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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조조)37

조조는 과연 여백사(呂伯奢)를 죽였는가? <<삼국연의>>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조조가 동탁을 찔러죽이려다 성공하지 못하자, 단기로 낙양을 빠져나와 고향인 초군으로 달려간다. 길가던 도중에 중모현에서 체포되는데, 현령인 진궁(陳宮)이 조조의 충의를 흠모하여, 관직을 버리고 함께 도망친다. 두 사람은 성고(成皋)고 가서, 조조.. 2007. 3. 21.
조조(曹操)의 부인들 조조에게는 처첩이 매우 많았다. 그중 성씨(姓氏)를 아는 사람이 15명이다. <<무문세왕공전>>의 기재에 따르면 그 중의 13명의 부인이 25명의 아들을 낳았다: 변황후(卞皇后) : 비(丕), 창(彰), 식(植), 웅(熊) 유부인(劉夫人) : 앙(昻), 삭(鑠) 환부인(環夫人) : 충(沖), 거(據), 우(宇) .. 2007. 3. 20.
조조의 신비한 신세내력 글: 무서풍(舞西風) <<삼국연의>>에서는 조조(曹操)의 원래 성(姓)은 하후(夏侯)이고 조(曹)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즉, 그의 부친인 조숭(曹嵩)은 하후돈(夏侯惇)의 숙부인데, 태감인 조등(曹騰)의 양자가 됨에 따라, 조씨로 성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는 <<삼국지>>의 배송지.. 2007. 2. 17.
조조(曹操)는 왜 조비(曹丕)를 후계자로 정했는가? 조조는 아들이 매우 많았다. 기록에 남아 있는 아들만도 25명에 달한다. 그 중 명성을 얻은 자는 다섯 명이다. 각각 조앙(曹昻), 조비(曹丕), 조식(曹植), 조창(曹彰), 조충(曹沖)이다. 이중, 조앙은 장자이며, 능력도 인정받아 후계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컸으나, 전투중에 사망하고 만다. 그리고, .. 2006. 11. 20.
조조는 왜 황제에 오르지 않았는가 조조의 일생을 보면, 그 자신이 어떻게 말하더라도, 그는 스스로 황제를 향한 길로 한걸음 한걸음 전진해갔다. 만일 건안원년(196년)전의 조조는 이 측면의 노력이 그저 조용히 기초를 준비하는 것이었다면, 건안원년부터는 아주 튼튼하고 힘있는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건안원년8월, 조조는 친히 낙양.. 2006. 11. 16.
궤변 : 조조는 여자였다. 최근 중국의 웹사이트에는 각종 궤변을 그럴듯하게 늘어놓는 경우가 많은데, 이 글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저, 재미로 보면 될 것같다. ===================================================================================== 문저 우리는 세부적인 문제에서 조조가 실제는 남장여인이었다는 단초를 찾을 수 있다. 1. 제1회를 .. 2006. 3. 17.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패한 이유는? 화공? 흡혈충? 적벽대전은 중국역사상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 병력에 승리를 거둔 유명한 전투이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조조는 적벽대전에서 패하였는가? 일반적으로 조조의 군대가 패전한 치명적인 원인은 화공(火攻)때문이라는 것이다. <<삼국지. 촉서, 선주전>>에는 "손권이 주유, 정보등 수군 수만명.. 2006. 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