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제갈량)70 모택동은 왜 제갈량의 군사적 재능을 인정하지 않았을까? 글: 유계흥(劉繼興) 역사상 진실한 제갈량은 업적이 출중한 정치가이다. 촉국을 다스리는데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군사적으로 뛰어난 점은 많지 않다. <삼국연의>에서 그려진 것처럼 그렇게 용병여신(用兵如神)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삼국연의>는 민간에 영향이 아주 .. 2012. 1. 1. 칠종칠금(七縱七擒) 배후의 진실 글: 호각조(胡覺照) 2년간 준비를 마친 후, 원래는 이엄(李嚴)이나 다른 장수가 담당할 예정이었던 남정(南征)업무를 제갈량은 "여러 장수들의 재능이 나보다 못하다"는 이유를 들어 친히 나서게 된다. 이에 대하여 심복인 왕련(王連)은 글을 올려 반대의사를 표시한 바 있다: "이 곳.. 2011. 10. 27. 제갈량(諸葛亮)의 관작(官爵) 분석 작자: 미상 제갈량: 무향후(武鄕侯), 승상(丞相), 영사례교위(領司禮校尉), 익주목(益州牧), 녹상서사(錄尙書事), 가절(假節) 무향후: 이는 작위(爵位)이지 관직(官職)은 아니다. 한나라때는 성급지방행정단위를 주(州)라고 불렀고, 시급행정단위를 군(郡)이라 불렀으며, 그 아래에 현(縣)이 있고, 그 아래.. 2011. 3. 29. 제갈량의 “칠종칠금”은 역사상 존재했는가? 글: 문재봉(文裁縫) “칠종칠금(七縱七擒)”은 <삼국연의>에서 대서특필한 부분이고, 역대이래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내용은 동한 말기, 위, 촉, 오의 삼국이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가졌는데, 촉의 승상 제갈량은 유비로부터 자식을 부탁한다는 임종유언을 받아 북벌을 하여 한실을 부흥시키기로.. 2011. 3. 21. 제갈량은 왜 사마의를 이기지 못했을까? 글: 중천비홍(中天飛鴻) <<삼국연의>>를 본 사람들은 사마의를 제갈량에게 패배한 장수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삼국연의>>를 읽어보면, 지혜로 보나, 병법으로 보나, 모략으로 보나, 제갈량이 사마의보다 훨씬 뛰어났고, 그는 아무도.. 2010. 11. 8. 제갈량의 고향은 어디인가? 글: 배옥(裴鈺) "신은 원래 포의(布衣)로, 남양(南陽)에서 농사를 지으며, 난세에 구차한 생명을 유지하였고, 제후에게 이름이 알려지기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선제(先帝, 유비)께서는 신을 미천하게 여기지 않고, 스스로 몸을 낮추어 초가집을 세번이나 찾아오셔서 신에게 당금세상의 일.. 2010. 9. 17. 이전 1 ··· 6 7 8 9 10 11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