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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248

중국역사상의 사대천부(四大天府) 작자: 미상 중국역사상 모두 4개의 천부(天府)가 나타났다: 응천부(應天府), 순천부(順天府), 승천부(承天府), 봉천부(奉天府). "천"은 "천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천부"는 제왕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곳이거나, 혹은 칭제이전에 출생하거나, 칭제이전의 봉지이거나 칭제이전에 발상지이다. 간단히 말해서, 어느 군왕의 용흥지지(龍興之地)라는 뜻이다. 이 사대천부는 왕조에 따라 각각 설립했다. 어떤 경우에는 대응하는 곳이 한 곳이 아니다. 응천부(상구/남경), 순천부(북경), 승천부(종상/대만/월남), 봉천부(무강/심양)이다. 왜 이렇게 같은 이름의 천부가 여러 곳에 나타났을까? 이는 그 도시와 관련있는 군왕의 성장과 관련이 있다. 1. 응천부 송나라와 명나라때 응천부를 두었다. 송나라의 응천부는 하남.. 2022. 1. 17.
하나의 민족에게 최대의 비애는 무지(無知)가 아니라, 무지를 자랑이라 여기는 것이다. 글: 뇌이(雷頤) 역사는 사악한 선생이다. 단지 자유인에게만 진상을 말해주어서, 오직 자유인만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자격과 능력이 있다. 서방을 배우는 학습과정에서, 근대 중국인들은 시종 진정한 문제를 찾지 못했다. 소위 남원북철(南轅北轍)이다. 방향이 틀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헛일인 것이었다. 이하지방(夷夏之防) 아편전쟁때, 임칙서(林則徐)는 광동으로 가서 방어를 했다. 다만 그는 영국인을 전혀 몰랐고, 적의 상황에 대하여도 전혀 몰랐다. 당시 서양인은 무릎을 굽힐 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소문을 누가 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모두 그렇다고 믿었다. 그래서 임칙서도 믿었다. 일찌기 외국사신이 건륭제를 만날 때 무릎을 꿇으려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중국인들은 그들이 무릎을 꿇기 원치 않는 것이.. 2022. 1. 8.
중국 고대의 "은자(銀子)"는 어떻게 사용되었을까? 글: 장금(張嶔) 많은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고전명저'의 매매장면에는 '쇄은자(碎銀子)'를 사용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예를 들어, 에서 주인공이 몸에 지니고 다니는 돈은 왕왕 "몇 량(兩)의 산쇄은자(散碎銀子)이다. 나중에 '화괴(花魁)를 독점하는 매유랑(賣油郞)은 처음에 1년간 고생하며 청루(靑樓)의 '입문비(入門費)로 16량의 산쇄은자를 모았다. 의 왕의안(王義安)은 두 명의 수재에게 붙잡혀 두들겨 맞다가, '세냥칠전의 쇄은자를 주고' 비로소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를 보면, 이 '쇄은자'는 일상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에서 불경을 가지러 가는 당승 사도도 '쇄은자를 사용하는데' 있어서는 속됨을 면하지 못했다. 3명의 사제중 그래도 마음씀씀이가 가장 세심한 저팔계(猪八.. 2021. 3. 24.
중국고대전쟁에서 전사병사의 시신을 어떻게 처리하였을까? 글: 뇌저(雷姐) 인류사회에 전쟁이 나타나면서, 잔혹한 전쟁터에서는 대량의 병사와 지휘관이 죽고 부상당했다. 부상당한 병사는 치료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전사하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옛날의 의료조건은 지금처럼 좋지 못했다. 그래서 부상한 병사도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여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냉병기 시대에 병사들의 상처를 적시에 치료하지 못하면, 감염되어 죽는 경우가 많았다. 고대에 전투가 벌어지면 많은 사람이 죽었다. 적게는 수천에서 많게는 수만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병사들이 사망하면, 고대군대는 전사한 병사들의 시신을 어떻게 처리하였을까? 황야에 내버려두어, 짐승의 밥이 되게 한다. 고대 전쟁터에서 양군이 교전하면 패배한 측은 전부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히거나 도망치게 된다. 그렇게 되.. 2021. 2. 17.
"오성칠망(五姓七望)": 중국역사상의 명문집안 글: 천애간점역사(天涯看點歷史) 성씨(姓氏)는 우리들 모두의 일생을 따라다니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성씨도 적지 않게 탄생하고, 적지 않은 복성(複姓)은 단성(單姓)으로 바뀌었다. 지금 통계를 내보면, 단자성과 쌍자성을 합치면 수량이 1만개에 이른다. 현재의 성씨는 이미 고대의 계급제도는 없다. 왜냐하면 고대에는 '오성칠망'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들 성씨를 가진 사람은 고대의 명문망족이었다. 이는 상류사회의 명함을 하나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나 같다. 고대의 황실조차도 '오성칠망'에 속하는 사람과 결혼할 자격이 없었다. 그렇게 보면 정말 이들 일족으로 태어나는 것은 하나의 특권이라 할 수 있다. 그중 "오성(五姓)"은 이(李), 최(崔), 노(盧), 정(鄭), 왕(王)을 .. 2020. 11. 30.
황제는 왜 궁녀만 두지 않고, 환관을 두었을까? 글: 서기매(西奇妹) 서언 중국역사상 '환관'이라는 직업이 나타난 이후로, 황권을 그들이 행사하는 경우가 나타났다. 예를 들어, 당나라의 고력사, 명나라의 위충현, 청나라의 이연영등등... 여기서 환관이 충신인지 간신인지를 따지지는 않기로 한다. 환관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은 대체로 '.. 2020. 3. 25.
황금에는 독이 없는데, 왜 고대 사서에는 '금을 먹고 자살했다'는 글이 나오는가? 글: 격벽노장계시록(隔壁老張啓示錄) 황금은 자고이래로 신분과 부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최근에는 '금박주(金箔酒)'라는 백주(白酒)가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그 뜻은 백주 안에 금박을 식품첨가제로 넣는 것인데, 일시에 졸부들이 앞다투어 구매하려 하고 있다. 아마도 금박주를 마시.. 2019. 12. 25.
중국사서의 "대진국(大秦國)"은 로마제국을 가리키는 것일까? 글: 해색청징(海色淸澄) 감영이 도착하지 못한 대진국은 어느 나라일까? 한나라는 동시대의 고대로마제국(중국사서에서는 '대진국'이라 칭함)와 교류가 있었다는 것은 현재 사학계에서 기본적으로 컨센서스를 이루고 있다. 비록 동서방의 전문가들은 세부적인 사항에 대하여는 의견일치.. 2019. 5. 5.
<죽서기년(竹書紀年)>: 중국고대의 비주류 사서 글: 지역사(知歷史) <죽서기년>은 위양왕(魏襄王) 시대에 저술되었다. 이 시대에 여러 나라가 나타나고, 유가(儒家)는 아직 독보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죽서기년>은 서진(西晋) 연간이고, 이 때는 <사기>가 이미 중국역사기록의 '대표브랜드'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죽서기.. 2019. 4. 22.
삭번(削藩), 조반(造反), 그리고 성세(盛世) 글: 육기(陸棄) 중국역사상 두번의 황제의 삭번, 번왕 조반의 전쟁이 있었다. 다만, 전쟁의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서한(西漢)왕조의 한경제(漢景帝)의 삭번때는 칠왕지란(七王之亂)을 진압함으로써 끝나고, '문경지치(文景之治)'의 한경제 시대를 이어갔다. 대명왕조의 건문제(建文帝)의 .. 2019. 3.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