바 있는데, 일지기 범증, 종리매, 용차(龍且), 주은(周殷)을 언급한 바 있다. 그중 범증은 이간과정에서 항우에게 쫓겨난다. 용차는 제나라를 공격할 때 한신에게 죽임을 당한다. 주은은 항우가 죽기 전에 유방의 계책에 걸려 한나라에 귀순한다. 단지 종리매만이 끝까지 항우가 패배하여 죽을 때까지 따랐다.

 

종리매는 구현(朐縣) 이로향(지금의 강소성 관운현) 사람이다. 원래 한신과 교분이 있었다. 항우가 죽은 후, 종리매는 한신에게 투항한다. 유방은 종리매를 아주 미워했다. 그래서 조서를 내려 한신에게 종리매를 체포하게 명한다. 한신은 그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 유방이 황제가 된 후, 진평의 건의를 받아, 거짓으로 운몽에 사냥을 하러 간다고 하고는 제후들에게 진(陳)의 땅에서 그를 배알하라고 명한다. 한신이 걱정을 하자, 어떤 사람은 종리매를 죽이고 유방을 만나보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면 유방의 의심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신은 유방이 의심하는 것을 걱정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직접 종리매를 차마 죽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이 일을 종리매에게 얘기한다. 종리매는 한신에게 말한다: "한왕이 초국을 공격하지 않은 것은 내가 너의 이 곳에 있기 때문이다. 네가 나를 붙잡아서 한왕에게 잘보이려고 한다면 오늘은 내가 죽겠지만, 내일은 네가 나를 따라 죽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자살한다. 죽기 전에 한신을 욕한다: "너는 충후한 놈이 아니다."

 

종리매는 비정한 인물이다. 유방이 항우를 이긴 후, 국세는 이미 "천하의 땅중 한나라의 땅이 아닌 곳이 없게 된다" 한신의 비호에 의지하려고 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한신이 마음 속으로 망성리는 것을 보고는 결연히 자결을 택한다. 이러한 점은 그를 비정영웅으로 돋보이게 한다. 군인으로서 패군지장으로서, 자살도 일종의 용기이다. 최소한 그는 적군의 치욕은 당하지 않았다. 이 때는 이미 초한상쟁시기가 아니었다. 초한상쟁때는 유방이 온갖 방법으로 투항을 받으려 했지만, 이때의 유방은 온작 방법을 써서 자신의 편이 아닌 사람을 제거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정공(丁公): 유방에게 '역신적자(逆臣賊子)'로 몰려 참수당하다.

 

정공과 비교하면 종리매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왜냐하면 그는 어쨌든 유방을 골치아프게 만들고, 유방이 겁먹게 만들었으며, 그 자신이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사람들의 감탄과 존경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공은 그렇게 운이 좋지 못했다. 그는 일찌기 유방을 풀어준 바 있다. 유방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다. 그는 아마도 유방이 그에게 보답해줄 것이라는 환상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는 유방에게 죽임을 당한다. 유방이 부하들에게 교훈을 내리는 차원에서.

 

정공의 이름은 정고(丁固)이다. 초나라의 대장 계포(季布)의 외삼촌이다. 그는 항우 수하의 장군이다. 항우가 제나라를 공격할 때, 유방은 그 기회를 틈타 초나라의 도성인 팽성을 공격했다. 항우는 군대를 되돌려 공격했고, 유방은 대패하여 황망하게 도망친다. 정공이 병력을 이끌고 추격했고, 유방이 생포되기 직전에, 유방은 급히 고개를 돌려 정공에게 말한다: "우리는 모두 사나이들이다. 굳이 이렇게 서로를 어렵게 만들 필요가 있느냐?" 정공은 더 이상 유방을 추격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방은 도망칠 수있었다. 유방이 황제에 오른 후, 정공은 스스로 유방에게 은혜를 베푼 적이 있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유방에게로 찾아간다. 유방은 그러나 이 정공을 군영으로 데리고 가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참수한다. 그리고 장병들에게 말한다: "이 자는 항우에게 불충했다. 그래서 항우가 오늘 실패한 것이다." 그리고 장병들에게 모든 사람은 후대까지 포함하여 정공처럼 자신의 군주를 배신하지 말라고 말한다.

 

분명히 구명은인인데, 유방은 상을 주지 않으면 될 것을 왜 굳이 목까지 베었던 것일까. 똑같이 그를 위기에서 구해주었는데, 마찬가지로 그를 구해준 항백은 후작의 작위를 받았다. 양자간에는 왜 이렇게 차이가 클까? 정공의 경우만 살펴보면, 유방의 애원이 효과를 발휘하기는 했지만, 유방으로서는 치욕으로 느꼈다. 구명지은으로 보자면 그에게 한 왕국을 내려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유방의 공신은 너무 많았다. 천하에 나눠줄 땅이 어찌 그리 많겠는가. 봉토를 내리지 못하는 것은 보답을 하지 못하는 것이니 그럴 바에는 아예 죽여버리는 것이 낫다. 유방의 입장에서 보자면, 황제는 이미 되었지만, 천하의 불안정요소는 아직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 정공을 죽이는 것은 일찌기 항우진영에 있던 사람들에게 하나의 경고이다. 헛된 생각을 품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부하들에게는 일종의 암시이다. 두 마음을 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유방이야말로 천하의 유일한 주군이라는 것이다. 유방이 그를 죽인 것은 그 자신에게도 하나의 암시이다. 일찌기 자신이 낭패한 지경에 처했던 것을 이제는 아무도 알지 못하게 된 것이니, 마음은 최소한 편해진 것이다. 이처럼 스스로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심리는 황제라고 하여 피할 수가 없다. 오히려 보통사람보다 더욱 심한 것이다.

 

아쉽게도 정공은 유방이 이미 원래의 유방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다. 자신의 이전의 행위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상을 달라고 가다니, 이는 자신의 목을 상대방의 칼날 아래 밀어넣은 것이나 같다.

 

항백(項伯): 조카를 어렵게 만들었지만 항씨가족은 구해냈다.

 

항백은 정공과 처지가 달랐다. 이유는 그가 유방에 한 은정은 일종의 도움이고, 유방이 위험을 벗어나는 여러 조건중 하나였다. 비록 가장 중요하기는 했지만, 유일한 것은 아니었다.

 

한원년(기원전202년), 유방의 군대는 관중으로 들어간다. 진나라의 자영은 성문을 열고 투항한다. 진왕조는 철저히 멸망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유방에게 관중왕에 오르라고 권한다. 유방은 일시적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 말에 따른다. 항우가 함곡관으로 오기 전에 관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있는 것을 보고는 바로 군사를 배치하여 함곡관을 공격하고 유방을 없앨 준비를 한다.

 

항백은 항우의 숙부이다. 당시 초국의 좌윤(左尹, 부승상에 해당함)이었다. 그는 일찌기 사람을 죽인 바 있는데, 장량이 방법을 강구해서 그가 죄를 벗어나게 해준다. 그래서 장량과는 사이가 좋았다. 이때 장량은 유방의 군영에 있었다. 장량이 연루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는 밤을 새워 유방의 군영으로 가서 장량에게 말한다. 그에게 자신을 따라 빨리 떠나자고. 장량은 유방에게 인사를 해야한다는 이유를 대고 사정을 모조리 유방에게 고한다. 유방은 자신의 역량이 항우에 대적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여기고, 장량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본다. 장량의 건의와 설득하에 유방은 항백을 만나서 자신은 항우와 대적할 생각이 없다고 태도를 표명한다. 유방은 항백을 잘 설득했고, 두 사람은 서로 자녀를 혼인시켜 사돈이 된다. 항백은 유방에게 다음날 아침 일찍 항우의 군영으로 가서 항우가 군대에 명령을 발하기 전에 항우에게 사죄하라고 요구한다. 항백이 한나라군영을 떠나 항우의 곁으로 가서 유방의 말을 하나하나 항우에게 얘기한다. 그리고 항우에게 유방을 죽이지 말라고 설득한다. 그후에 그 유명한 '홍문연'이 일어난다. 연회에서 범증은 기회를 잡아 유방을 죽이려 하지만, 항우는 이미 항백에게 설득을 당해서 항우가 아무런 지시를 하지 않는다. 범증은 스스로 나서서 항장을 불러와 검무를 춘다고 하고서 유방을 찌르려 한다. 항백은 항장의 생각을 읽고는 자신의 몸으로 유방을 막는다. 그리하여 항장은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나중에 장량과 번쾌의 엄호하에 유방은 초나라군영에서 도망쳐 자신의 군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제후를 분봉하는 과정에서, 항우는 약속대로 유방을 관중왕에 봉해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에게 한왕이라는 명호를 준다.

 

항백과 정공의 다른 점이라면, 정공이 마주한 것은 완전히 적군의 수령이었는데 그런 사람을 보내준 것이다.이는 완전히 자신의 진영 전체애 대한 불충이다. 항백은 달랐다. 그는 그저 유방에게 신복(臣服)을 요구했고, 모두 '같은 편'이었다. 당시에 유방을 풀어주기는 하였지만, 어느 정도 항씨집단 전체를 고려한 요소가 있다. 알아야 할 것은 항우는 17명의 제후왕을 봉했는데, 만일 유방을 죽였다면 다른 제후들이 어떻게 생각했을 것인가. 천하가 바로 혼란에 빠지지 않았겠는가. 나중에 진전된 상황을 보더라도, 항우에 처음 반기를 든 것은 유방이 아니라 제나라의 전씨(田氏)였다. 그래서 항백은 유방의 입장에서 말해준 것이다. 사의(私義)도 있지만, 공리(公理)도 있었다. 하물며, 당시 유방이 원한 것은 그저 왕이었고 항씨천하를 내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설사 유방이 항백에게 무슨 작위를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유방이 항백에게 무슨 죄를 뒤집어 씌울 수 있었을까. 유방이 항우에 반란을 일으킨 핑계중 하나는 바로 항우가 초회왕을 죽였다는 것이다. 유방의 한왕은 바로 항우가 봉한 것이고, 초기에는 항량의 부하였다. 항백에게 작위를 내린 것은 항백에 대한 보답이면서 자신의 과거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다.

 

항우가 죽은 후, 유방은 대거 항우의 부하를 추살한다. 다만 항씨가족 사람들은 주살당하지 않는다. 그들은 유씨성을 하사받는다. 항백도 사양후(射陽侯)에 봉해지고 그의 봉국은 오늘날의 보응현 동부의 사양호 근처이다.

 

계포(季布): 강강(剛强)이 유순(柔順)으로 바뀌며 마침내 사면받다.

 

계포는 종리매와 마찬가지로 초나라 항우의 오대장수중 한 명이다. 그는 초한상쟁시기에 유방을 여러번 괴롭혔다. 항우가 패배하고 피살되고, 유방은 황제가 된다. 유방은 천금의 현상금을 걸고 계포를 분잡잡게 한다. 이를 보면 그가 얼마나 가치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유방은 보조적인 조치도 취한다. 누구든지 계포를 숨겨주면 그의 삼족을 멸하겠다고 한 것이다.

 

계포는 먼저 복양의 주씨성의 사람의 집에 숨는다. 나중에 다시 노비로 변장하고 노(魯) 땅의 주씨성의 사람의 집에 팔려간다. 주씨는 협의를 행하는 사람이다. 그는 계포를 숨겨준 후 즉시 낙양으로 간다. 여음후 하후영을 만난다. 주씨는 하후영의 집에서 며칠을 머물다가 술을 마시는 기회에 이렇게 말한다: "계포가 무슨 큰 죄를 지었는가. 황상이 왜 그를 이렇게 급하게 잡으려 하는가." 하후영은 계포가 능력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주씨는 당시 초한상쟁때 신하로서 각자 자신의 주인을 모시는 것은 각자의 본분인데, 항우의 부하라고 모조리 죽여야겠느냐. 현재 황상은 막 천하를 얻었는데 개인의 원한으로 한 사람을 추포한다면 이것은 천하에 자신의 마음이 좁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계포는 현명하고 능력이 있는데 그가 만일 북방의 흉노에 도망치거나, 아니면 남방의 백월에 도망치면 이는 적국을 도와주는 행위가 아닌가. 그후에 다시 하후영에게 말한다: 당신은 왜 황상에게 그러한 이해관계를 설명하지 않는가? 하후영은 주씨가 대협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계포가 그의 집에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그의 요청을 받아준다. 기회를 잡아서 과연 주씨의 뜻을 유방에게 말했다. 유방은 정말 계포를 사면해준다. 나중에 유방은 계포를 만난다. 계포가 죄를 청하고 신하로 따르겠다고 하자 유방은 그에게 낭중의 자리를 준다. 한문제때 계포는 하동군수가 된다.

 

같은 항우의 대장인데, 계포와 종리매의 결말은 왜 이렇게 달랐을까? 관건은 바로 종리매는 유방이 가장 꺼려하는 방식으로 삶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제후왕에 의탁했다; 그러나 계포는 하층노선을 걷는다. 유방이 그가 의탁한 사람은 걱정하지 않았다. 계포가 신하로 복종하겠다고 표시하자 그에게 관직을 준다. 이렇게 하여 유방은 좋은 명성까지 얻는다.

 

항우가 죽은 후, 그의 적계부장은 빙화양중천(氷火兩重天)이다. 이는 한편으로 유방이라는 사람이 일처리하는 것은 완전히 자신의 호오에 의존하여 마음대로 했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군주시대에는 근본적으로 무슨 제도적 기준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