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의 죽음: 오강정장의 말 때문인가?
글: 노위병(路衛兵)
항우의 죽음은 순전히 우연한 일때문이다.
항우는 마지막 28기를 데리고, 유방의 추격병과 싸우면서, 마지막에 오강(烏江)의 가(지금의 안휘성 화현 경내)에까지 왔다. 강변에 배가 있었다. 선부(船夫)는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보고한다. 항우가 다스리는 오강정장(烏江亭長)인데, 일찌감치 강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항우를 태워서 강을 건너기 위하여. 이것은 원래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의 말 때문에 항우는 죽음의 길을 가게 된다. 우리는 그가 어떻게 말했는지 살펴보자.
오강정장은 항우에게 말한다: "강동은 땅이 비록 적지만, 방원 천리는 된다. 백성도 수십만에 이른다. 충분히 일방의 왕이 될만하다. 대왕께서는 급히 건너기 바랍니다(急渡). 지금 이곳에는 저의 배 한 척만이 남았으니, 한나라군사가 추격해오더라도 강을 건널 방법이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계획이다. 아주 완벽한 계획이다. 항우의 시급한 도피문제도 해결할 뿐아니라, 항우의 금후 갈 길도 어레인지 했다. 주도면밀한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항우는 이 방안에 대하여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그는 웃으며 오강정장에게 말한다: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데, 내가 강을 건너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당초 내가 강동의 팔천자제를 데리고 강을 건너 서쪽으로 왔는데, 이제 혼자서 돌아가다니 강동의 부형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서 왕으로 삼아준다고 하더라도,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도 나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겠는가?"
이 결과는 예상을 벗어났다. 그의 이런 탄식은 아주 돌연했다. 왜냐하면 항우는 원래 강을 건너려 했었기 때문이다. <사기>에는 분명히 적고 있다: "항우는 오강을 건너가려고 했다." 그리고 사실상, 항우가 강을 건널 생각이 없었다면, 그가 굳이 싸워가면서 오강변으로 갈 이유가 없었지 않겠는가? 이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항우는 왜 돌연 생각을 바꾸었을까? 원인은 오강정장의 이 말에 있다. 그는 항우의 아픈 곳을 건드린 것이다.
첫째, 그는 항우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강동이 비록 적지만, 지방은 천리에 이르고, 무리는 수십만에 이르니 왕이 될만하다"인가. 이는 분명히 항우의 신분을 낮추는 것이다. 그리고 항우로 하여금 현재 자신의 낭패한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항우가 어떤 사람인가. 불가일세의 서초패왕이다. 제후를 호령하고, 아무도 감히 그의 명을 거역하지 못했었다. 수십만명을 다스리는 지방왕으로 만족할 수 있겠는가?
둘째, 그는 항우로 하여금 수치를 느끼게 만들었다. 항우는 호기당당하게 강동을 떠났다. 그것은 천하를 얻기 위함이었다. 옥야천리의 관중을 수도로 삼을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굳이 팽성으로 돌아왔었다. 그것은 바로 고향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어서이다. 지금 혼자 남아서 강동으로 돌아가면, 체면은 어디로 가는가. 이런 심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마치 큰 뜻을 세운 열정적인 자식이 고향을 떠나면서 부모에게 당당하게 내가 돌아와서 반드시 부모님을 잘 모시겠다고 장담을 했는데, 이제 아무 것도 없이 맨몸으로 돌아가는 꼴이다. 고향집의 문을 들어갈 수 있겠는가?
셋째, 그는 항우의 체면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체면이 없게 만들었다는 것은 항우의 담량을 저평가한 것이다. 정장이 어떻게 말했는지 보자. "대왕께서는 급히 건너십시오. 지금은 신의 배 한 척만 있습니다. 한나라군대가 추적해오더라도 건널 방법이 없습니다." 이 말 자체는 약간 모순된다. 배가 있고 한나라군대가 쫓아와도 건널 수가 없는데, 왜 항우에게 "급히 건너라"고 한단 말인가.
"급히 건넌다"는 것은 당연히 해야할 일이다. 어쨌든 연극이 아니고 조금이라도 일찍 건너면 조금이라도 일찍 안전해진다. 그러나 그렇게 말을 해서는 안되었다. 태산이 무너져도 얼굴색을 변하지 말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그것이 바로 제왕의 본색이다. 나를 무슨 산적으로 아는가. 항우는 항상 패기를 중시했다. 지금까지 누군가 그를 두려워할 지언정, 그가 다른 사람을 두려워한 적은 없다. 이렇게 말을 하면 그것은 바로 항우의 체면을 땅에 떨어뜨리는 일이다. 설마 내가 죽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보이는가. 나는 역발산 기개세의 영웅이다. 이렇게 낭패하게 도망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설마 나 항우가 그들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만들어야 겠는가. 기껏해야 죽는 것인데, 죽는 것이 멍청하게 사는 것보다는 낫다. 보라. 항우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바로 이런 심리상태로 항우는 그런 말을 한 것이다. 그런 호언장담을 한 것이다. 자신이 패배한 것은 체면이 상한다고 생각했고, 강동부로를 다시 볼 면목이 없다고 여겼다. 그리고 오강정장의 말은 항우를 자극했다. 결국 항우의 자존심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가 만일 변장을 하고 성을 빠져나가서 구원병을 요청하거나, 기신과 일군의 여인네들이 그들 대신하여 적을 막게 한다든지 하는 유방과 같았더라면 절대로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급히 강을 건너버리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이 일에는 기실 두 가지 의문점이 있다.
의문점의 하나: 사람. 사람은 자연히 오강정장이다. 이것은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이 오강정장이 도대체 어디서 나타났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항우가 이때 이곳에서 강을 건너려할 줄 알았느냐는 것이다. 그의 소식은 어찌하여 이렇게 영통한가. 일찌감치 정확한 장소에 와서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의문점의 둘: 배. 바로 오강정장이 젓던 배이다. 젓는 배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왜 그의 배 한척이냐는 것이다. 우리는 첫번째 의문을 배제하고 이 정장이 다른 곳에서 소식을 들었다 치자. 그래서 항우를 구하려 배를 저어왔다고 치자. 그렇다면 왜 더 많은 배를 준비하지 않았는가? 그때의 배는 그저 노로 젓는 어선이어서 몇 명을 태울 수도 없었다. 항우의 부하들은 어떻게 강을 건너란 말인가. 항우 본인에 그의 전마만 하더라도 배는 다 태울 수 없을 것이다. 태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저어갈 수 없었을지 모른다. 설마 항우가 자신과 생사를 같이한 형제들을 버려두고 혼자서 배를 타고 도망친단 말인가? 그것은 항우의 사람됨을 너무나 무시한 것이다. 일찌기 이곳에서 기다렸다면, 당연히 이 점도 생각했어야 했다. 정장으로서, 몇 척의 배를 더 구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이들 문제에 대하여 <사기>에서는 상세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말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다른 정사나 야사에도 상세히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중요하지 않다. 우리도 신경쓸 필요가 없다. 사실상이건 감정적이건 우리는 믿을 수 있다: 오강정장은 호의에서 이런 일을 했다.
그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마도 다른 할 말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분위기를 너무 긴장되고 난감하게 만들지 않으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항우에게 아부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몇 마디 말을 해야 하니까. 결론적으로 그는 항우를 위안하려 했다. 그로 하여금 일시의 실패로 자신감을 잃지 말기를 바랐다. 강동으로 돌아가서 새로 시작해서 재기하기를 바란 것이다. 그는 모든 문제를 고려했다. 유일하게 고려하지 못한 것은 바로 항우의 자존심이다. 이것은 아마 우리가 평소에 "좋은 마음으로 했지만 일을 망쳤다"는 것이 될 것이다.
좋은 마음으로 일을 망치는 것은 생활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영도를 겉으로는 승진시키며 속으로는 내치는 경우, 큰 지방에서 작은 지방으로 전근시키며, 직무를 조정하거나 직무를 조정하지 않으면 마음 속으로 우울해질 것이다. 친구로서 좋은 마음으로 위로해줄 수 있다. 가서 만일 이제 일을 좀 적게 해라. 이전처럼 피곤하게 일을 너무 많이 하지 말라는 등의 말을 하면 그는 마음 속으로 분명 네가 그를 비웃는다고 여길 것이다.
아쉽게도 오강정장은 경험이 부족했다. 항우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 그가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공연히 항우를 위로한다는 것이 항우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다. 원래는 말을 달려 도망치고 적의 추격을 피할 생각만 하느라고 머리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기 힘들었는데, 오강정장의 말을 들으면서 마음 속에 감춰져 있던 것이 터진 것이다. 결국 호방함이 격발되어 죽음을 별 것 아니라고 여기게 만들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