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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농민

진실한 중국농촌: 황막(荒漠)한 인성(人性)

by 중은우시 2021. 2. 19.

글: 수풍행주도처간(隨風行走到處看)

 

사람들은 모두 고향이 좋다고 말한다. 기실 나는 나의 농촌고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작년에 이런 뉴스를 보았다. 외지에 일하러 나간 아들이 7일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위중한 부친에게 돌아왔다. 2,3일이 지났는데 부친은 여전히 죽지 않았다. 그러자, 아들이 부친에게 말한다: "도대체 죽을 거냐 말거냐. 나는 7일 휴가를 받아 왔는데, 원래 장례시간까지 계산해넣은 것인데..." 그 말을 듣고 노인은 자살한다. 아들은 1주일안에 장례식까지 치르고 도시로 돌아가서 계속 일을 했다.

 

이런 뉴스를 봐도 나는 특별히 놀랍지가 않다. 내 기억 속에 농촌은 원래 그랬다. 단지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인심은 여전히 나쁘다는 것이다.

 

나는 농촌에서 21년간 살았다. 오직 농사만 있고 공장같은 건 전혀 없는 순수한 농촌에서. 대학졸업후에 직장을 잡으면서 비로소 농촌을 떠날 수 있었다.

 

이전의 경험으로 보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농촌을 찬양하는 것은 그들 썩은 문인들 뿐이다. 진실한 농촌은 전원의 목가나 순박한 민풍같은 건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서로 속고 속이고, 착한 사람은 괴롭히고 악한 사람은 무서워하며, 약육강식이 통하는 곳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어려서부터 아는 농민은 냉막(冷漠)하고, 속좁으며, 질투로 심리적 변태가 된 사람들이 적지 않다. 형제간에 서로 싸우고, 부자간에 반목하고, 자매간에 원수가 되는 현상은 더더욱 자주 볼 수 있는 일이다.

 

가난한 시골에 온갖 이야기가 다 발생한다. 의붓아버지가 어려서부터 의붓딸과 잔다든지, 남편도 외도를 하고, 아내도 외도를 하며, 숙부가 조카를 독살하고, 아버지가 음독한 아들을 구해주지 않고, 자녀가 부모를 모시지 않고, 나이든 부모를 돼지우리에 살게 하는 등...이것은 모두 실제 있었던 일이다.

 

어느 채널의 명칭이 '진실한 이야기'인데, 나의 모친이 즐겨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볼 필요가 없습니다. 고향에 돌아가서 매일 '진실한 이야기' 한 편씩 찍어도 일년은 충분히 찍을 수 있을 겁니다. 모친은 내 말을 듣고 기분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실한 시골의 인생백태는 바로 이렇게 황당무계하고 풍부하다.

 

가난한 사람은 농촌에서 존중을 받거나 따뜻함을 느낄 수 없다. 가난할수록 더욱 무시당한다.

 

당연히 가난할수록 더욱 막무가내이고, 무지막지하며, 횡포를 부리는 경우도 있다. 더 많은 경우는 가난할수록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다. 농촌은 원래 부유하지 못하다. 일부 사람들은 머리가 아둔하거나, 혹은 몸에 장애가 있거나, 혹은 성격이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 보통사람들보다 더욱 가난하다. 가난할수록 자기비하하고, 나약해지며, 쉽게 다른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나의 기억 속에 있는 농촌은 나이가 들건 어리건, 교양이 있거나 배운 사람이 적다. 편모,편부슬하의 자녀, 모친이 개가할 때 따라간 아이, 수형자의 아이, 친아들이 아닌데 입양한 아이는 쉽게 괴롭힘을 당하는 대상이 된다. 집안이 약할수록, 몸에 장애가 있을수록, 사랑을 받지 못할수록, 더욱 쉽게 무시당하고, 비웃음당하고, 괴롭힘당한다. 어렸을 때, 일부 장난끼있는 아이들은 장애인, 저능아, 편모편부슬하 자녀를 비웃고 놀려댔다. 일부 어른들은 보고서도 말라지 않고, 오히려 가담하기까지 했다.

 

농촌의 부녀자들은 등 뒤에서 뒷담화하고 소문을 퍼트리는 것을 좋아했다. 아마도 농촌에는 오락생활이 결핍되어 있고, 생활권이 너무 좁다보니 약간의 사소한 사건이 있거나, 집안에 문제가 있으면, 2,3일이면 온 동네가 알게 된다. 잘 아는 사람끼리 모여있는 동네가 어떤 때는 이렇게 무섭다. 과거에 그랬다. 현재는 좀 좋아졌는지 모르겠다. 어쨌는 나는 농촌을 떠난지 여러 해가 되었으니까. 지금은 아마도 조금 좋아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내 기억속의 따스함과 사랑은 오직 부모님에게서 받은 것뿐이고, 농촌에서 받은 것은 없다.

 

농촌은 잘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있는 사회이다. 종족혈연으로 엮여 있다; 도시는 낯선 사람들이 모여있는 사회이다.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서로 얼굴을 마주쳐도 모르고 지나간다. 십년을 살아도 이웃집에 들어가보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낯선사람들의 사회가 맞는 것같다.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 서로 신경쓰지 않으면서, 각자 알아서 사는 것이다.

 

농촌사람들은 가난뱅이를 싫어하고 부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들은 권력을 가진 사람의 앞에서는 비굴해진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농촌사람들이 성실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 앞에서는 기고만장한다.

 

황제시대의 수천년간 독재정치를 겪으면서, 농촌은 관리를 무서워하고, 부자를 무서워하면서 관리를 미워하고 부자를 미워하게 된다. 평상시에는 무서워하지만, 일단 기회가 생기면 모든 관리, 부자를 죽이고 싶어한다. 농민의 성실함과 나약함 그리고 교활함과 흉악함은 인간성의 양면이다. 왕왕 한 사람에게 동시에 존재한다.

 

왜 역사상의 반란, 의거와 군중운동은 그렇게 파괴적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농민의 내심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던 폭력적 기질과 인간성의 악한 면이 일단 폭발하면 억제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할머니같은 노인들에게 들은 적이 있다. 옛날 지주를 타도할 때, 얼마나 악독하게 했었는지.

 

황제사회의 농민은 평상시에는 통치하기 쉬운 순민(順民)이다. 일단 선동되면 무서운 폭민(暴民)이 되어 온갖 나쁜 짓은 다한다. 최소한의 선도 없다.

 

농촌부녀자의 싸움은 세삭에서 가장 악독한 저주의 집합이다. 나는 농촌부녀자들이 싸우는 것을 듣고, 촌민들이 싸우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논밭에서 싸우는 것은 약간의 물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이다. 욕설을 해대고, 발과 주먹을 날린다.

 

싸움과 욕설은 농촌부녀자들이 일상적으로 갖추는 오락중 하나이다. 자그마한 이익을 위하여, 촌민들은 칼을 든다. 도시에서는 착실하고, 방귀도 함부로 뀌지 못하는 농민이 동족형제들 앞에서는 아주 흉악해진다. 집 앞뒤의 한치의 텃밭을 위하여, 이웃에서 풀어놓고 기르는 닭, 오리, 거위 한마리의 귀속을 놓고 그들은 주먹질을 한다. 형제간에 이웃에 살면서도 상대방의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중간선을 넘지 못하게 한다. 이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매번 모내기계절이 되면, 논에 물을 대는 문제로 즉 누구의 논에 물을 조금이라도 더 대느냐, 누구의 논에 물을 대면 다른 사람의 논에 영향을 준다. 또한 논두렁을 쌓는 무네도 있다. 두 집의 논이 이웃하고 있으면 어떤 사람은 둑의 자기 논쪽을 파내서 조금이라도 면적을 늘이려 한다. 이는 모두 무수한 욕설과 싸움의 원인이다. 현재 농촌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도시로 일하러 나갔다. 농사짓는 사람이 적다. 그래서 아마도 유사한 사건이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모두 어른을 공경하고, 어린이를 잘 돌보는 것이 중국의 우수한 전통이라고 말한다. 어떤 때는 그렇게 자신있게 말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약하고 어린 사람을 보호하는 것은 인류의 천성일 것이다. 그런데 이 방면에서 중국은 다른 나라만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어린아이를 아껴주는 것은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다만 어린아이를 학대하는 것도 수시로 발생한다. 여러가지 형태의 노인학대, 노인폭행도 있다. 그 근원을 따져보면 정말 가슴이 섬뜩해진다.

 

농촌의 노인, 특히 빈곤한 가정의 노인은 살아있어도 천대받고 아무런 존엄도 없다. 많은 사람들은 나이든 노인을 짐으로 여긴다. 내심 노인이 하루빨리 죽기를 바란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입으로 말하기도 한다. 농촌에서 70세이상의 노인이 죽는 것은 개가 죽는 것이나 다름이 없이 취급된다. 몇년전 나의 친척이 병사했는데, 문상온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은 전혀 슬퍼하는 기색이 없었다. 슬픈 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장례식장에서 웃고 떠들고 포커를 치면서 놀았다.

 

노인이 집에서 죽는 것은 재수없는 일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나이들어 행동이 불편하거나 병이 든 노인은 왕왕 낡은 집으로 쫓아낸다. 낡은 집이 없으면, 띠집을 지어서 잠시 거처하게 하는 것도 자주 볼 수 있는 일이다. 많은 노인들은 낡은 집이나 띠집에서 고독하고 춥게 시간을 보내다가 죽는다.

 

이렇게 역겨운 농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나는 공부를 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생각한다. 농촌은 그저 먼 곳에서 보기에 적합하지, 깊이 들어가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휴가를 보내기는 적당하지만, 상주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농촌을 미화하는 글들이 아주 많다. 농촌에는 수천수백의 얼굴이 있다. 아마도 내가 본 것은 그저 일부의 면일 수도 있다. 다만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경제가 발달한 곳일수록, 인류의 행위는 더욱 문명적이다. 고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창고가 차있으면 예절을 안다. 의식이 풍족하면 영욕을 안다. 

 

이 글은 단순히 농촌이 비문명적이라고 비난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내 생각에, 농촌의 비문명적인 현상은 도시보다 더욱 많다. 이는 인성과 경제학의 법칙에 맞는다. 농촌의 자원은 도시보다 적다. 생존자원을 쟁탈하기 위하여, 농민들은 문명을 따질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반드시 한푼을 놓고 싸워야 한다. 유한한 자원으로 생산효율을 올리는 것은 그저 이성적인 경제인의 정상적 선택인 것이다.

 

10년전, 고향의 65세이상의 노인이 큰 병을 얻으면, 병원으로 가서 치료받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15년전에는 아예 없다. 왜 그런가? 자녀들의 생각에, 그 나이까지 살았으면 더 이상 생산효율을 올릴 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죽어마땅하다는 것이다. 중병을 얻은 후 병원에 보내어 치료하는 비용까지 쓰느니, 차라리 그 돈을 아껴서 자녀들의 생활을 개선하는게 낫다는 것이다. 최근 몇년, 농촌합작의료가 보급되어, 비용처리가 쉬워졌다. 그래서 노인들이 병들면 병원을 가게 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게 되었다.

 

어떤 때는 생각해본다. 농민에 대하여 너무 가혹하게 평가하는 것이 아닌지. 도덕은 물질적인 보장이 되어야 한다. 현실을 벗어나 도덕을 논하는 것은 그저 공리공담일 뿐이다. 이익을 추구하고 피해는 당하지 않으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아마도 모든 비문명은 그 근원을 따져볼 때, 모두 가난이 원수일 것이다.

 

그저 이렇게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인간에 대하여 지나치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