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영락제)15

영락제는 왜 비구니를 모두 잡아들였는가? 글: 유병광(劉秉光) 비구니는 출가수행하는 여승이다. 육근청정(六根淸靜), 사대개공(四大皆空)을 추구하여 조정과 원수질 일이 없다. 그런데, 명나라때 비구니들은 사상유례없는 체포와 침해를 당한 바 있다. 영락18년(1420년), 명성조 주체는 돌연 명을 내려, 전국의 모든 비구니와 여도사를 모조리 잡.. 2008. 11. 6.
"권비사건(權妃案)" : 영락제와 조선여인의 사랑 명성조 영락제 주체(朱棣)는 대명황조의 세번째 황제이며, 명태조 주원장의 넷째아들이다. 육조고도인 남경에서 태어났으며, 홍무3년, 즉 1370년에 연왕(燕王)에 봉해졌다. 홍무13년, 북경으로 간다. 여러번 명태조 주원장의 명을 받아 북방군사활동에 참가하고, 두번은 군대를 이끌고 친히 정벌.. 2008. 1. 17.
서묘금(徐妙錦) : 영락제의 청혼을 거부한 기녀(奇女) 작자: 미상 명나라의 영락제는 황제위를 찬탈했다. 그는 "정난지역(靖難之役)"의 기치를 내걸고, 자기의 조카인 건문제 주윤문을 핍박하여 죽여버렸다. 이어서, 등극조서의 초안을 부탁했다가, 건문제의 충신인 방효유에게 거절당하였다. 얼마되지 않아, 새 황후를 책봉하고자 당대의 미녀인 서묘금에.. 2007. 5. 14.
영락제의 3천궁녀 참살사건 명성조(明成朝) 영락제(永樂帝)는 궁녀와 환관 3천여명을 살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하나 재미있는 것은, 이 사건에는 조선에서 건너간 후궁과 궁녀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명성조 영락제는 역사상 여러가지 업적을 남긴 황제이다. 그러나 그는 성격이 고집스럽고, 자기.. 2006. 5. 29.
명나라 영락제는 몽골계인가 고려계인가? 홍무31년에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사망했다. 황태손인 주윤문이 뒤를 이어 즉위했다. 그는 각지에 있는 숙부인 왕들의 세력이 너무 큰데 두려움을 느끼고 제태, 황자징등의 건의를 받아 번왕을 철폐하는 영을 내린다. 주왕, 상왕, 대돵, 제왕, 민왕등의 왕들은 죄를 물어 왕위에서 폐함을 당했고,.. 2006. 3.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