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종(明仁宗)의 제왕술(帝王術)
글: 호연문사(浩然文史) 홍희(洪熙, 명인종 주고치의 연호)떄, 명인종(明仁宗) 주고치(朱高熾)는 몸이 좋지 않았고, 당시 조정을 질타하던 5명의 거두 건의(蹇義), 양사기(楊士奇), 양영(楊榮), 김유자(金幼孜), 하원길(夏元吉)이 핵심의사결정층이 되어 송인종을 보좌한다. 영락(永樂, 명성조 주체의 연호)때, 명나라는 실제로 의사결정권이 3분되어 있는 상태였다. 인종에 이르러, 과거 자신을 따랐던 노신들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해 건의, 양사기에게 은장(銀章)을 새겨서 준다. 이 은장은 두 노대신의 공로가 혁혁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동시에, 이 은장을 찍어 올리는 상소는 직접 황제에게 전달되도록 했다. 나중에 양사기가 극력 주장하여, 명인종은 양영, 김유자, 하원길의 3명에게도 은장을 수여한다. 이것은 ..
2022. 7. 20.
건문제(建文帝) 주윤문(朱允炆)의 형제들은 어떤 최후를 맞이했을까?
글: 흔다적노력(很多的努力) 주체(朱棣, 나중의 명성조 영락제)는 명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의 4남이다. 주표(朱標)는 주원장은 장남이다. 홍무원년, 주표는 황태자에 오른다. 즉 제국의 합법적인 후계자이다. 주원장은 관리들을 극단적으로 불신해쏙, 많은 개국공신을 죽여버렸다. 그러나, 주원장은 황태자 주표에 대한 교육을 아주 중시하여, 송렴(宋濂), 이선장(李善長), 서달(徐達), 유기(劉基)등은 모두 주표를 가르친 바 있다. 주원장과 달리, 주표는 온문이아(溫文爾雅)했으며, 일처리는 온화했다. 여러번에 걸쳐 주원장에게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지 말 것을 권했다. 만일 그가 순조롭게 황위를 이어받았다면 아마도 인후한 군주가 되었을 것이다. 주원장의 생각은 일장일이(一張一弛)였다. 그가 지배하는 국가는 ..
2022. 6. 24.
조휘(趙輝): 중국역사상 가장 장수한 부마, 명나라 9조(朝)의 황제를 겪다
글: 도도설문사(濤濤說文史) 최근 몇 년간 전통적인 한문화를 젊은이들이 갈수록 더 좋아하고 있다. 원래 TV를 수십년동안 차지하고 있던 청나라궁중드라마가 많이 줄어들었고, 명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드라마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최근 비교적 인기리에 방영된 그리고 이전의 그리고 오랫동안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던 . 봉건왕조중 가장 마지막 한족통치의 왕조로서, 명나라는 독보적인 매력이 있다. 명나라는 끝까지 화친하지도 않고, 투항하지도 않으면서 천자가 국문을 지켰던 왕조이다. 대명은 후세에 많은 보물을 남겼다. 예를 들어 4대명저, 본초강복, 그리고 수많은 문인, 장수. 예를 들어 왕양명, 탕현조, 서하객, 이시진등등. 그외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전설적인 인물도 있다. 예를 들어 9명의 황제를 ..
2022. 6. 7.
이성동(李成棟): "항명(降明) - 항청(降淸) - 재항명(再降明)", 두 황제를 죽이고, 가정삼도(嘉定三屠)를 일으킨 도살자
글: 만풍모우(晩風暮雨) 명나라말기, 한 무리의 충신양장(忠臣良將)이 배출된다: 예를 들어 사가법(史可法), 소관생(蘇觀生), 이정국(李定國), 정성공(鄭成功), 진방언(陳邦彦), 왕흥(王興)등이 있다. 동시에 한 무리의 난신적자(亂臣賊子)도 배출된다. 예를 들어, 이영방(李永芳), 퉁양성(佟養性), 오삼계(吳三桂), 전겸익(錢謙益), 공유덕(孔有德)등이 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 무리의 사람들은 이 양자의 중간에 있다. 그들은 '이익'을 쫓았다. 하는 행위는 모두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명나라에 공도 있고 과도 있어, 간단하게 충신, 간신으로 나누어 평가하기 어렵다. 그 중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성동이다. 1. 귀순명조(歸順明朝) 이성동은 자가 정정(廷楨)이고, 호는 호자(虎子)이..
2020. 6. 3.
정덕제(正德帝) 재위16년간의 황당한 사건들...
글: 만풍모우(晩風暮雨) 명무종(明武宗) 주후조(朱厚照)의 일생은 "황희무도(荒嬉無度), 자의황위(恣意枉爲)"라는 여덟자로 개괄할 수 있다. 그는 재위16년간 "격구주마(擊毬走馬), 방응축견(放鷹逐犬), 배우잡극(俳優雜劇), 착진어전(錯陳於前)"했고, "여외인교역(與外人交易), 압닐설설(狎昵媟褻)", "일유부족(日遊不足), 야이계지(夜以繼之)"하면서 무수한 황당한 일을 벌였다. 여기에서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1. 호랑이와의 결투 무종은 즉위한지 1년후, 서화문(西華門) 밖에 개인적인 행궁을 건립했고, 무수한 진금맹수(珍禽猛獸)를 길렀다. 거기에는 표범(豹子)가 있어서, "표방(豹房)"이라고 불렀다. "표방"에는 호랑이도 있었다. 사료에 따르면, 무종은 최소한 호랑이와 2번 결투를 벌였다. 제1차는 무..
2020. 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