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는 왜 죽음을 선택하고 강동으로 건너가지 않았는가?
글: 강사황(姜四晃)
생당작인걸(生當作人傑) 살아서는 인걸이더니
사역위귀웅(死亦爲鬼雄) 죽어서도 귀웅이네
지금사황후(至今思項羽) 지금 항우가 강동으로
불긍과강동(不肯過江東) 건너지 않으려 했던 것을 생각하네
이것은 송나라때의 재녀 이청조(李淸照)가 항우를 읊은 오언절구이다. 역대이래 시가중에서 서초패왕의 영웅기개와 비장한 인생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짧은 4구의 20자로, 항우라는 인물이 평생동안 추구한 가장 본질적인 것을 정확하게 개괄했다. 살아서는 인중호걸이고, 죽어서도 귀중영웅이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구차하게 살아가는 것은 사대대장부가 할 짓이 못된다.
이청조도 여중호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서초패왕과는 뜻이 통했을 것이다. 그녀는 한마디로 항우리는 영웅호한의 인생신조와 이상경지를 갈파했다. 차라리 옥쇄(玉碎)할 지언정 와전(瓦全)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자면, 항우는 해하에서 몰려서 사면초가에 빠졌을 때, 비분강대하여 노래를 부르고, 오강의 가에서는 의연하게 삶을 버리고 검을 들어 자결을 했다. 이는 영웅의 말로이거나 완패한 것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그의 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기세와 장려한 인생의 대미를 장식하는 클라이막스이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항우가 죽을지언정 강동을 건너려하지 않은 혈기넘치는 행동은 실로 사람들의 찬탄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초한상쟁이후, 그의 대영웅이미지는 영원히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 새겨지게 되었다.
아름답고 이상적인 것을 사람들은 왕왕 약속이나 한듯이 조심스럽게 보호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더구나 차마 건드리지 못한다. 부서질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심지어 사소한 의문마저도 마음 속에 품고 있는 화려하고 빛나는 광환, 영웅적인 기개를 깨트릴까봐 우려한다. 그가 대의늠름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은 찬탄해야 한다. 그러나 항우가 강동으로 굳이 건너가지 않으려 한 것은 지나치게 과장할 필요가 없다.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분석하면 된다. 자고이래로 중국인들은 스스로 자신의 정원에 만들어놓은 신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후배들이 미처 다 제사를 지내주지도 못할 정도이다.
항우는 24세때 숙부인 항량을 따라 진나라에 항거하는 의병에 가담한다. 처음에 숙부의 지시로 항우는 회계군수를 죽여버린다. 그리고 현지의 관인을 빼앗는다. 그후 숙부를 도와 오중에서 명령을 발하고 금방 '정병팔천'을 모은다. 이렇게 하여 장강이남의 상하이, 장쑤남부 및 저장 자흥일대를 장악한다. 이 지구는 바로 항우의 머리속에 있는 "강동(江東)"의 기본윤곽이다. 그의 감정저울에서 이 토지는 아주 특수한 의미를 지닌다. 이곳은 그가 숙부 항량을 따라 관청의 추적을 피하고, 죄를 지고 도망치다가 정착한 곳이다. 그들 숙질이 여러 사람들에게 지도자로 떠받들어진 영예스러운 곳이기도 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서초패왕이 나중에 휘황한 패업을 이룬 발상지이기도 하다. 확실히 항우는 이 곳을 고향으로 여겼다. 그의 조적은 장강북안의 하상(下相, 지금의 장쑤 쑤첸)이지만, 그가 풍운을 질타하고 명성을 떨친 것과는 관계가 그리 크지 않다. 그래서 그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젊었을 때 큰 뜻을 품었던 항우는 진시황이 순유하는 난여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부지불식간에 "그의 자리를 내가 대체하여 차지하겠다"라는 호언장담을 내뱉은 곳이다. 바로 이곳에서, 그는 경천동지의 위업을 해낸다면, 잠재의식속에서 그의 타향을 고향을 삼은 오의 땅의 어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이곳 즉 강동에 있는 관중을 아주 중시했다.
<사기.항우본기>를 보자. "수일을 머무러다가, 항우는 병력을 이끌고 함양을 도살한다. 진왕 자영을 죽이고, 진나라 궁실을 불태운다. 불은 석달이 지나도록 꺼지지 않았다. 그의 재물과 보물 부녀를 거두어 동쪽으로 간다. 사람들은 혹은 이렇게 말한다: '관중은 산과 강으로 사방이 막혀 있으며, 땅이 비옥하여, 도읍으로 삼아 패업을 이룰만하다' 항왕은 진나라 궁실이 모두 불에타서 폐허가 되었고, 마음 속으로 동쪽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이렇게 말한다: '부귀하고서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비단옷을 입고 밤에 돌아다니면, 누가 알아주느냐.' 항우는 함양에서 도살을 실시하고 살인약탈을 하고 금은보화와 미녀를 데리고 굳이 동쪽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이때 항우는 더 생각도 하지 않고 강동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강동으로 돌아가려 했다. 왜 그랬을까? 왜냐하면 그는 지금 성공을 하였고, 천하제후의 최고어른인 서초패왕이 되었으며, 미녀가 구름처럼 많고, 금은보화가 무수히 많았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진시황의 위풍과 다를 바 없었다. 당시 한 사람이 그에게 진언한다: 관중은 산과 강으로 막혀 있어 사방이 막혔고, 토지는 비옥하며 물산은 풍부하다 이곳을 도읍으로 삼아 패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항우는 웃는다. 이는 조롱하는 비웃음이다. 그는 말한다. 사람이 부귀해지고서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을 입고 밤에 돌아다니는 것과 같다 누가 알아주겠는가. 이제 성공했으니 금의환향해야 한다. 성공했으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항우의 잠재의식속에 있던 농후한 허영심리이다. 지금 우리의 동포들 가운데 이런 심리는 뿌리깊게 박혀 있다.
보잘것없던 젊은이에서 천하를 호령하는 패왕이 되었고 수중에 천군만마를 거느리고, 만리강산을 차지하여 마침내 사람 위의 사람이 되었다. 항우가 급히 강동으로 돌아가려던 유일한 이유가 이것이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그가 고가과인(孤家寡人)이 되었을 때, 낭패한 처지가 되었을 때, 죽어도 강동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사실도 바로 그러했다. 우리는 다시 오강의 가까지 도망쳐오고 깨끗하게 패배해버린 항우의 심리와 선택을 살펴보자. <사기.항우본기>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오강정장이 배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다. 항우에게 말한다: '강동은 비록 땅이 작으나 지방이 천리이고 사람이 수십만명이다. 왕이 되기에는 충분하다. 대왕께서는 빠릴 건너십시오. 지금 신만이 배를 가지고 있으니, 한군이 도착하더라도 건널 배가 없을 것입니다. 항우는 웃으며 말한다. '하늘이 나를 망쳤는데, 내가 어찌 건너겠는가? 항적(항우)과 강동자제 팔천명이 강을 건너 서쪽으로 온 이후 한 명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했다. 설사 강동의 부형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왕으로 삼아준다고 해도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보겠는가? 설사 그들이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항적이 홀로 마음 속으로 부끄러워하지 않겠는가?" 항우가 여기에서 말한 것은 두 가지 뜻이 있다. 그러나 하나의 주제로 귀결된다.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였는데, 내가 어찌할 것인가? 지금 나는 패배하여 도망치고 있고, 하나도 가진 것이 없다. 무슨 면목으로 강동부로를 만난단 말인가? 결국 서초패왕은 '면목'이 없다고 여긴 것이다. 좋은 시절을 다 갔다 나는 한때 불가일세의 패왕이지만, 지금은 이런 몰골이다. 만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찌 고향의 부로향친들을 만날 수 있겠는가?
체면, 광환이 둘러싼 영웅은 더더욱 체면을 따진다. 보통사람들보다 열배, 백배는 더 체면을 고려한다. 이것이 바로 항우가 죽어도 강동을 건너지 않겠다는 진정한 심리적 원인이다. 나는 이미 예전같지 않다. 차라리 조용히 세상에서 사라질 지언정 절대로 남루한 옷차림으로 고향에 돌아가지는 않겠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말하면 항우는 우리의 마음 속에서 비정한 영웅이다. 존경하지만 따라할 수 없는 영웅이다. 그를 얘기하자면 우리는 그저 감탄하고 탄식한다. 그는 정천입지(頂天立地)의 대장부이다. 시세를 모르던 멍청이이기도 하다. 그의 호기와 장거는 하늘과 땅을 감동시켰다. 그러나 허영심은 그의 앞길을 망쳤다. 이것이 바로 피가 흐르고 얼굴이 있는 항우이다.
당연히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항우는 비록 나이가 이립(而立)을 넘자마자 인생이 끝났지만, 인생을 전체적으로 보면 수확이 손실보다 크다. 후세인들은 그가 오강에서 자결한 것을 긍정적으로 계속 감싸주었다. 허영심으로 인하여 자결을 선택한 것인데, 그에게는 의외의 수확을 가져다 준다. 우리는 정직한 인격을 갈망하고, 도덕적인 모범을 바라고 있었고, 이구동성으로 이익앞에 의리를 버리는 것을 욕한다. 그래서 차라리 그를 이상중의 우상으로 삼으려 한 것이다. 이런 심리작용하에, 음모양모를 모두 펼쳐서 결국 강산을 차지한 유방은 자연히 비열하고 자잘해 보인다. 유감스러운 것은 현실은 잔혹하다는 것이다. 중생들은 한편으로 항우를 칭송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유방을 본받는다. 모든 것은 이익이 있으면 가고, 이익이 있으면 온다. 가장 평벙한 시골농부조차도 깊이 믿고 있다. 도덕의 껍데기로는 밥을 먹을 수 없다고.
비록 항우와 유방이 원수지간이라고 말했지만, 여기서 한두마디는 더 해야 겠다: 연령으로 짜지면 항우는 유방의 아들뻘이다. 유방은 항우의 아버지뻘이다. 하나는 멍청이이고 하나는 노련한 강호인물이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질 것인지는 이미 결정되었다. 공자가 말하지 않았던가. 늙은 생강이 맵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