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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황자쟁위술61

[황자쟁위술] 양차동풍술(亮借東風術) 태제입승패(太弟入承牌) 이염편 당목종(唐穆宗) 이항(李恒)의 아들중에서 3명이나 황제에 오른다. 그가 820년에 즉위한 후 5년간 재위하다가 824년 죽은 후, 먼저 장남 당경종(唐敬宗) 이담(李湛)이 황제에 오르나, 2년만인 826년 십이월 초팔일 환관 유극명(劉克明)등에 의해 살해당한다. 유극명등은 유지를 위조하여, 당헌.. 2015. 10. 11.
[황자쟁위술] 양차동풍술(亮借東風術) 양자입승패(養子入承牌) 주신호편 피동적으로 입적되는 경우도 있지만, 역사적으로 황제에게 황위를 넘겨줄 아들이 없는 것을 보고 양자로 들어가려고 한 소인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혹은 배분도 무시하고, 혹은 권신, 훈척에게 뇌물을 바치기도 하며, 목적달성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명무종 주후조는 비록 .. 2015. 10. 11.
[황자쟁위술] 양차동풍술(亮借東風術) 양자입승패(養子入承牌) 재첨편외 <삼국연의>의 적벽대전때 ‘만사구비, 지흠동풍(萬事俱備, 只欠東風)’의 상황에서 제갈량이 차동풍(借東風)한 이야기는 아주 유명하다. 특히 무슨 일을 이루기 위하여 다른 조건은 갖추어져 있는데 중요한 한 가지가 빠진 경우가 있다. 그럴 때, 그 빠진 것을 채워주는 것이 왕왕 우.. 2015. 10. 11.
[황자쟁위술] 이세탈인술(以勢奪人術) 천사재화패(天賜才華牌) 혁흔편 청나라 도광제 민녕(旻寧)이 누구를 후계자로 할지 고민할 때, 그의 9명 아들중에서 3명은 이미 요절했고, 3명은 나이가 너무 어리며, 1명은 후사가 없는 다른 형제에게 양자로 보내어, 후보로 남은 아들은 황사자 혁저(弈詝)와 황육자 혁흔(弈訢)의 두 명이었다. 혁저는 위의.. 2015. 10. 11.
[황자쟁위술] 이세탈인술(以勢奪人術) 천사재화패(天賜才華牌) 이세민편등 사서는 이세민이 형인 태자 이건성보다 훨씬 총명했다고 기록한다. 비록 이것이 사실에 완전히 부합하는지 여부는 알 수가 없지만, 사서나 야사에서 이 기조에 따른 여러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런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다음에 소개하는 한가지 사례로 알 수 있다. .. 2015. 10. 11.
[황자쟁위술] 이세탈인술(以勢奪人術) 천사재화패(天賜才華牌) 사마휼편외 진무제(晋武帝) 사마염(司馬炎)은 비록 조위(曹魏)로부터 선양을 받아 황위에 올라 천하를 통일하지만, 황위의 승계에 있어서 하늘이 그에게 점지해준 적장자 즉, 나중의 진혜제(晋惠帝) 사마충(司馬衷)은 조부 사마의(司馬懿)나 부친 사마염을 닮지 않고, 일반인의 아이큐에도 못미쳤다. .. 2015. 10. 11.
[황자쟁위술] 이세탈인술(以勢奪人術) 천사재화패(天賜才華牌) 계찰편외 오(吳)나라에서 처음으로 왕(王)을 칭한 수몽(壽夢)은 25년간 오나라를 통치한 후 기원전561년 세상을 떠난다. 임종시에 후계자를 골라야 하는데, 그에게는 아들이 4명 있었다. 첫째가 제번(諸樊), 둘째가 여제(餘祭), 셋째가 여매(餘昧), 넷째가 계찰(季札)이었다. 그중 계찰이 가장 현명하여.. 2015. 10. 11.
[황자쟁위술] 이세탈인술(以勢奪人術) 천사재화패(天賜才華牌) 은주왕편 황태자를 세우는데 있어서, 적장자원칙의 신조룰 역대제왕들이 신봉해왔다 그러나, 거의 모든 제왕들은 황태자를 세우기 이전이나 세운 이후나 태자의 재능이 “대임을 맡을 만한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때로는 바꿀지말지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이런 때가 되면, 조정신하들과 황.. 2015. 10. 11.
[황자쟁위술] 이세탈인술(以勢奪人術) 적장신분패(嫡長身分牌) 동치제편(2) 지자천려 필유일실(智者千慮 必有一失)인 법이다. 함풍제가 임종시에 정교하게 설계한 권력분배방안은 기실 여러 방면의 견제로 권력의 균형을 이루고 황권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안배는 보기에는 교묘하게 균형을 맞춘 것같고, 전혀 빈틈이.. 2015. 10. 11.
[황자쟁위술] 이세탈인술(以勢奪人術) 적장신분패(嫡長身分牌) 동치제편(1) 함풍제는 황위계승자문제에 대하여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아들이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즉, 서태후(자희태후)가 낳은 재순(즉, 나중의 동치제)뿐이다. 그러므로, 옹정제때 만든 비밀건저(秘密建儲)도 실시할 필요가 없었다. 함풍제는 조부인 가경제처럼 후계자를 느긋하.. 2015.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