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진)

형가자진왕(荊軻刺秦王)의 막후진상

중은우시 2013. 5. 18. 21:28

글: 문재봉(文裁縫) 

 

형가와 진무양(秦舞陽)은 함양(咸陽)에 도착한 후, 형가가 먼저 중서자(中庶子, 군왕의 신변호위) 몽가(蒙嘉)를 찾아가서 그에게 거액의 돈을 뇌물로 주고 그에게 진왕에게 그들을 대신하여 아뢰달라고 부탁한다.

 

몽가의 신분은 알 수가 없다. 한가지 주장은 그가 명장 몽오(蒙驁)의 동생이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한가지 주장은 그가 몽무(蒙武)의 동생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선 그의 신분이 뭔지는 따지지 말고 한 가지만 기억하자. 그는 몽씨일족의 중요구성원이라는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만일 몽가가 없었다면 미래의 '후보진국전신' 이신도 없었을 것이고, 더더구나 미래 '중화제일용사' 몽염도 없었을 것이다. 세 사람의 어지러운 관계를 생각하니 뭐부터 얘기해야할지 모르겠다.

 

형가의 뇌물을 받은 몽가는 아주 기뻤다. 다음날 아침조회때, 그는 진왕 영정에게 보고한다. "진대왕께 아룁니다. 대왕의 위명은 천하무쌍입니다. 우리나라가 조나라를 함락시킨 후, 연나라의 국군은 깜짝 놀라서 간이 떨어졌습니다. 그는 진나라에 투항하기를 원한하고 표시하며, 특별히 사신을 파견하여 번어기(樊於期)의 수급과 독항지도(督亢地圖, 독항은 燕의 지명)를 보내와서 성의를 표시하고자 합니다."

 

번어기의 수급? 독항지도? 정말인가. 이 두 가지는 꿈에도 갖고 싶었던 것이다.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연(燕)은 구석진 곳에 있고, 중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진나라는 연나라의 지리에 대하여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독항지도를 얻는다는 것은 연나라가 진나라에 투항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왕 영정은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통일중국의 대로에서 큰 발걸음을 한 번 더 내딛을 수 있는 것이다.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번어기는 마침내 '돌아왔다' 요 몇년 과인은 너를 죽이고 싶었다.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었구나...

 

기분이 좋아진 진왕 영정은 즉시 명을 내린다. 길일을 택하여 과인이 정장을 입고, 가장 융중한 '구빈례(九賓禮)'로 연나라 사신을 맞이하겠다.

 

기원전227년의 어느 날,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 영빈대전(迎賓大典)이 정식으로 시작된다.

 

이날, 아홉명의 영빈사의로부터 안내를 받아, 형가는 손에 번어기의 수급이 든 상자를 들고, 조수인 진무양은 독항지도를 들고 두 사람은 이 웅장하고 화려한 함양전(咸陽殿)으로 들어선다.

 

바로 이때 아무런 사전징조도 없이, 이 '암살행동조'에 위기가 나타난다. 변고는 바로 그 12살에 사람을 죽여보았고, 전체 연나라에서 아무도 감히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는 진무양에게서 나타난다.

 

이 웅대하고 화려한 궁전과, 경비가 삼엄한 무사들을 보고 그리고 기우가 헌앙하고, 용모는 별로이지만 패기를 뿜어내는 진왕을 보자 진무양의 시정무뢰한의 본성이 드러난다. 이렇게 당당하고 웅장한 곳에 가본 적이 없는 그는 공포를 느낀 것이다. 이런 심리상태하에서, 진무양의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용기는 붕괴되어 버린다. 그는 계속하여 몸을 부들부들 떤다.

 

돌연 연나라사신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하고,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보자 함양전에 있던 여러 신하들은 모두 이상하게 여긴다. 이 자는 도대체 어찌된 것인가? 뭘 잘못 먹었나? 아니면 사고라도 난 것인가? 일시에 대전의 군신이 서로 귓속말을 하느라 아주 소란스러워진다.

 

형가는 이 중요한 순간에 문제가 생기고, 일을 지삭하려하자 나약해진 진무양을 보고는 어찌해야할지를 몰랐다. 그는 그저 웃으면서 진왕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북방 오랑캐의 땅에서 온 무리쟁이가 대왕이 위풍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위엄있고 장관인 장면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왕을 놀라게 해드렸습니다. 대왕께서는 그를 용서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이번에 사신으로 온 일을 원만히 완수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형가의 설명을 듣고 영정은 온몸을 떨며, 계속 움츠리는 진무양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태연자약하고 불비불항한 형가를 보았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하고는 말했다. "형가, 네가 진무양의 지도를 가져와라."

 

이때의 진왕 영정은 몰랐다. 아무런 목적도 없고,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도 할 수 없는 이 말이 중국의 역사를 바꾸고, 그 자신의 목숨을 건지게 해주었을 줄은.

 

이것은 아마도 암암리에 하늘이 정한 것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왕 영정이 운명이다.

 

진왕이 그렇게 말하자, 형가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들고 있던 수급을 내려놓고, 진무양의 독항지도를 건네받아, 천천히 보좌를 향해 나아갔다. 이제 진왕과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간 것이다.

 

이때의 진왕 영정은 아주 흥분했다. 그래서 형가의 표정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지도만 들여다 보았고, 형가의 설명을 들었다.

 

이 지도는 둘둘 말려있는 것이었다. 형가가 하나하나 펴면서 보여주었다. 지도가 완전히 펼쳐지자 권축의 말미에 있는 비수가 드러났다.

 

"도궁비견(圖窮匕見)"의 그 순간, 형가는 먼저 움직였다. 왼손으로 진왕의 소매를 잡고, 오른 손으로 비수를 잡았다.이때의 진왕도 반응이 빨랐다. 소매를 붙잡힌 후, 진왕 영정은 본능적으로 몸부림쳤다. 힘을 너무 강하게 써서인지, 아니면 옷감이 너무 정교해서인지, 영정의 의복은 어깨부분부터 잘려나갔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진왕 영정은 형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형가는 진왕이 도망치는 것을 보자, 즉시 뒤를 쫓았다. 앞에는 진왕이 도망치고, 뒤에는 자객이 쫓는다. 워엄이 당당한 함양전은 졸지에 체육관으로 바뀐다. 진왕과 형가의 백미터 달리기경주가 시작된 것이다.

 

이런 방면은 진나라대신들이 본 적이 없다. 혹은 감히 볼 수가 없다. 황란의 와중에 모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진나라의 율법은 삼엄하뎌, 대전의 대신들은 병기를 휴대할 수 없었고, 대전아래의 무사는 명려이 없으면 병기를 들고 대전으로 올라올 수 없었다. 이들 대신들은 방법이 없었다. 그저 호흡을 멈추고 계속 이 백미터경주의 진행을 지켜보는 수밖에.

 

대신은 무기가 없었지만, 진왕은 가지고 있었다. 놀란 와중에 진왕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패검을 뽑으려 했다. 그러나 이 보검은 너무 길었다. 160센티미터를 넘는 보검은 평소에도 봅으려면 힘이 들었다. 그래서 이런 와중에서도 진왕영정은 칼을 뽑을 수가 없었다.

 

진왕을 엄호하기 위하여, 대신들은 적수공권으로 형가를 막아야 했다. 무기가 없는 그들은, 자연히 형가의 적수가 아니었다. 이런 위급한 시기에 진왕의 진료를 책임지는 어의 하무차(夏無且)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약주머니를 형가에게 던진다.

 

진왕을 쫓아가느라 정신없던 형가는 돌연 어떤 물건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자, 즉시 본능적으로 그것을 피한다. 비록 약주머니가 형가를 맞히지는 못했지만, 피하느라고 진왕 영저에게 도망칠 몇초의 여유를 주게 되었다.

 

바로 이때, 이들 대신들은 문제의 핵심을 보았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외쳤다. "왕부검(王負劍), 왕부검(王負劍)" 그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는 것은 마치 응원단과 같았다. 어쨌든 운동선수도 있고, 응원단도 있다. 당당한 진나라의 함양전은 철저히 '체육관'으로 바뀐 것이다.

 

소위 '왕부검'은 진왕 영정이 보검을 등 뒤로 돌리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검집이 위로 가고, 검손잡이가 아래로 가니, 검을 뽑을 공간이 충분해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검의 무게와 지구의 만유인력으로 보검을 뽑는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왕부검'후 진왕 영정은 순조롭게 보검을 뽑을 수 있었다.

 

진왕 영정이 보검을 뽑아들자 형세는 완전히 역전된다. 진왕의 이 보검은 "녹로대보검(轆轤大寶劍)"이라는 것으로 원래는 대장 백기(白起)의 보검이었다. 백기가 죽은 후, 그것은 진씨일족에게 넘어갔고 역대 진왕의 패검이 된다.

 

당연히,이 검은 제왕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이 검은 쇠도 무우자르듯이 자를 수 있었고, 날카롭기 그지없으며, 가격도 놀랄 정도였다. '만금'에 팔 수 있을 정도이다. 이 사건후 이 보검이 몸을 지킨 공로를 생각하여 후세사관들은 이 검을 '건곤우주봉(乾坤宇宙鋒)'이라고 부른다.

 

이 '건곤우주봉'의 위력은 형가가 들고 있던 작은 공방에서 만든 '서부인비수(徐夫人匕首)'가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몇번 부닥친 후, 진왕영정은 형가의 왼쪽 다리를 잘라버린다.

 

한쪽 다리가 잘린 형가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반격할 힘이 없는 그는 할 수 없이 도박을 걸게 된다. 형가는 힘을 다하여 비수를 진왕에게 던진다. 그러나 거리가 너무 먼 관계로, 진왕은 쉽게 피할 수 있었따. 비수는 진왕의 뒤에 있는 기둥에 맞는다. 이때의 진왕은 형가에게 또 다른 비밀무기가 있을까 우려하여, 즉시 앞으로 달려나가 죽어라 형가에게 8번이나 검을 휘두르고 그만둔다.

 

이때의 형가는 온 몸이 피로 뒤덮이고, 아무런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곁에 있는 기둥에 의지하여, 두 다리를 벌리고, 이런 사람을 모욕하는 방식으로 진왕에게 욕을 해댄다: "네가 아직도 살아있는 것은 내가 너를 산 채로 붙잡고자 해서이다. 그래서 너에게 맹약을 맺게 하여 연나라 태자에게 보답하기 위함이었다..."

 

형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신을 차린 전전무사들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이미 중상을 입은 형가를 죽여버린다. 그리고 아래 남아서 부들부들 떨고 있던 진무양도 죽인다.

 

기원전227년, 중국의 테러리스트 형가는 진나라 함양전에서 목숨을 거둔다. 향년은 미상이다.

 

역사상 유명한 '형가자진왕'은 형가의 죽음, 진왕의 도생으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