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뇌가(雷歌)
2025년 5월 30일
세계는 풍운이 변화하고, 중국은 괴이한 일이 많다. 최근 중국 정계에 드러난 여러가지 현상을 보면, 중국의 최고권력은 이미 실질적으로 이전된 것으로 보인다.
20대후 일찌기 강산을 통일했던 시진핑은 현재 이미 허군(虛君)이 되었다: 그가 아직 신문에서 당당하게 지시를 내리고 있고, 그가 여전히 요란하게 지방시찰을 다니고, 그가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국가원수의 신분으로 해외를 방문하고 있다. 그러나 일찌기 그를 따랐던 심복부하들은 관료사회에서 무더기로 쓰러지고, 쫓겨나거나 주변으로 밀려났다; 관영매체에서도 그를 칭송하고 아부하던 구호가 매일 화면을 가득 채웠지만, 지금은 조용히 사라졌으며, 그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지 않으면서 개인숭배와 일언당(一言堂)을 비판하는 글이 수시로 올라오고 있다; 그리고 일찌기 그가 폭력적으로 탄압했던 정치적수 특히 공청단파가 최근 다시 활발해지고, 권토중래하고 있다....이건 마치 런즈창(任志强)이 예전에 신랄하게 조롱했던 것처럼 시진핑은 지금 명실상부하게 "발가벗은 임금님"이 되어버렸다. 작년 3중전회에서 중풍으로 바닥에 쓰러지면서 대권을 내려놓은 이래, 시진핑은 최근 1년동안 중국정계에서 벌거벗고 뛰어다니고 있다.
그가 권력을 잃은 후에도 여전히 그에게 1년간 가짜황제로 지내게 한 유일한 원인은 중공고위층이 일시에 이 엉망진창이 된 난국을 수습할 사람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하야한 후, 정책방향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도 중구난방이다. 권력교체후의 인사배치를 적절히 안배하고, 정책조정을 하는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권력을 넘겨받은 중공고위층은 권력변동이 지나치게 격렬하여 중공통치의 기반을 흔들 수 있을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그리하여 최대한 표면적으로는 풍청운담(風淸雲淡)하면서, 과도단계에 서서히 소문을 퍼트려 사회에 지나치게 큰 충격이 가해지지 않도록 할 것이다.
작년 10월, 필자는 <시진핑의 지존지위가 흔들리는 9대 조짐>이라는 글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는 3중전회가 끝난지 겨우 3개월이었고, 그런 조점은 대부분 자잘한 일들이었고, '주사마적(蛛絲馬迹)'이었다. 최근 반년여간, 더 많은 증거가 대량으로 드러났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전면적으로 종합하여 심도있게 "중남해 권력교체의 8대증거"를 얘기해볼까 한다.
- 시진핑파의 군대내 심복들이 대거 숙청당했다.
이 이슈에 관하여, 나는 최근 1년간 여러 차례 얘기한 바 있다. 중앙군사위 정치공작부 주임 먀오화(苗華)가 작년 11월 낙마했다고 공식발표한 것은 대표적인 사건이다. 그리고 금년3월 양회가 끝난 후 중앙군사위 부주석 허웨이둥(何衛東)의 낙마는 사건을 최고조에 이르게 했다. 먀오화, 허웨이둥사건과 관련된 다수의 군대내 핵심보직의 시진핑파 요원들이 연이어 낙마했다. 이는 시진핑이 군권을 잃었따는 가장 현저한 표지이다.
현재 군대내에서 실권을 장악한 사람은 군사위 부주석 장여우샤(張又俠)이다. 그는 금년 양회때 시진핑이 퇴장하는데, 다른 사람들처럼 몸을 돌려 시진핑을 향해 목례를 하면서 지도자가 퇴장하는 것을 배웅하지 않았고, 주석대에서 유일하게 앉아서 움직이지 않고, 시진핑을 등진 고위관료였다. 그의 반시진핑태도는 이미 분명해 보이고, 더 이상 그렇지 않은 척 하지도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시진핑이 군권을 잃었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었다는 것이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최근 반년동안 낙마한 군대내의 고위장성은 최소한 다음과 같다(시간순서에 따름):
- 육군정위 친슈퉁(秦樹桐) 상장 (작년 9월)
- 해군정위 친셩샹(秦生祥) 상장 (작년 10월). 이전에 그는 중앙군사위 판공실주임 및 군대개혁판공실 주임이라는 두 요직을 맡았었다.
- 무경사령관 왕춘닝(王春寧) 상장 (작년11월에 행방불명되어 지금에 이르다)
- 동부전구사령관 린샹양(林向陽) 상장 (대만무력통일의 주지휘관, 금년3월)
- 로켓군사령관 왕허우빈(王厚斌) 상장 (대만무력통일의 주력, 금년 3월)
- 전 남부전구사령관 왕슈빈(王秀斌) 상장 (금년 3월)
- 서부전구사령관 왕하이장(王海江) 상장 (금년 3월말)
- 중앙군사위 훈관부(訓管部) 부장 왕펑(王鵬) 중장 (금년 3월말)
- 동부전구 해군사령관 왕중차이(王仲才) 중장 (금년 3월말)
- 73집단군 군장 딩라이푸(丁來福) 소장 (금년 3월말)
- 군사위 정치공작부 상무부주임 허홍쥔(何宏軍) 상장 (금년 4월)
최신의 인물로는 다음과 같은 사람이 있다:
- 북부전구사령관 황밍(黃銘) 상장 (금년 5월)
- 중앙군사위 연합참모부 부참모장 차오칭펑(曹靑鋒) 중장 (금년 5월)
- 신강군구 정위 양청(楊誠) 중장 (금년 5월)
- 중앙군사위 정치공작부 주임조리 겸 중앙군사위 판공청주임 팡용샹(方永祥) 중장 (금년 5월)
그 외에, 중앙군사위 기율검사위 전직부서기 천궈창(陳國强)은 시진핑의 군대내 심복이었고, 작년 8월 돌연 국방과기대학의 정위로 옮겨간다. 그보다 몇달 전에는 시진핑의 오랜 비서이며 요직에 있던 전 중앙군사위 판공실 주임 종샤오쥔(鍾紹軍)이 돌연 국방대학 정위로 옮겨간다. 이 두 사람은 완전히 주변으로 밀려났다.
더욱 놀라운 소식은 각각 금년 3월과 4월 체포된 허웨이둥, 허홍쥔이 이미 금년 5월 301병원에서 전후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함께 정변을 도모한 혐의를 받고 있었고, 군권을 장악한 장여우샤에 의해 직접 제거되었고, 이를 통해 다른 생각을 품고 있던 시진핑파 사람들을 겁주었다고 한다.
2. 비시진핑파 관리들이 요직을 맡았다. 그리고 시진핑파 사람들은 조사받거나 주변으로 밀려났다.
- 4월초, 전 통전부장 스타이펑(石泰峰)이 시진핑파의 청화대학 적계 리깐제(李干傑)을 대신하여 중앙조직부장을 맡아, 당내의 고위층인사대권을 장악한다. 후진타오(胡錦濤)가 중앙당교 교장으로 있을 때, 스타이펑은 교연실주임에서 부교장으로 발탁되었으며, 스타이펑은 공청단파간부이다.
- 4월 25일, 류페이(劉非)는 윈난(雲南)에서 저장(浙江)성위 상위, 항저우시위서기로 옮겨온다. 류페이는 일찌기 쑨정차이(孫政才)가 지린(吉林)성위서기로 있을 때의 부하이다. 그리고 쑨정차이와 후춘화(胡春華) 두 사람은 후진타오가 격대지정한 후계자이다. 2017년 쑨정차이가 감옥에 들어간다. 류페이가 현재 항저우라는 시진핑파의 용흥지지를 차지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
- 5월 23일, 류꾸이핑(劉桂平)이 텐진(天津)시위 부서기가 된다. 류꾸이핑은 오랫동안 금융계통에서 일했고, 왕치산(王岐山)의 부하이다. 왕치산은 공고진주(功高震主)로 2017년 시진핑에 의해 주변으로 밀려났고, 내심 시진핑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다. 현재 왕치산의 옛 부하가 시진핑파의 고관 천민얼(陳敏爾)의 곁을 지키게 되었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텐진이라는 이 직할시를 접수하려는 것인가?
- 5월 25일, 샨시(陝西) 정협부주석 류콴런(劉寬忍)이 조사를 받는다. 5월 26일, 헤이룽장성 쑤이화시(綏化市) 전 인대부주임 쏭슈셩(宋樹生)이 조사를 받는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전 전인대위원장 리잔슈(栗戰書)의 부하들이다. 리잔슈는 시진핑의 심복이고, 20대때 후진타오를 회의장에서 쫓차낸 직접적인 방흉(幇凶)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쏭슈셩, 류콴런의 관직은 모두 리잔슈에게 뇌물을 주고 얻은 것이다. 이 두 사람을 조사하는 것은 창끝을 이미 은퇴한 리잔슈로 향한다는 것이다.
- 5월 27일, 전 공안부장조리 겸 판공청주임 후빈천(胡彬郴)이 장쑤성위의 한 회의에 나타나, 장쑤성 인대상위부주임 저우광즈(周廣智)와 성정협부주석 야오샤오둥(姚曉東)의 사이에 앉았다. 이는 그가 이미 장쑤로 옮겨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후빈천은 시진핑파의 고위관료 왕샤오홍(王小洪)의 비서실장으로 지위도 높고 권력도 컸다. 그런데 돌연 장쑤성 인대, 정협의 한직으로 밀려난 것이다.
3. "시중쉰(習仲勛)기념관"이 "관중(關中)혁명기념관"으로 바뀌다.
5월 24일, "관중혁명기념관"이 샨시(陝西) 푸핑(富平)에서 정식으로 개관했다. 이날은 시중쉰서거23주년기념일이었다. 그리고 이 기념관에서 전시하는 내용은 대부분 시중쉰을 선전하는 것이었다. 이 기념관은 준비한지 여러 해가 되었고, 규모가 거대했다. 그러나, 때를 잘못 만난 것같다(生不逢時). 정식개관때 시진핑이 이미 권력을 잃어, 명칭도 "관중혁명기념관"으로 바뀌게 되었다. 현지정부가 이렇게 한 것은 이후 다시 이름을 바꾸어야하는 골치거리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푸핑은 시중쉰의 고향이다. 2006년 민간에서 자금을 모아 소규모로 "푸핑시중쉰기념관"을 건설했다. 위치는 바로 이 새로운 "관중혁명기념관"의 대각선쪽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아마도 이 "시중쉰기념관"은 조만간 "관중혁명기념관"에 흡수되어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것이다.
또 하나의 주목을 끄는 현상은 규모가 방대하고 "위대한 지도자"와 관련된 중요한 기념관을 개막하는데, 샨시성의 지도자들은 모두 나타나지 않았다. 중앙선전부에서도 참석하지 않았으며, 더더구나 시씨집안사람 특히 시위안핑(習遠平)도 참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 관영매체는 겨우 100여자의 짧은 뉴스만 내보냈다. 이는 이전의 유사한 경우에 요란하게 거행하였던 것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그 차이가 너무나 크다. 이런 것은 모두 극히 비정상적이고, 시진핑이 권세를 잃었다는 민감한 정보를 나타내는 것이다.
금년 3,4월에 시안(西安)에서 계획중이던 17호지하철노선의 푸핑구간이 "개선조정"될 것이라고 하였다. 푸핑은 시안에서 70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인구는 희소하다. 지하철노선 하나를 푸핑까지 연결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확실히 위대한 지도자의 고향이기 때문에 연결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돌연 계획을 조정한다니. 이것도 모종의 정치적 신호를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또 한명의 아부꾼 관리로 징쥔하이(景俊海)가 있다. 샨시성위 선전부장으로 있을 때, 원래 점유면적 약 5천평방미터의 "시중쉰능원(習仲勛陵園)"을 10만평방미터의 초대형규모로 확장했다. 그후 관운이 형통하여, 지린성위서기까지 오른다. 그러나 작년 9월, 63세의 그는 돌연 전인대의 한직으로 옮겨간다. 이것도 시진핑이 작년 3중전회이후 권력을 잃었다는 하나의 증거이다.
4. "후진타오어록(胡錦濤語錄)"이 돌연 인민일보 1면의 헤드라인에 올라간다.
5월 20일, 인민일보의 1면 헤드라인은 이러했다:
(부제) 시진핑이 "15차 5개년계획" 편제공작에 중요한 지시를 내리고 강조했다.
(주제) 과학결책(科學決策), 민주결책(民主決策), 의법결책(依法決策)을 견지하여 높은 품질로 "15차 5개년계획 편제업무를 완성하자.
문장은 겨우 몇백자이고, 얘기하는 것은 제15차 5개년계획이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주목한 것은 주제목에서 "과학결책, 민주결책, 의법결책"을 견지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이건 "후진타오어록"에 나오는 말이다. 그런데 어찌 시진핑의 "중요지시"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과학결책, 민주결책, 의법결책"을 견지하자는 말이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2004년 9월의 중공16기 4중전회의 공보(公報)에서이다. 2007년 10월 정식으로 후진타오의 제17대 보고서에 들어간다. 그리하여 후진타오 원자바오시대의 정치적 레테르가 된다. 2012년 11월 후진타오가 한 제18대보고서에서 다시 "삼결책"을 임별증언(任別贈言)으로 곧 취임할 시진핑에게 보낸다.
모두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2022년 10월 20대때, 후진타오는 후춘화가 정치국의 인사안배에서 배제된 것에 불만을 나타냈고 회의장에서 끌려나가는 장면이 연출되었다는 것을. 그때부터 시진핑과 후진타오는 공개적으로 결렬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시진핑이 어찌 후진타오어록을 '중요지시'로 인민일보 헤드라인에 올릴 수 있단 말인가?
유일하게 합리적인 해석은 인민일보 제1명 헤드라인은 그저 "가전성지(假傳聖旨)"라는 것이다. 시황제는 이미 용포를 빼앗겼고, 진정으로 말하는 것은 이미 시진핑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후진타오의 사람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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