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성(李自成)의 세 명의 부인: 왜 2명은 바람이 났을까?
글: 유노사(劉老師) 명나라말기의 역사를 얘기하자면, 이자성은 반드시 언급해야할 인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이자성과 그의 대순(大順)정권에 관심이 집중되었고, 그의 처첩에 대하여는 논의가 비교적 적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주로 관방사료에 이들 여자들에 대한 기록이 적고, 그녀들에 대한 사적은 대다수가 , 등 비관방사료와 지방지에 나온다. 오늘 우리가 얘기할 것은 바로 이자성의 세 명의 처, 한씨(韓氏), 형씨(邢氏)와 고씨(高氏)이다. 1. 한금아(韓金兒): 비록 용모가 출중했지만, 부도(婦道)를 지키지 않아, 나중에 이자성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자성의 첫번째 부인 한금아에 대하여 관방사료에는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 극히 적다. 심지어 어떤 사료에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 , , 등 비관..
2023. 10. 10.
[역사추리] 여공(呂公)은 왜 딸을 유방(劉邦)에게 시집보냈을까?
글: 역사대작회(歷史大炸燴) 만일 역사서의 설명대로라면, 여공이 당시 처음 유방을 만났을 때, 딸을 유방에게 시집보내려고 했다. 주요 이유는 유방이 처음 만났을 때 좋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여공이라는 사람은 관상을 보는 재주가 있었다. 그래서 여공이 처음 유방을 만났을 때, 즉시 유방은 아주 귀한 인물이 될 것이고, 나중에 분명 황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즉시 유방에게 자신의 딸을 시집보내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일에 관하여, 사서에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에 따르면, 당시 여공이 유방에게 이런 이유를 댔다. 신소호상인(臣少好相人), 상인다의(相人多矣), 무여계상(無如季相), 원계자애(願季自愛), 신유식녀(臣有息女), 원위기추첩(願爲箕帚妾) 번역하자면, "저는 관상을 볼 줄..
2023. 9. 19.
"구자탈적(九子奪嫡)"때, 왜 황십사자(皇十四子) 윤제(胤禵)는 동모형제(同母兄弟)인 황사자(皇四子) 윤진(胤禛)를 지지하지 않았을까?
글: 이뢰일(李磊一) 최근 시간이 남아서 다시 한번 드라마를 보면서, 많은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강희제(康熙帝) 말년에 발생한 소위 '구자탈적'의 일을 모두 알고 있다. 즉, 황위를 서로차지하기 위하여 황자들간의 다툼이 발생한 것이다. 황장자(皇長子) 윤제(胤禔), 폐태자(廢太子) 윤잉(胤礽), 황삼자(皇三子) 윤지(胤祉), 황사자 윤진(나중의 옹정제), 황팔자(皇八子) 윤사(胤禩), 황구자(皇九子) 윤당(胤禟), 황십자(皇十子) 윤아(胤䄉), 황십삼자(皇十三子) 윤상(胤祥), 황십사자 윤제이다. 이들중에서 한쌍의 형제가 아주 특수하다. 그것은 바로 황사자 윤진과 황십사자 윤제로 동모친형제이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적대진영에 속했다. 이치대로라면 고인들이 항상 말하는 것처럼, "상진친형제(上陣親兄弟),..
2023.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